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바라보는 게 좋다. 매일 달라지는 구름이 마치 하느님이 손가락으로 그린 그림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래서 하늘을 바라보면 하느님의 마음에 가닿는 느낌이 들었다. 하늘을 바라보는 내 눈을 통해 그분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시는 게 아닐까.
설움과 슬픔 때로는 기쁨과 설렘을 안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긴장했던 내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위로를 받고 또 나도 모르게 팡 터치는 재밌는 즐거움을 얻기도 했다. 지내다 보면 따뜻한 저녁 하늘의 위로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오늘은 힘든 하루였다. 누군가 내게 불쾌한 행동을 했는데 그에게 표현하지 못했다. 나는 이런 걸 싫어한다고 속내를 열지 못하고 그저 옅은 미소만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는 공동체에 돌아와 쿵쿵거리는 심장을 어째하지 못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웃고 떠들며 별반 다르지 않은 나였다. 밤이 돼서야 참고 참아왔던 눈물이 터진다. 누군가에게는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겠지만 그게 때로 나에겐 짊어지기 어려운 무거운 짐일 수도 있다. 이런 작은 순간에 나는 습관처럼 자신의 초예민함을 탓하는 내가 싫다.
언제나 어디서나 나를 불편하게 하는 작은 말과 행동들을 접한다. 나는 나만의 세계가 아닌 우리 모두의 세계에 살고 있으므로 당연한 현실이다. 얼굴이 붉어지거나 갑자기 가슴이 뛰거나, 속이 상해서 마음이 너무 아프고 눈물이 핑 돌 때 나는 내게 쏟아지는 그 모든 것을 폭력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 폭력을 감지하는 내 예민함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니 결국 나는 나 스스로에게 폭력을 행하고 있었다.
'왜 남들은 아무렇지 않은데, 나만 크게 반응하는 거지? 왜 이 정도의 불편함도 이겨내지 못하는 거지? 왜 아프다고 울고 있는 거지? 왜 쉽게 털어내고 일어나지 못하는 거지? 왜? 왜?'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 아니었다. 공격이었다. 무수히 쏟아부었다. 그렇게 나를 아프게 한 건 나 자신이었다. 내 눈에서 읽어낸 슬픔은 스스로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 데서 비롯한 것이었다.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언제나 울고 있었다. 눈물 가득 고인 우물이 있다면 그 우물에 비친 하늘을 온전히 품어낼 수 있기를.
따뜻한 저녁 노을빛 담아내는 눈망울만큼 이 내 마음도 그 온기를 담아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