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피로
아직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하느님 아버지께로 보내드리고 있다. 기억하고 그리워해야 할 게 참으로 많다. 2주간의 부활 방학을 마치고 어제 개강을 하며 함께 모여 교황님을 추모하는 미사를 봉헌했다. 나는 그분 생애의 끝을 기리며 꿈을 가졌다. 끝까지 다 쏟아 사랑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꿈이다.
어제 긴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사실 마쳐야 할 일들이 있었는데, 다 치워두고 잠자리에 들고 싶었다. 피로감에도 적절함이란 게 있을까? 즉,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적정한 수준의 피로감이라는 게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2주 동안 나의 몸은 퍽 고생을 했다. 손님들이 오셔서 외부로 동반을 많이 나갔고 또 한편으로는 공동체에서 함께 전례를 준비했으며 성삼일과 부활을 맞이했다. 그리고 교황님을 보내드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주일 하루를 쉬면서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리라 믿었건만, 어제 몸이 너무 무거웠다. 있는 힘껏 다해 봉사하고 사랑하신 그 모범을 따른다면 이 피로를 견뎌야 하는 것이 아닌지 잠시 '피로의 식별'에 대해 성찰했다. 죽을 만큼 피곤할 수 있는데, 그게 나를 위한 피로감인지 아니면 공동선을 위한 피로감인지를 따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 욕심에, 일을 완벽히 끝내고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무리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불필요한 피로감을 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선의에 힘을 쏟고 있다면 그 피로감을 달게 견디는 게 가능할 것이다.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다.
"오늘 너무 피곤한데 저녁에 공동체 전례를 위해 준비할 것도 있어서 글을 마무리하지 못하겠습니다. 내일 제출하는 것은 어렵고, 제가 며칠 후에 완성해서 드리도록 할게요."
스스로와 나름의 타협을 했다. 물론 바로 잠자리에 들지는 않았고, 저녁 식사 후 성당에 가서 오늘 전례를 준비하고 일 마무리를 한 후 잠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보니 여러 가지 잦은 실수가 있는 것이다. 좀 민망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 많이 피곤하구나!'라고 자신에게 말해줄 수 있었다.
오늘도 겨우 학교에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에서 나왔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힌다. 벌써 여름이 온 것 마냥 뜨겁다. 하늘이 파랗고 맑아서 당장 시원한 계곡물에 뛰어 들어가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여기 로마에는 계곡이 없다. 대신 작은 성당에 들어갔다.
"예수님, 더워서 잠시 땀 좀 식히고 갈게요!"
한껏 들뜬 관광객들 사이로 다시 몸을 던져 집으로 향했다. 어제 마무리하지 못한 걸 오늘 끝내야 한단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는데, 그냥 천천히 가기로 작정한다. 지금의 이 피로는 짊어지고 가기에 적절한 것일까 아니면 내려놓아도 괜찮을 것일까 다시 질문하며 답을 찾으려 했다. 여기서 계속 나를 몰아세운다면 결국 나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깊은 무관심의 잠에 빠져들 것이다. 그러니 잠시 쉬어가도록 한다. 예수님은 무거운 짐을 진 이들에게 안식처가 되어주고 싶어 하신다. 나의 집, 그분께 내 발바닥이 너무 아파 더 이상 못 걷겠다고 투정을 부려본다. 피곤하면 쉬어야 한다. 그래야 힘을 되찾고 또 다시 나의 소중한 사랑을 위하여 피로를 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