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간 목요일] 유효한 증언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요한 5,43)

by 어엿봄

그 사람이 드러내고 있는 그 자기 자신을 나는 받아들이는 게 어렵다. 나와 다른 사고와 감정, 그 성향이 나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가 증명하는 자기의 값이 내겐 그리 빛나지 않아 나는 살며시 그를 밀어버린다. 그 얼굴 안에 새겨진 주님의 영광을 찾기가 내겐 어려운 일이다. 이제 나는 어떤 영광으로 그대에게 존재하는가 질문할 차례다.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그대에게 존재하는가 아니면 내 전력 다해 지키고자 했던 내 이름 석자로 존재하는가. 나에게 소중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고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 우리 가운데 영광으로 오신 주님께서는 늘 당신 사랑 안에 머무르라 초대하신다.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당신의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당신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신단다(요한 15,8 참조).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냄으로써 빛나는 길을 택하였다. 오늘 복음에서 그는 분명히 말한다. 그는 스스로를 위하여 증언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오지 않았다. 아버지로부터 나와 파견된 자로서 그는 아버지를 증언하니, 아버지와 협력자 성령께서도 그를 위한 유효한 증언을 해주신다. (요한 5,31-47 참조)


나는 사실 사랑의 증거인 주님의 말씀에 깊이 머무르지 않았다. 열심히 사랑을 찾으며 행동으로 보이고 싶었다. 내 모든 것을 그렇게 쏟아내는 게 주님께 영광을 더 드리는 일이라 믿어왔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아들로서 세상에서 완수하신 일들을 그분의 피나는 노력의 성과라고 하기엔 너무 부족할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현존으로 이 세상에 사셨다.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낮추셨지만 사랑의 원천으로 가득 차 있으셨던 분. 나는 그분을 품고 싶었다. 그런데 그분께서 나를 품으신다. 내가 그분 안에 머무른다. 아무 것도 필요치 않다.


정지해 버린 시간과 고요한 공간에 나를 맡긴다. 홀로 존재하는 듯한 이 작은 점의 시공간에 나의 살갗이 드러나니 이제 막 꽃들이 피어나듯 고운 향기가 번진다. 주님을 적신 그 향기가 달아 그분이 웃는다. 너무도 밝아 눈을 뗄 수 없는 미소의 빛은 불과 같다. 내 살갗에서부터 나의 심장까지 태우는 사랑의 불이다. 재로 돌아가버릴 나 자신이 아쉽지 않은 까닭은 내 이름의 영광이 아닌 그분 이름의 영광이 타오르고 있기 때문이요, 불타오르는 사랑에 나 자신을 바치기 때문이리라. 더 이상의 증언은 필요하지 않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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