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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수능장

by 감자돌이

시험 치러 출발해 보자

아침부터 시끄러웠다. 엿, 초콜릿, 홍삼. 차 등등
누가 챙겼는지 모를 간식들이 손에 들려왔다.

오늘 이 순간, 다들 나를 자기 자식처럼 대해줬다.
어쩌면 오늘 하루만큼은 모든 19살 소년, 소녀들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셨던 것 같다. 한 마음, 좋은 목표는 언제나 아름답다.

버스에 올라탔다. 창밖으로 스치는 하늘이 너무 예뻐서, 그냥 이대로 조금 더 달리고 싶었다. 신경손상과 더불어 가끔 각성물이 빠질 때쯤 난 감성적으로 바뀌곤 했다. 그래서 그런가 무척 하늘이 이뻤다.

XX학교에 도착했다. 차들이 빽빽했고, 누군가는 절을 하고, 누군가는 기도하고 있었다. 매년 뉴스에서만 보던 신기한 사람들을 보니 신기했다. 눈가가 붉어진 학생도 보였다.


‘와줬구나.’
그 말이 조용히 머릿속을 지나갔다.

교문 앞,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 후배들.
내 이름을 불러주며 응원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아서 오히려 낯설었다. 참, 고맙다.
나는 회의감을 품으며 수능에 대해 반쯤 마음을 놓은 상태였지만, 강해 보이고 싶었다.
애써 웃으며 말했다.
“나 TV 나올지도 몰라. 다 이기고 올게.”

"기대 안 받아야 잘하는 스타일인데, 신이 되고 올게. 실력 알잖아 독학의 신".

학교에서도 시에서도 나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스토리를 써 내려가기에도 좋았고, 잘 치면 모두에게 윈윈이었다.

난 입장하면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긴장됐다. 그런데 그 긴장이 나쁘진 않았다. 운동하던 시절처럼 심장이 뛰었다. 막 흥분되고 내가 질 것 같지 않다는 느낌, 각성이 만들어 낸 착각이었다. 직히 "혹시나"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품고 있었다. 저 단어는 사람을 때때로 상상, 무한한 긍정 속에 가둬놓고 희망고문을 하곤 한다.

혹시나 잘 치지 않을까?

혹시나 내가 1등을 하는 게 아닐까?


이제 본 게임 시작이네


핸드폰을 걷어가고, 간단한 설명이 끝나고, 시험이 시작됐다. 국어. 수학. 시간은 쉴 새 없이 흘렀다.

점심시간. 복도, 화장실, 교실.
어디서든 방금 전 친 시험 문제를 얘기하고 있었다.
모두가 오늘 처음 보는 사이일 텐데 친구처럼 붙어서 답을 맞혔다. 나는 그 무리에 끼지 않았다.
끝난 시험은 끝난 시험이라 생각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 계속 무언가에 휩싸여 있었다.
그게 회의감이라는 걸 입장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분이 극과 극을 왔다 갔다 했다. 희망과 부정 도저히 결정지지 못했다.

시험을 어떻게 쳤냐고?
국어 시험지를 천천히 읽었다. 처음으로, 문제를 제대로 읽어봤다. 그동안은 감으로 풀고, 상식으로 찍었다. 그동안 문제가 어렵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도 없고 너무 쉬웠다. 오늘은 아니었다. 문제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글이 읽히지 않았기에 반복했다. 어릴 때 있던 ADHD와 난독증이 다시 생긴 것 같았다.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그와 그녀들을 많이 사랑했구나. 본질이 흔들릴 정도로 왔다 갔다 한다니 정말 사랑했구나 생각했다. 시험 치는 와중 오만가지 생각을 다했다.

‘잘 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와의 약속, 어쩌면 유언. 확실한 마지막 대화.
아버지, 어머니, 누나. 날 응원해 주는 사람들.
부담감과 수능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묘하게 얽혔다.

국어가 끝나고 알았다. 망했다. 하긴 저렇게 쳤는데 잘 치길 원한 나도 웃기다. 그런데 웃음이 나왔다.
해탈이라기보다는, 그냥 허탈에 가까웠다. 정말 별 거 없었구나. 끝에 와서 무너지는구나 아님, 내가 무너지게 설계한 건가? 생각했다. 어디까지 바라본 걸까. 근데 후련하다, 뭔가 내가 뭘 해야 할지 아주 조금 가닥이 잡힌 것 같았다.

다음은 수학이었다. 이거치고 어머니가 싸주신 점심을 먹을 생각에 내심 기뻤다. 수학은 달랐다. 이해하려고 풀었다. 어떻게 보면 실험 같았다. 수능장에서, 나는 실험 중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누가 시킨 게 아니라, 내 의지로 문제를 풀고 있었으니까. 그전까지는 너무 문제 푸는 기계 같았다. 성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걸 왜 하는지 뭘 바라보고 사는지가 중요하라는 걸 2교시 도중에 알았다.

강박증과 함께 답안지를 여러 번 바꿨다. 시험을 치기보단 번호 맞추고 바꾸는데 20분 넘게 썼다.
스님들이 말씀하시는 완전히 마음을 비우지 못했다.


점심시간.
친구들과 밥을 먹었다.
시험 얘기가 아니라, 앞으로 뭘 할 거냐는 얘기.
미래를 얘기하는 건 처음이었다. 어른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을 꾹 닫고 황당하였다. 어? 내 미래는 의대 경찰대 가면 끝???이었는데 정말 뭐 하지 그래서 말을 못 했다.


3교시 시작함과 영어 시간 되었다.
늘 그랬듯 듣기를 하며 뒷문제를 풀려다,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책을 읽듯 지문을 천천히 읽었고, 문제를 풀었다.

그렇게 한국사, 물리, 화학까지 끝나고 수능도 끝났다.


수고했어, 감자돌이.


밖에 나오니 학부모들이 많았다.
난 편의점에 들러 물을 샀고, 그대로 집까지 걸어갔다. 가는 길에, 종종 담배를 피웠다.

생각했다.
결과가 어떻든 받아들이자고.
어쩌면 이게 맞는 걸지도 모르지.
어른들 말씀처럼, 아버지는
내가 정신도, 몸도 다쳐가며 얻은 결과를 바라시진 않았을 것이다.

이제야 약속 뒤에 숨어 있던 뜻을 생각하게 됐다.

해는 서서히 지고 있었고, 어두워지는 길 위에서 나는 그래도, 계속 걸었다. 수능이 끝났고 잠시 자유를 만끽해도 좋지 않을까 했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수고했다고 말했다.
내 얼굴만 봐도 마음을 아시는 분이라 별다른 말은 없으셨다.

그렇게 나는 수험생활을 끝냈다.


수능이 끝난 뒤의 삶은, 수능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장 먼저 한 건 휴대폰을 사는 일이었다.
19년 하고도 11개월. 거의 20년이 지나서야, 나는 내 폰을 처음 가졌다.
가장 최근 모델이었고, 가격은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샀다.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종이에 적어두었던 전화번호들.
페이스북으로 연락 주고받을 때 나한테 넘겨줬던 번호들.
그런 번호들로 연락처를 가득 채웠다.

한 명, 한 명 이름과 전화번호를 넣을수록 인연이 참 많았구나 생각했다. 아쉽게 멀어져 버리기도, 적이 되어버리기도, 뜻이 맞아 함께하기도,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

항상 궁금했던 카카오톡도 처음으로 깔았다.
내 폰엔 어플 딱 하나, 카톡만 있었다.

막상 폰이 생기니 전화 말고는 별로 필요 없었다.
사실, 나에겐 전화가 제일 중요했다. 이젠 어머니 누나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한 건, 패턴을 버리는 일이었다.
생활 패턴.
물론 그전에도 딱히 일정하지는 않았지만, 어머니 집에 있으니까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잠도 더 잘 왔다. 암묵적인 의지였다. 매번 강하다 강한 척했던 나일지라도 어머니 앞에선 애기였다.

그리고 매일 새벽까지 친구들과 PC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가끔은 운동이나 헬스장에도 갔다.
몸을 쓰는 건 여전히 좋았다.


시간을 흘러 어느덧 수능성적이 나오고 학교를 가게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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