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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등교

그리고 졸업식

by 감자돌이

졸업을 앞두고, 신은 죽었다고 적었다

수능 등급컷이 나왔고, 성적표를 받기 위해 학교에 갔다. 사실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자율적인 분위기였지만, 나는 굳이 갔다.
‘이제 학교를 언제 또 가보겠어’ 하는 마음이기도 했고, 어쨌든 결과가 궁금했다. 기대는 없었지만.

학교에 도착하자, 거의 모든 친구들이 나와 있었다.
며칠 안 봤다고 다들 확 달라져 있었다. 염색에, 헤어스타일에, 옷까지도. 이제 정말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싶었다.

"그동안 뭐 했냐?"
"예뻐졌다."
"야, 너는 왜 이렇게 잘생겨졌냐?"
서로 안부를 나누다 선생님이 오셨고, 한 명씩 성적표를 나눠주셨다.

내가 받은 건 평균 2~3등급. 아, 그냥 그랬다.
그저 ‘웃을 나름이다’라는 말만 되뇌었다.
책상 위에 ‘신은 죽었다’고 남기고, 짐을 챙겨 조용히 나왔다.

기숙사에 들러 후배들에게 책을 건네고, 옷을 챙겨 혼자 캐리어를 끌고 나섰다.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 뭐 하고 살지?’

기대에 닿지 못한 마음, 허전함과 죄송함 사이

1등도, 신도 되지 못했다. 허전했고, 어쩐지 죄송했다. 아예 망한 것도 아니었다.

정시는 아직 접수도 안 했고, 솔직히 큰 관심도 없었다. 주변 친구들, 선생님, 지인들은 한 목소리로 ‘재수하라’고 했다.
“2~3등급이면 아픈 것만, 너 마음만 안정만 되면 1등급도 가능해. 늘 받았던 거잖아”
“아니면 7급 공무원 준비해 보는 건 어때?”

"너 정도면 금방이잖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경쟁하는 삶은 내게 맞지 않는다고, 딜레마 속에서 허우적대는 느낌이라고. 그러자 그들은 말했다.
“그 재능을 썩히지 마라. 대학은 가야 한다.”

지인들은 내가 어서 어둠 속에서 나오기를, 물론 뇌전증이나 정신 관련 병으로 인해 자존감, 긍정이 떨어졌지만 어서 회복하길 원했다.

어머니께서 대학은 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피시방에서 친구에게 부탁했다.
“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아무 대학이나 그냥 접수 좀 해줘.”

친구가 물었다.
“무슨 과?”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말했다.
“기술의 발전을 느껴보고 싶어. 내가 문명을 늦게 접했잖아. 그게 늘 아쉬웠거든.”

그렇게 해서, 나는 XX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다들 힘들었고, 그래서 더 뭉쳐야 했다.

엄마와 대화를 많이 했다. 누나와도, 함께 가족 여행을 다녀오며 자연스럽게 용서를 주고받았다.
다들 나 때문에 고생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뭉쳐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다시 가족이 되어야 했다.

졸업식, 모두가 내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졸업식 날이 되었다. 전교 1등, 수능을 잘 친 친구들이 상을 받았지만,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내 졸업소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신이었기 때문에?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그 이유는 알 것도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친구였고, 후배였고, 선배였고, 인상 깊은 제자였다. 그러니 쉽게 사라지지 않을 존재였다. 영화에 빗대어 표현하면 "씬스틸러"였다.

단장에 나서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제가 이 자리에 설 레벨은 아닙니다. 그래도 10분이란 시간을 주셨으니 늘 하던 헛소리, 아닌 헛소리 한번 해보겠습니다.

가끔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은 참 재미있다고.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가치를 너무 늦게 알아차리거나, 스스로 저평가합니다.

키가 작다고 체대를 포기하고, 6등급이라고 서울대를 포기하고, 왜 그렇게 빨리 포기합니까?

목표를 되뇌었다는 건,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거고 그건 결국 행동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뜻 아닐까요?
세상 생각보다 높지 않습니다. 지레 겁을 먹기 때문에 높아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 가정하지 말고 그냥 해보세요. 누구나 자신만의 신이 될 수 있습니다. 본인은 언제나 본인에게 무한한 신뢰를 주고 또 신뢰를 받으니깐요.

제 조언이 큰 의미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저보다 더 좋은 결과로 증명하신 분들의 말이 훨씬 값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마디만 더 하자면,
무언가 간절히 원한다면 미친 듯이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다만, 자신을 잃지 마세요.

수학 문제를 풀다가 보면, 한참 후에야 처음부터 방식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있습니다.
본질을 놓친 채 증명만 계속하면, 결국 손해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손해보다는 속상함이 큽니다.

그게 단지 시간 낭비로 끝나면 다행인데, 누군가는 돈을, 누군가는 저처럼 건강을, 누군가는 친구를, 그리고 가족을 잃기도 합니다.

그러니, 본질을 절대 잃지 말고 당신의 원하는 삶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저처럼 실수도 하고, 돌아서기도 하면서요. 그게 인생이니까요.

참, 저보다 훨씬 대단하신 분들도 많은데 인생을 운운해서 좀 죄송스럽기도 하네요.

재밌는 학창 시절이었습니다.
좋은 친구, 좋은 이성, 좋은 스승, 좋은 선후배, 그리고 좋은 위치까지. 모든 게 참 좋았습니다.

제가 선을 넘기도 했고, 규율을 어기기도 했고,
누군가 보기엔 나쁜 짓이라 할 행동도 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 부분에 대해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전 재수는 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제가 ‘신은 죽었다’고 적었던 그날 이후로부터
졸업식이 있기까지 두 달, 많은 분들의 성원을 받으며 다시 자신감을 되찾았습니다.

어딜 가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저와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저보다 출발선이 앞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다들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이제 각자의 길을 개척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너무 뻔한 길은 재미없잖아요.

이상, 감자돌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상소감을 끝마쳤다.

10분 소감 말하는 건 꽤 길었다.


수상소감이 끝나고, 친구들과 진하게 포옹했고, 서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사진도 찍고, 폰 번호도 서로 교환했다.
마치 한 시절을 제대로 마무리하듯.

그렇게 다들 떠난 뒤,
나는 집으로 가기 전, 학교를 조용히 걸었다.

기숙사부터, 내가 처음 머물렀던 방.
급식실과 강당, 고백했던 운동장.
1학년 교실, 2학년 교실, 3학년 교실.
과학실과 매점, 그리고 그 모든 기억들이 겹겹이 쌓인 복도들.
심지어 학교 담장을 넘어
피시방 거리까지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곳엔 사진을 찍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에겐 모든 순간이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듯했다.


이젠 난 성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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