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하지 않은 자의 부끄러움
아침부터 허리가 뻐근하게 아파왔다. 어제 외출하지 않고 너무 오래 앉아 있었던 탓일 게다. 배도 고팠다. 갑자기 김치 생각이 났다. 우선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잠시 주변 정리를 하다 오랜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그의 소식을 듣고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를 주저앉게 하는 것이 뻐근한 허리가 아니라 그 마음이란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랬기에 더더욱 일어나 걸어야 했다. 빈 가방을 메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해가 한여름처럼 뜨거웠다. 성 요한 라떼란 대성전까지 걸어갔는데 노동절 행사 준비로 대로변은 다 막혔고, 큰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공연을 위해 음향 시설을 점검하고 있어서 내 고막은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귀를 막고 재빠른 걸음으로 광장을 지나갔다. 무거운 마음은 다 내려놓은 채 어느새 머릿속은 점심 메뉴에 대한 고민뿐이었다. 여전히 김치 생각이 났고, 그런 내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 성밖까지 나가서 걷다가 다시 광장을 통과해 반대로 걸어 나오며 이젠 또 딸기 생각이 났다. 그 달콤한 향이 그리웠다.
이 노동절에 과소비를 했다.
여름옷 몇 벌과 점심과 간식거리 등을 사느냐고 돈을 좀 썼다. 생산 노동에 참여하지 않고도 타인들의 노동에 기대어 사는 자로서 휴일을 지내는 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고 그저 먹고 싶은 것을 거리낌 없이 골라 장바구니에 담았다는 게 부끄러웠다. 편안하게 뱃속을 채우려 플라스틱 용기를 집은 것도 후회스러웠다.
후회와 반성에 고마움을 얹는다.
우리 모두를 위한 노동을 하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위에 고마움을 키운다. 그대들의 땀 흘림으로 인해 내가 이리 배불리 먹고 편안히 쉬고 있으니 감사하다. 그대들의 값진 노동이 정당하게 셈해지고 인정받길 바란다. 우리가 아직 알아보지 못한 그대들의 수고가 세상에 빛났으면 좋겠다. 마치 등불이 가려지면 안 되는 것처럼, 세상을 밝히는 그대들의 노동이 있기를 희망한다. 정직하고 성실한 그대들의 노동이 우리 공동의 집을 보살피고 살게 하는 따뜻한 사랑이 되기를 기도한다.
그 기도 위해 모으는 나의 두 손은, 노동하지 않은 자의 부끄러운 손이다. 하지만 무거운 돌을 옮기는 그대들의 피로에, 나는 무거운 마음을 옮기는 나의 피로를 더 하고자 한다. 그렇게 어떤 방식이 됐든 함께 사랑으로 나아갈 때 우리 공동의 집은 더욱 살만한 곳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