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a boncompagni

좋은 친구들과 함께 걷는 길

by 어엿봄

어느 주일, 책상에 산적한 과제거리들을 뒤로하고 맨몸으로 길을 나섰다. 지금 사는 곳에서 40분 정도 걸어가면 보르게제 공원에 도착한다. 처음 나서는 길이라서 대충 구글로 검색해 보고 방향만 익힌 채 쭉 따라나서고 있었는데, 잠시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 거리명에 시선이 갔다.


Via boncompagni

마음이 뭉클했다. 나는 비록 혼자였지만 길 이름에서 좋은 친구들과 걸어가는 장면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사실 Buoncompagni가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를 배출한 유명한 이태리 귀족가문임을 나는 알지 못했다. 한 집안을 기억하기 위함이었겠으나, 나는 내 마음을 울리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태리어 사전 Zingarelli(2025)에서는 compagni의 단수형인 compagno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Chi sta abitualmente insieme ad altri, svolgendo un'attività comune, partecipando a divertimenti : 다른 사람들과 공동의 활동을 하고 재미난 일들에 참여하며 함께 지내는 사람.


어원학 사전을 찾아 보았다. Quelli che fa compagnia ad alcuno: 다른 이에게 compagina를 하는 사람들. 즉, 누군가와 함께 있어주는 사람을 뜻한다. 여기서 상대에게 친구로 존재함은 동반하는 행위와 그 영향(L'atto e l'effetto dello accompagnare)을 전제로 한다.


https://www.etimo.it

누군가와 함께 있다고 할 때 내게 중요한 건 정확한 경계였다. 서로의 마음에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의 거리가 그 경계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만큼 추상적이고 모호한 정의도 없을 것이다.


사랑이 두려웠던 것이었다. 사실 사랑을 하면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진다. 서로를 끌어당기는 어떤 신비한 힘에 의해 그렇게 서로의 곁에 머무르게 된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랑이 두려웠던 것이었다. 사랑에는 필연적으로 아픔이 따라오니까.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상대를 아프게 할 일도 없을 거라고 세상 모든 아픔이 모두 나에게서 창조라도 되었듯, 그렇게 오만하게 벽을 세우고 상대를 밀어냈다. 사랑했고 사랑받고 싶었으나 사랑을 받을 준비는 되지 않았다. 배타적인 관계를 벗어나 나는 더 많은 이들을 사랑하리라 다짐하고 또 약속하면서도 진정한 사랑에 자신을 투신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나 조차도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어린 시절 양육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느끼게 된다. 아이에게 고스란히 스며든 양질의 애정이 아이를 자라나게 한다. 만일 이 애정이 아이의 성장에 충분치 않았거나 혹은 주어졌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이유에서든 박탈당했다면 아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왜곡된 인식, 즉 스스로를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로 느끼며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 가여운 존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boncompagni! Al meno un compagno buono!

최소한 좋은 친구 하나!


치료적 관계에서 내담자 자신이 조건 없이 이해받고 사랑받는다고 느낀다면 그 경험은 오래된 감정기억을 수정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상호관계에서 흡수되는 애정을 통해 자신 스스로와의 사랑을 회복할 수 있다. 이는 마치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들과의 사랑을 통해 체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에게 다가오는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님의 육화사건을 통해 분명해졌다. 그분은 고통을 원하셨다. 나를 사랑하기 위하여. 어리석게도 나는 그 사랑 앞에서조차 눈물을 흘리며 거리를 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의 좋은 친구들에게 나를 내어주지 않았고, 충분히 정을 나누도록 허락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실수도 잘못도 아니다. 단지 내겐 그 길이 익숙할 뿐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잘못된 것이지 따질 필요는 없다. 마치 어머니가 울고 있는 아이를 끌어안듯, 나 자신을 끌어안는 데서 출발하련다. 그렇게 나는 나의 어미가 되고 또 나의 좋은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나 자신과 또 너와 함께 하는 행위로써 나는 사랑을 품으리라. Ai miei compagni (내 친구들에게),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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