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루카 15,20)
가장인 아버지의 말과 행동에는 힘이 있다. 아버지는 힘 있는 존재다.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해왔다. 성실한 그의 삶은 자녀들의 앞길을 비춰왔다. 늙어가는 아버지도 여전히 힘이 있다. 그의 권위가 그가 지닌 힘을 드러낸다. 보통은 그렇다.
힘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힘을 사용하는 이의 의도와 결과에 따라 우리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된다. 아버지의 힘이 자녀를 살리기도 하고 때론 죽이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목격해 왔다. 아버지 힘의 진정한 가치는 그가 지닌 마음에서 온다. 자비로운 아버지는 자녀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든다.
오늘 사순 제4주일은 Domenica Laetare, 기쁨 주일이다. 어느덧 우리는 재의 수요일로 시작된 사순시기의 중반을 넘어섰다. 자선과 단식을 통해 참회하며 부활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오늘 교회는 기쁨을 말한다. 사제는 보랏빛 제의 대신 장미색 제의를 입고 소박했던 제단에 꽃을 놓기도 한다. 부활이 가까이 왔다. 우리 구원의 때, 참 생명으로 새로나는 그때가 다가왔으니 설레고 즐겁다. 이 기쁨의 날에 우리는 다시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 (루카 15,11-32)'를 듣는다. 탕자로 일컬어지는 작은 아들을 되찾고 기쁜 축제를 벌이는 아버지의 자애로움에 우리 모두는 감복하고 자신의 회심 여정을 돌아본다.
비유 속 아버지는 그토록 힘이 있는 존재였다. 그는 저 멀리서 작은 아들을 발견하고는 한걸음에 뛰어가 그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종들에게 명하여 큰 축제를 연다. 토라져 집 밖에 서 있는 큰 아들에게도 다가가 그를 토닥이고 '나의 것이 모두 너의 것'이라고 말하는 아버지다. 아버지의 말과 행동에는 힘이 있다. 그 말과 행동은 그 뜻대로 이뤄져야 하니, 힘이 없이는 사라질 거품에 불과하다.
아버지의 권위는 재산을 다 탕진하고 거렁뱅이가 된 둘째 아들을 끌어안으며, 단 한 번도 진심을 보이지 않고 곁에서 종처럼 자신을 섬겨온 큰 아들을 끌어 안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힘이다. 아버지의 권위는 흐트러진 질서, 즉 아버지와 아들들 그리고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의 관계를 바로잡는다. 그 질서는 사랑으로 유지된다. 자신의 흐트러진 욕구만을 따라 사랑을 뒤로하고 떠났던 작은 아들 그리고 자신만의 틀에 박힌 이상을 따라 사랑을 뒤로하고 머물렀던 큰 아들, 그들 모두를 끌어안는 아버지의 품에 새로움을 낳는 힘이 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2 코린 5,17)
잃었던 것을 되찾았다. 되찾은 사랑은 더 이상 옛것이 아닌 새것이다. 그러니 모두 함께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아버지의 힘은 사랑을 되찾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나눔을 향해 열린다.
이 모든 것의 시작에 자식을 가엾이 여긴 아비의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을 그는 온 힘을 다해 펼쳐 보였다. 그 마음을 모두와 함께 나누었다. 그 마음이 감춰질 리 없다. 그 마음이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다. 아비에게 등 돌린 자식의 마음에도 들어가니 과연 불가능이 없는 힘이다.
내게 쏟아지는 자비의 무한한 가능성을 크게 믿지 않았다. 꼭꼭 문 닫고 쭈그려 앉아 있는 나를 그 누구도 구원하지 못하리라 믿었기에, 나를 질책하며 아프게 하는 자신이 두렵고 싫었다. 그런데 나를 낳고 키운 사랑은 진실로 큰 힘이라 작은 바늘구멍에도 낙타를 통과시킨다. 닫힌 문을 넘어오지 못할 사랑이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다시 하느님과 화해하라는 초대가 반갑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2 코린 5,20) Lasciatevi riconciliare con Dio.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과 화해하게 하십시오. 하느님과 화해하도록 자신을 내버려 두십시오.
아버지가 나를 꼭 안아주도록 나를 내준다. 내 슬픔과 아픔, 기쁨과 즐거움 모두를 안는 그 품에 나를 맡긴다. 사랑의 힘이 내 마음, 내 뼛속까지 스며들어 나를 회복시키고 자라나게 하리라. 그리하여 구원의 날에 나는 또 다른 사랑을 낳는 내 아버지 닮은 작은 아비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