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간 월요일] 기쁨과 깊음

그가 내려가는 도중에 (요한 4,51)

by 어엿봄

슬픔과 기쁨이 마치 한 색의 빛띠 안에 들어가 있는 것만 같다. 그 둘이 완전 대비되는 색깔이라기보다는, 그저 옅고 짙은 차이지 않을까 싶은 거다. 완전한 슬픔은 기쁨을 잉태하고 있고 완전한 기쁨은 슬픔에서 태어났다고나 할까. 그렇게 깊고 깊은 내 안을 내려다보며 간절함을 모아 본다. 오늘의 예수께 드릴 간절함이다.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적이 있는 갈릴래아 카나로 다시 가셨다. 거기에 왕실 관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앓아누워 있었다.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함께 내려가 고쳐달라고 청하는 그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왕실 관리가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달라 하자, 그분은 이르신다.

"가거라. 네 아들을 살아날 것이다."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그가 내려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마주 와서 아이가 살아났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가 종들에게 아이가 나아지기 시작한 시간을 묻자, "어제 오후 한 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아버지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하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

(요한 4, 43-54 참조)


그는 죽어가는 자신의 피붙이를 뒤로 하고 길을 떠났다. 어쩌면 다시 못 볼 산 아들의 모습, 그러나 포기할 수 없다. 이제 마지막 남은 희망이니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청해 본다. '그가 함께 내려가 아들을 만진다면 살아나리라. 나는 다시 내 아들을 품에 안으리라.' 그러나 보지 않고도 믿을 것을 요구하는 예수는 그더러 아들에게로 돌아가라 한다. '그래, 아들은 죽지 않으리라. 이 내 깊은 간절함을 그가 못 본 체하지 않았으리라.'

그는 마음을 굳게 다지고 길을 내려간다. 슬픔과 고통의 길 그러나 어쩌면 마주하게 될 새 희망이 함께 하는 길이다. 하루가 꼬박 지나서야 도착한 그의 집, 아들이 살아있다. 이미 예수께서 그의 아들이 살아나리라 말씀하셨던 시각에 소중한 이 사랑이 살았다. 이미 그 시각에, 슬픔이 완연했던 그의 삶 안으로 기쁨이 들어왔으니 그는 그 기쁨을 보지 못했어도 믿었다. 깊었던 고통의 자리에 기쁨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기쁨의 빛깔은 깊음이다. 깊음의 빛깔은 기쁨이다.


기쁜 얼굴이라 하여 슬픔을 감추지 않고 또 슬픈 얼굴이라 하여 기쁨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우리 각자 인생의 깊이만큼 우리는 슬픔과 기쁨을 함께 지니고 살아간다.

갈릴래아 카나는 예수님이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신 곳이었다.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 그날, 그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잔치의 흥을 돋웠다. 불안과 두려움의 깊이만큼 파인 옹기들에 그저 맑은 물을 부었을 뿐인데 술이 되었다. 물이 어떻게 술이 되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던 그날, 예수의 피로써 얻어질 우리의 생명이 이미 저 깊은 곳에서 차오르고 있었을 것이다.


내 어둠의 색이 너무 우울하여 멀리하고 싶었으나 너무 깊어서, 이미 내 안을 온통 물들이고 있어서, 차마 도망가지 못하고 꽁꽁 피부를 감싸기 시작했다. 밝은 빛깔로 나를 칠하고 칠해댔다. 칠이 벗겨진 틈으로 드러날 어둠이 무서워 어디에도 부딪히지 않으려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 위로 폭풍우가 휘몰아치니 도저히 피할 수 없다. 쏟아지는 빗물에 칠이 벗겨져 나간다. 막을 방법이 없다. 그렇게 한참을 적셔낸 나를 보니 우울한 어둠의 색이 오묘하다. 아직 남아 있는 물기 때문일까, 이것은 연한 보랏빛 같기도 하고 아니 분홍빛 같기도 하다. 자잘한 노란 개나리 같다가도 또 생기를 품은 연둣잎처럼 살랑거린다. 예쁘다. 내 몸을 어느새 가득 채운 물이 참 맑다. 닿기만 해도 생명이 살아날 것 같은 신비한 물방울들이 나를 가득 채웠다. 그렇게 나의 시간은 빛띠와 같다. 색이 자유롭게 여행하는 공간, 그 빛띠와 같아서 슬픔은 기쁨을 잉태했고 기쁨은 슬픔에서 태어났다. 그리도 깊었던 나의 기쁨은 죽음에서 생명을 살아낸 값이다. 초조함 속에 길을 오르고 내려가며 그리도 많이 울어댔다. 참, 웃기도 했었다. 가여운 내가 기댈 곳은 그 작은 미소라 스스로 웃어주곤 했었다. 보이지 않는 예수의 손길이 나를 적시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길을 헤매며 울고 또 웃었다.


오늘 내가 모은 간절함은 내 기쁨을 낳는 것이다. 길을 내려간다. 아들은 살았다. 이제 내가 증언할 차례다. 나의 깊은 기쁨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전부 다 말할 차례다. 온 집안이 믿게 되리라. 내 몸에 가득 차오른 생명의 물로 그간의 갈증을 풀고 이야기할 것이다. 우리 함께 지나왔으니 이제 다시 살아낼 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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