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죽음

세상 어디에도 개죽음은 없다.

by 어엿봄

점심 식사 후에 오늘은 볕을 보리라는 강한 의지를 갖고 집을 나섰다. 며칠 방에서 쉬면서 지쳤었는데, 얼마나 걸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혹시나 바람이 너무 거세면, 혹시나 기운이 너무 빠지면 바로 돌아오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나선 길이었다. 생각보다 더웠다. 겨울 내의를 입고 위에는 여름 바람막이를 걸치고 목은 둘둘 둘러싼 채 천천히 속도를 높였다. 목표지는 보르게제 공원이었다. 한 10분 걸었을 때 잠시 망설여졌지만 나는 의지의 한국인! 처음의 다독임은 잊어버리고 어느새 조금만 더 가보자며 기운을 모으고 있었다. 시원한 숲 속에 앉아 있고 싶다는 열의로 공원에 도착해서는 길을 틀었다. 잠시 쉬어가던 그 작은 숲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길을 틀고 또 틀었다. 그런데 장소가 낯설었다. 길을 잘못 든 것 같았다.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걸어 들어갈수록 그 길이 아님이 확실해졌다. 잠시 돌 위에 걸터앉았다. 엉덩이가 따뜻했다. 그대로 누워버리고 싶었다. 다시 힘을 내 걷고 또 걸었을 때 마침내 제자리로 돌아왔다. 크게 한 바퀴 돈 거다. 갑자기 속상한 마음이 밀려왔다. 그러나 다시 그 작은 숲을 찾아 나설 힘이 더 이상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눈앞이 깜깜한 일이었다. 하필 버스카드도 지갑도 다 놓고 나왔다. 벤치에 앉았다가 천천히 일어나 터벅터벅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오페라 극장 벽면의 기념비

공원을 빠져나와 다시 도심으로 들어오며 오페라 극장을 지나다 발길을 멈추었다. 벽면에는 여러 기념비들이 붙어있는데 유난히 화환이 달려 있는 게 있어서 보니 다음의 내용이 적혀있다.

1939년, 이 극장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칼라프 역을 연습하던 중, 테너 니콜라 우고 스타메는 반파시즘 활동으로 체포되었다. 그의 신념에 대한 일관성으로 인해, 그는 1944년 3월 24일 비아 타소에서 고문을 받은 후 나치의 잔혹함에 의해 포세 아르데아티네에서 처형당했다.

무솔리니에 맞서 반파시즘 지하조직의 일원이었던 오페라 가수 니콜라 우고 스타메는 그렇게 죽었다. 1944년 3월 23일, 이탈리아 레지스텐자 대원이 로마에서 독일군 행진 대열을 공격하여 독일군 33명이 사망하였다. 이에 대한 보복 명령으로 히틀러는 “이탈리아인 10명당 독일군 1명”의 비율로 330명 이상을 즉결 처형하라고 명령했고, 바로 다음날인 3월 24일 로마 외곽의 아르데아티나 동굴에서 335명이 총살당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니콜라 우고 스타메였다.


그렇게 우리 인생은 허무하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다. 언젠가 한국에서 오래 알고 지낸 지인과 통화를 하는데 그는 나에게 말했다. 인생은 참 짧은데 그 오랜 시간 공부에 쏟아서 얼마나 값진 결실을 얻겠냐고. 다 지나가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이다. 골골거리는 내 체력과 그에 반비례하게 우뚝 솟는 내 공부 욕심에 대한 걱정에서 나온 말이란 걸 나는 잘 안다. 나 역시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언제든 끝낼 마음이 있었다. 애초에 마침표를 찍는 것보다 과정이 중요한 소임이었다. 인생은 참 짧다. 그리고 그 허무한 결과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진실로 그 누군가의 죽음이 허무하다고 우리가 평가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니콜라 우고 스타메가 자신의 고결한 가치를 위해 죽었던가. 그 가치에 매겨진 어처구니없는 값으로 얼마나 허망하게 목숨을 잃어갔던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무덤이 있는 산타 마리아 마죠레 대성전의 뒤와 앞면

그의 죽음 앞에 경건해진 마음으로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저 멀리서부터 사람들이 보였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산타 마리아 마죠레에 묻히신 이후로 참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성당 뒤 광장에서부터 이미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겨우 무덤에 참배하고 스쳐 지나갈 수 있음에도 이 줄이 끊이질 않는다. 아직은 이별의 때가 아니라고 믿었던 우리에게 혼신의 힘을 다해 작별 인사를 하신 교황님께서 그렇게 떠나가셨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따뜻한 사랑을 기리려 여전히 그분을 찾는다. 죽음이 꼭 끝은 아니다.


세상엔 잊히는 죽음이 있고 기려지는 죽음이 있다. 알려지지 않은 죽음이 있고 공개된 죽음이 있다. 내가 글을 적고 있는 이 순간에도 무명의 죽음은 끝이 없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무명의 부활도 끝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숨겨진 죽음이 하느님 아버지께 모두 드러나 있다.


먼지로 돌아갈 우리의 노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먼지로 돌아갈 우리의 몸만이 존재할 뿐이다. 오페라를 부르던 니콜라 우고 스타메의 고민이 얼마나 깊었겠는가. 친무솔리니 파가 되어 자신의 정의를 죽일 것인가 아니면 목숨을 걸고 그 정의를 살릴 것인가. 우리 머릿속과 가슴속을 어지럽히는 수많은 일상의 고민들에 우리는 우리 목숨을 건다. 그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다. 허무한 죽음이란 없다. 나의 이 궤변도 내 존재의 한 줄 서사이니 값진 나의 일부인 것이다. 그러니 개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치워버려야겠다.


오늘 나는 숲 찾기에 실패했다. 겨우 겨우 한 바퀴를 돌았어도 제자리였다. 남은 건 너덜거리는 몸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의 허망함을 꺾어내고 다시 의미를 살린다. 나의 시간이었고 나 자체였던 그 시간을 나는 버리지 않는다. 이제 내가 알아주지 않으면 다 사라져 버릴 그리고 잊혀버릴 소중한 내 삶의 조각조각들을 모으려 한다. 뜨거운 불속에서 정제된 그 금덩이들을 품에 안는다. 그렇다. 황금보다 더 소중한 나의 삶이다. 세상 어디에나 있는 값진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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