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되길 기다리는 시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때

by 어엿봄

알람 진동에 깼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25분을 더 잤다. 아침기도를 제치고 천천히 몸을 풀다 미사 입당성가 소리에 후다닥 달려 내려갔다. 다행히 부었던 편도선이 좀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오늘은 일상으로의 복귀가 가능할 것인가! 미사 후 배가 고파서 어지러운 건지, 주인에게 혼이 나 풀이 죽은 강아지처럼 책상 앞에 앉아있다가 든든히 아침 식사를 하고 짧게 기도를 했다. 뉴스 확인 후에 밀린 공부를 하려 이전 수업 자료들을 열었는데 역시나 집중이 안 된다. 좀 더 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식사 후에 나는 바로 눕지 못한다. 역류성 위염에 자주 걸리는 편이라 잘못 누웠다간 여파로 후두가 상하고 잔기침이 시작된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그 기침이 두려워 늘 열이 펄펄 끓어도 바로 눕질 못했다. 물론 베개를 쌓아 상체를 높여 주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또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는다. 그냥 이렇게 약간의 시간을 견디는 게 수월하다고 할 수 있으려나.


어젯밤에 일찍 누웠는데 잠이 금방 들지 않았다. 여러 가지 생각에 괴로웠다. 새 교황님을 맞이해 최상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교회 안이 아니라 밖에 있는 느낌이었다. 이 기쁨에 조용히 동참하고 있는 소박한 나의 기도가 어떤 가치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자꾸 관계 안에서의 나에 초점이 맞춰졌다. 사람들은 너무 많은 말을 한다. 나도 물론 많은 말을 한다. 하지만 하지 않은 말이 훨씬 많았다는 걸, 그래서 그들의 말을 교정해주지 못하고 담아두었던 나의 무수한 말이 나를 너무 무겁게 한다는 걸 알았다. 그저 미숙한 나 자신을 탓할 뿐이었다. 그렇게 밤이 지나갔다.


아침에 밉상인 나를 보며 다시 마음이 괴로웠다. 고해성사가 필요했다. 그런데 궁금해졌다. 내가 이렇게 아파하는 이유는 참으로 나로 인해 상대가 다쳤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누군가를 다치게 한 나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인 걸까.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이 전혀 반갑지 않았던 건, 자비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며 나는 언제나 무고해야 한다는 오만함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약하고 아프기 때문에 사람이다. 그리고 너를 다치게 하기 때문에 사람이다. 애초에 손상되지 않을 나의 진심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손상되지 않을 것은 가녀린 내 심장에 새겨진 예수의 이름뿐이다. 그 이름 없다면 아무것도 아닐 나를 내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거룩해짐을 믿으며 바벨탑에 오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밥 한 그릇 잔뜩 먹어놓고 10분 만에 다 소화시키라고 위장에게 이야기한들 그게 가능하겠나. 3일 쉬었으니 이제 멀쩡해지라고 뾰로통하게 부어올랐던 편도선에게 이야기한들 그게 가능하겠나. 할 수 있는 게 그렇게 없다. 나의 말로 할 수 있는 게 그렇게 없다. 왜냐하면 나의 말엔 힘이 없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걸 찾아본다면 역설적이게도 다시 나의 마음일 거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나의 마음이 관대해진다.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바뀌지 않는다. 위에서 새로 태어난 사람은 어디든지 마음대로 부는 바람과 같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마음을 다시 위로 향한다. 바벨탑을 오르지 않고 나의 땅에서 하늘을 향해 나를 열어 보이니 내 모든 게 드러난다. 내가 꾸역꾸역 집어삼켰던 나의 욕구들과 감정들. 그것들이 어떻게 부딪히고 싸워가는지 알지 못하는 나는 그저 앉아 있다. 용기를 내어 자리에서 일어나 본다. 나를 축복하는 태양 아래 서서 기다린다. 이 싸움을 끝내러 동쪽이든 서쪽이든 구름을 타고 님이 오실 것이다. 다시 바람이 분다. 구름 밀어줄 바람이 온다. 그 바람 따라 하릴없이 흔들려도 진정 괜찮다고 나에게 이야기해 주련다. 할 수 있는 게 이렇게 흔들리는 것뿐이어도 상관없다. 흔들림으로써 나의 존재를 증명하자.


"저 여기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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