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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곧을 정 하늘 민 Oct 12. 2024

유치원 가기 싫다(1)

그래도 가야지. 네가 선생인데.



사실 나는 유치원 교사였다. 불과 지난 2월까지만 하더라도. 평범한 유아교육과 4년제 대학을 나와 4년간의 학위를 마치고(중간에 1년 휴학을 했었다.) 임용고시에 낙방한 뒤 사립유치원에 취업한 교사 말이다. 워낙에 낙천적이고 발랄했기에 유아교육과에 재학 중이던 시절부터 학과와 ‘잘 어울린다’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나도 내가 ‘유치원’이라는 조직에 잘 적응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던 중 임용고시생활을 겪으며 처음으로 인생에 있어 ‘암울함’이라는 단어를 체감하기 시작했고(학창 시절 나름 공부 잘하는 축에 끼는 편이었지만 무한경쟁 앞에서, 그리고 내가 왜 틀렸는지조차 알 수 없는 임용고시의 오답 속에서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고 패배의식에 젖기 시작했다), 취업과 동시에 찬란히 해결될 줄 알았던 이 ‘암울함’의 문제는 유치원이라는 기관에 속해 있으면서 되려 더욱 극심하게 날 파고들어 지독한 ‘우울함’을 수반한 ‘암울함’으로 성장해 버렸다. 



문제가 무엇일까. 


지난 1년 내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립유치원의 현실은 생각보다 너무 열악했다. 꿈에 부푼 새내기 초임교사의 동심 따위는 전혀 지켜줄 수 없을 정도로 이 세계는 냉혹했고, 현실 그 자체였다. 초임 교사를 담임으로 받아주는 유치원은 거의 전무했다. 소위 ‘괜찮다’는 유치원들은 경력이 있는 교사를 위주로 채용을 했고, 심지어 자리도 잘 나지 않았다. 하지만 온전히 내 교실에서 나만의 학급을 운영하고자 하는 꿈이 있던 나는 담임을 시켜준다는 한 유치원에 다니기로 마음을 굳혔고, 이는 1년 내내 나를 지독하게도 괴롭힐 선택의 시작이었다. 



처음 유치원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환대해 주시는 원장님과 좋은 동기들, 전년도 선생님들이 1명 빼고 모두 나가셨다는 점 빼고는 좋은 듯 보였다. 원감님과 옆 반 선생님도 꽤나 까칠해 보이셨지만, 이미 학과 생활과 알바를 통해 여러 유형의 인간들을 만나왔던 나는 인간관계라면 자신이 있는 터였다. 이곳에서 2년 정도 경력을 쌓으며 일하려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다짐은 미처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무너져 버리게 되었다.          



과중한 업무, 체계 없는 시스템, 무책임한 관리자


고작 한 달을 다녔을 뿐인데 이 유치원의 문제가 너무나 명확히 보였다. 


우선 시스템이 말도 안 되게 사람을 착취하는 방식이었다.

오전 8시 10분 혹은 8시 30분까지 출근하여(당직에 따라 다르다. 내가 다닌 유치원은 일찍 출근했다고 일찍 퇴근시켜주지 않았다.) 아이들과 일과를 보낸 뒤 3시부터 당직으로 돌아가는 방과 후 업무에 1시간여 쯤 할애하면 나머진 본인의 업무 시간이 되는데 이때에 다음 날 수업 준비 및 환경 구성, 원아 관리(학부모 상담), 각종 서류들.. 이 모든 것들을 해야 했다. 그런데 정규 퇴근 시간은 5시 30분. 1시간 반 안에 이 모든 개인업무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행사가 있는 날엔 공동업무가 우선이라 하여 개인업무는 꿈에도 못 꾼 채 무일푼 중노동을 시키기 일쑤였다.(도서관 안에 가득 차 있는 교재 교구, 책장, 서랍장 등을 통째로 다른 방에 옮기라는 지시까지 들어봤다.) 그러면 그날 해야 했던 업무들은 뒤로 밀린 채 또 정시 퇴근은 꿈도 못 꾸게 만드는 하루하루를 만들었다.


체계가 없는 것은 또 어떠한가.

사람을 이토록 혹사시키기 때문에 방과 후에 잠깐식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고용했던 선생님들도 한 달 하면 그만두시고, 두 달 하면 그만두시고, 자리가 채워지지 않을 경우 담임교사들이 그 공백을 메우고..(당연히 개인업무 시간을 쪼개어 공백을 메꾸게 된다.) 사람을 인격적 존재가 아닌 그저 소모품, 톱니바퀴쯤으로 여기고서는 업무의 과중함을 토로하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교사들의 희생을 강요했다. 그러다 보니 체계가 잡힐 리 없고, 업무 분담이 안정화될라 치면 사람이 바뀌고 개개인에 맞추어 업무가 다시 재배치, 재분산 되어 업무 효율성이 극도로 낮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게 되었다. 


또한, 교사를 인간으로 대우해 주지 않는 원감님. 모든 일거리를 원감님에게 주고 자신의 할 일을 바삐 하러 다니시는 원장님(본인의 개인 일이 비중을 많이 차지했다). 극과 극에 위치한 두 상사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교사들을 괴롭게 하기 시작했다. 


매주 있는 애국조회 시간과 교사 회의 시간, 원장님은 제 시간을 지켜 자리에 있는 것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교사들은 늘 원장님에게 ‘지금 ~할 시간이 되었으니 얼른 자리에 와 주시라’는 말을 밥 먹듯이 해야만 했다. 

원감님은 다른 부분으로 더 심각했다. 유치원 운영에 있어 약간의 실수만 나와도 얼굴이 욹그락 붉으락 해지며 교사들을 향해 온갖 감정들을 쏟아냈고, 상식적으로 웃으며 지나갈 수 있는 실수에도 본인의 감정이 조절이 안 되는 날에는 지나치게 화를 내며 비난의 말들을 쏟아부었다. 그걸 듣는 교사들은 ‘내가 이렇게까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인가’하는 의문감과 당혹감에 늘 괴로워하며 매일매일을 버텨나가야만 했다. 


더 무서운 건 본인은 본인이 다른 이들의 인격을 해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원감님 본인은 자신을 마땅히 할 말을 하는 책임감 있는 중간관리자 정도로 생각하시는 듯했다. 내가 이전에 쌓아왔던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 유형이었다. 너무나 뻔뻔한 그녀의 태도에 ‘원래 사람이 할 말을 저렇게 인격모독식으로 하는 게 맞는 일인가?’하는 내 의문이 도리어 이상히 여겨지는 순간들이었다.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자 급기야 교사들은 무엇 하나 결정을 할 때도 자신의 자율적인 결정보다는 원감님의 눈치, 원감님의 견해에 맞춰 일을 처리하게 되었다. 무엇 하나 원감님의 심기를 거슬렸다가는 하루이틀 피곤해질 게 뻔하니, 그냥 자율적인 학급 경영권과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포기한 채 상사의 의견 복제기로서 하루하루 살아가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한 달 여쯤 지나자 함께 입사했던 동기 한 명은 여러 이유를 들며 퇴사를 선언했고, 아직은 버틸 여력이 있던 나는 동기와 함께 남아있지 못함에 아쉬워하며 조금 더 버텨보기로 다짐했다.      


이렇게 유치원에서의 나날들은 괴롭지만 착실하게 하루하루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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