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에도 괜찮다고 말하기
그날 아침, 눈을 떴는데 몸이 묘하게 쑤셨다.
평소처럼 게으름일 줄 알았는데, 느낌이 좀 달랐다.
목도 칼칼하고, 허리며 어깨며 온몸이 찌뿌둥했다.
"설마…"
며칠 전, 잠깐 창문을 열어두고 잤던 게 화근이었을까.
아니면 그동안 무리해서 쌓인 피로가 슬그머니 얼굴을 들이민 걸까.
아무튼, 나는 감기에 걸렸다.
혼자 사는 집에서 아프다는 건 조금 서글픈 일이다.
누가 약을 사다 줄 것도 아니고, 따뜻한 죽을 끓여줄 사람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 켠은 조금 편했다.
'아, 오늘은 진짜 아무것도 못해도 되겠다.'
그날 하루는 기록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커튼도 안 걷고, 커피도 안 내리고,
배달로 죽 하나 시켜놓고 다시 이불 속에 파묻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루는 흘러갔다.
원래 이런 날이면 스스로를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약하지?"
"왜 이렇게 게으르지?"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도 흔들리지?"
그런데 그날 나는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생각보다 잘 살아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불 속에서 땀을 흘리고, 약 기운에 멍해진 채로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게 꽤 괜찮았다.
그날 밤, 열이 조금 내리고 나서
천천히 일어나 따뜻한 물을 마셨다.
문득 창밖을 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내 방 안은 조용하고 따뜻했다.
나는 속으로 나에게 말했다.
"오늘도 잘 버텼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그 순간 알았다.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다정한 말은
결국 이런 게 아닐까.
"괜찮아. 이렇게 쉬어도 괜찮아."
"너, 진짜 고생 많았다."
가끔은 그런 날이 있어야 한다.
억지로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날.
그냥 이불 속에서
천천히 회복하는 날.
그날 이후로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삶이라는 건,
모든 날이 반짝일 필요는 없고
모든 날이 알차야 할 이유도 없다는 것.
흐리고, 멈추고, 멍한 날이 있어야
다시 걷고, 웃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런 날이 찾아오면
나는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을 거다.
이불 속에서 조용히 속삭일 거다.
"오늘도 잘 견뎠어. 너 진짜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