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간 화요일] 생명의 샘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요한 5,14)

by 어엿봄

아픈 그를 돌봐줄 사람, 아니 눈길 줄 사람조차 없으니 참 처량한 인생이다. 기적의 못가에 머무른 지 오래, 그 누구와도 눈 마주치지 않았다. 그 누구의 손도 잡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소외된 삶을 살아왔다. 공동체로부터의 소외 그리고 그 자신으로부터의 소외였으니 참으로 아픈 인생이었다.


서른여덟 해 동안 벳자타 못가에서 누워 지낸 그에게 눈길을 주고, 일으킨 이가 있으니 오늘의 예수님이다.


"건강해지고 싶으냐?"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안식일에는 노동이 금지됐으므로, 유다인들은 들것을 들고 다니는 그에게 그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했다. 자신을 건강하게 해 준 사람이 그리 하랬다 답하는 그에게 유다인들은 그 사람이 누구냐 물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건강하게 해 준 사람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그를 보고 건강하게 되었으니 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시는데, 그는 유다인들에게 가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라고 알렸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요한 5, 1-16 참조)


그는 진정 예수님을 알지 못했다. 아니, 사람을 알지 못했다. 그가 서른여덟 해 동안 못가에 머무르며 불평하는 동안 그 어느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지 않았다. 얼음장같이 굳어버린 그의 마음과 칼처럼 날카로워진 그의 시선에 그 누구도 다가가질 못했다. 그럼에도 그에게 먼저 다가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묻는 이가 있으니 바로 예수님이다. 그와 눈을 마주치고 그의 깊은 욕구를 읽어주며 그가 바란 건강을 되찾아 주는 분이시다. 들것을 들고 걸어갈 수 있으니 이제 그는 건강해졌다. 그러나 불완전한 건강이다. 그가 자신이 누워있던 들것을 다른 형제에게 내어주지 않는 한, 처참한 고통 속에 누워있는 누군가를 태우고 나아가지 않는 한, 그는 완전히 건강해지지 않으리라.


관계의 회복을 생각한다. 예수님 친히 그에게 다가와 그를 일으킬 때, 그는 그 친밀함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그는 예수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성전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그는 단순히 그의 얼굴을 알고 이름을 알았다는 사실에 반색하며 유다인들에게 달려가 모든 것을 고했다. 그렇게 자신을 한 사람으로 존중하며 다가와 치유해 준 이에게서 등을 돌렸다. 사람이 채워지지 않아 목말라했던 그는 생명의 샘이 자신 앞에 있음에도 그 한 모금 떠마시지 않았다. 그가 더 이상 아프지 않길 바랐던 상대의 소중한 사랑을 그는 결국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니 여전히 그는 목이 마르고, 빈 들것은 그를 무겁게 한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에제 47,8-9)


성전 오른편에서 흘러나오는 이 물은 우리에게 치유와 구원을 가져다준다. 예수라는 샘은 끊이지 않고 생명의 물을 솟아나게 한다. 그 물을 마시고, 그 물로 나를 적셔야만 내 곳곳이 되살아날 것이다. 다른 이에게 열리지 않았던 차가운 눈과 마음이 녹기 시작한다. 그 물은 내가 바라는 곳으로 흐르니, 내 부족한 사랑을 채워줄 것이다. 바라는 것은 나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그 생명의 샘에 내 존재를 담가 느끼는 것이다.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나에게서 멀어졌던 시간을 갚아주기 위해 생명의 샘에 나를 담근다. 그렇게 잃어버렸던 내 사랑을 다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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