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마음을 다정하게 품는 연습
가끔은 그런 날이 있다.
눈을 떴을 때부터 무기력하고,
어딘가 마음이 흐릿한 날.
딱히 슬픈 일도, 힘든 일도 없는데
몸이 천근만근 눌리는 느낌.
오늘은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그럴 때의 나는 예전의 나처럼 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예전의 나는 그런 날을 ‘게으름’이라고 불렀다.
억지로 일어나 씻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다그치고,
하루를 빈틈없이 채워야만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다.
그 무기력함을 부드럽게 인정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이제는 그런 날이 오면,
창밖을 한 번 보고, 커튼을 닫는다.
침대에 다시 누워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올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조용히 튼다.
그리고 이렇게 속삭인다.
“오늘은 그냥, 이렇게 있어도 괜찮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도 ‘의미 있는 하루’가 될 수 있다는 걸
조금씩 믿어가고 있다.
가끔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는 날도 있다.
밥 대신 간단한 과일이나 시리얼로 끼니를 때우고,
물 한 잔을 마시는 것도 잠깐의 의식처럼 느껴질 때.
그럴 때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왜 이러지?” “무슨 문제지?” 같은 말 대신
그냥 조용히, 내가 지금 필요한 건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무기력은 게으름이 아니다.
그건 잠시 멈추어야 할 시기라는
내 몸과 마음의 신호다.
누군가에겐 아무 일도 하지 않은 하루가
낭비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 하루가 회복이 된다.
나는 그런 날들을 '흐림의 날'이라 부른다.
구름 낀 날씨처럼,
마음에도 흐림이 끼는 날이 있다.
하지만 그건 영원하지 않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맑아질 날이 온다는 걸.
그 흐림의 날들을 무리해서 맑게 만들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는 연습.
그게 나를 더 튼튼하게 만들어준다.
그런 날, 나는 아주 사소한 것들로 하루를 채운다.
이불 속에서 라디오 듣기,
따뜻한 물로 세수만 하기,
좋아하는 향 피우기,
불 끄고 무릎 담요 덮고 멍하니 있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고,
그저 ‘존재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날.
오늘도 그런 날이다.
이 글도 어쩌면 하루 종일 멍하니 있다가
조금 마음이 풀린 오후에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마음이 가벼워 글이 술술 써지고,
어떤 날은 단 한 문장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게 당연하다는 걸 안다.
모든 날이 반짝일 수는 없다는 걸.
그래서 나는 오늘, 흐린 날의 속도대로 살아간다.
할 일을 미루고, 계획을 덮어두고,
그저 지금의 나를 다정하게 품는 하루.
그런 날도 있어야
우리는 다시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