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오랜만에 하루 종일 방에서 지냈다. 맘껏 쉬지는 못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시험공부를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다고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다. 계획한 양의 십 분의 일도 못 읽었다. 시험이 부담스러운 건, 나의 무지를 직면하는 순간이 두려워서다. 답안을 작성할 만큼 충분히 알지 못할 때, 머릿속이 정말 하얗게 될 때의 그 느낌이 싫다. 나는 똑똑하지 않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내 성적에 만족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요즘은 게다가 남의 말로 나이 들어 공부하려니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개념도 쉽게 이해가 안 되고 머릿속에 남는 것도 별로 없다. 내가 쌓아온 지식이 보잘것없어 나 자신마저 보잘것없게 느껴진다. 박학다식한 사람이 참으로 부럽다.
아는 게 많았으면 좋겠다. 내가 아는 것들, 나의 지식이 나 자신은 아닐 텐데 나는 지식의 양으로 나 자신을 평가한다. 이 기준을 따르면 나는 영원히 나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늘 초라한 자신에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나는 사람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고, 이 공부는 단순한 지식의 습득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동반해야 하는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는 학업이다. 내 지식의 양이 내 사랑의 질을 결정하지 않는다. 사랑을 실천하는 법을 배우고 그것을 내 삶에서 실현시키고 싶다. 내 학업의 열매를, 정답으로 꽉 채운 답안지가 아니라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이 이룬 관계들로 확인하고 싶다.
부족한 지식에 나를 내세우지 못하겠다고 고개를 숙인 순간에 문득 나의 맑은 지향이 눈에 들어왔다. 사랑하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의 맑음만큼은 부끄럽지 않다. 아니, 그 마음이 자랑스러워 주님 앞에 펼쳐 보인다. 그 마음이 실은 그분에게서 왔기에 다시 향하는 곳은 주님이다. 내가 나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까닭은 지식으로 가득 찬 머리가 아니라 순수하고 맑은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언제나 쓸고 닦아야 하는 어지러운 방처럼 지저분하지만 그 마음에 주님이 머무르신다. 방 한 구석이라도 그분께 내어드리려 하는 나의 부족하고 어설픈 사랑을 어여삐 보시는 그분이 계시다. 나를 당당하고 자신 있는 존재가 되게 하는 건 분명 숨겨져 있는 나의 지향이다. 그러니 나의 지식이 나의 전부라고 착각할 필요가 없다. 내가 키운 마음만큼 머리로 알게 되는 날이 반드시 찾아오리라 믿는다. 빈 머리를 주님이 가운데 계시는 사랑의 마음으로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내 마음에 자신감을 갖고 용기를 내야겠다.
한 점의 진심이라도 우리가 품고 있다면 그보다 더 값진 보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실컷 자랑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