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간 수요일] 영원할 기억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이사 49,15)

by 어엿봄

나도 나 자신을 잊어버리곤 한다. 오늘이 있기까지 내가 바라고 또 얻은 것은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거울에 비치는 나의 얼굴이 과연 남들이 보는 얼굴과 같은지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내 눈빛에서 그들은 무엇을 읽을까. 사랑일까 아니면 외로움일까. 나의 눈이 그들의 존재를 온전히 담아낼 만큼 깊고 큰지 알 수 없다. 내가 어디서 왔고 또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가끔 흔들린다. 나는 나를 낳은 사랑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늘아, 환성을 올려라. 땅아, 기뻐 뛰어라. 산들아, 기뻐 소리쳐라.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당신의 가련한 이들을 가엾이 여기셨다.

그런데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하고 말하였지.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이사 49,13-15)


나를 낳은 주님께서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하신단다. 나를 온전히 알고 또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계시는 것이리라. 그분은 나의 안전과 자유를 원하였다. 내가 안전한 당신의 품에서 자유롭게 뛰어놀기를 기대하셨다. 신나게 달렸고, 실컷 넘어졌다. 하도 넘어져 이마가 또 무릎이 깨져 상처가 남았다. 지저분한 상처가 창피해 가리던 나는 어느새 고개를 숙이고 나를 감추고 싶어졌다.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던 것일까. 나는 태초의 사랑을 잃어버렸을까.


한 번도 나의 존귀함과 사랑스러움을 잃어버린 적 없었다. 다만 잃어버릴 걱정과 불안함에 스스로를 감춰 도망가려 했던 것이다. 나의 진실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심판받을 두려움에 나는 먼저 나를 단죄하였다. 내 몸에 새겨진 상처를 비난하고 마치 내 탓으로 사랑을 잃어버린 양 자책하였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얻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요한 5,24)


나를 낳은 사랑은, 가여운 나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아니하고 나를 보살피고 키울 사랑을 보냈다. 아버지가 자신의 모든 것을 아들에게 드러냈다. 완전한 그 사랑이 아들에게서 다시 살아난다. 나에게 전해진 그 다시 살아난 사랑이 나를 떠난 적 없다. 나는 나를 잃어버린 적이 없다. 내 심장의 불꽃이 꺼지지 않았고 내 눈의 별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잃은 적 없는 나는 그저 가엾고 소중한 당신의 딸이었을 뿐이다.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는 걸 믿을 수 없어서 내 눈으로 꼬박꼬박 세어보고 확인해야만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셀 수 없는 모래알만큼의 사랑이고, 잴 수 없는 바다 크기의 사랑이라 눈으로 보고 확인할 길이 없었다.

나를 삼킬 것 같은 밤바다의 파도 앞에 다시 선다. 발을 떼 조금씩 움직여본다. 달려가 파도를 타보자. 믿음에서 나의 담대함과 단순함 그리고 겸손함이 나온다. 그 믿음을 딛고 타는 파도라 어느새 나는 거센 물결을 즐기고 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순간이다. 그 어느 것 하나 헤아릴 수 없고 확신할 수 없는 부서지는 파도 속에서 나를 놓아버렸다. 내 안에 가득히 차오르는 생명의 물이 내 몸 구석구석에 숨을 불어넣었다. 완전한 치유로써 나를 되찾아 주는 주님이 계시기에 여전히 나에겐 희망이 있다.

keyword
이전 28화[사순 제4주간 화요일] 생명의 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