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
운동 중에 지인 전화가 왔다.
"언니, 추석 기차표 예매하는데 출발일이 안 보여"
"브라우저 크롬으로 접속했어?"
운동하다 말고 피트니스 한 켠에서 여러 경우를 설명했다. 내가 기억하는 프로세스라면 많은 대기번호와 가끔씩 뜨는 통신상 오류라는 팝업 외엔 문제 될 게 없었다.
명절 기차표 예매는 오전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도 지인 예매를 도와주기로 하고 곧장 집에 오자마자 윈도우즈 노트북을 켰다.
최근 폰 앱으로만 접속해서 데스크톱 브라우저 접속은 간만이라 정확한 url이 기억나지 않아, 구글링 링크를 타고 들어갔다. 진입한 화면은 이미지와 '명절 예매화면 이동'이라는 텍스트로 구성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명절 기차표 예매 화면이다. 쎄한 느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어 다른 검색 결과를 클릭했더니, [명절 승차권][평상시 승차권]으로 구성된 익숙한 화면으로 진입했다.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것이 과업이다 보니, 이 사태를 짚어보고 이 업에 종사하고 있는 나 스스로에게도 경각심을 가질 겸, 기록을 남겨본다. 짚어볼 것들이 좀 되지만, 핵심적인 몇 가지만 얘기하고자 한다.
명절 기차표 예매 먹통/대란, 이 사태의 근본적인 사단은 명절표 예매 사이트의 리뉴얼이고, 이은 치밀하지 못한 QA/QC로 경우의 수를 예측 못해서가 아닌가 생각된다. (올해 설 기차표 예매는 하지 않아 이번에 리뉴얼을 한 것이 맞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2025 설 기차표 예매로 구글링 결과를 보면, 이번에 리뉴얼한 듯하다.)
십여 년이 넘게 코레일 명절 기차표를 예매하며, 예매 사이트의 자잘한 수정 또는 업데이트는 봐 왔다. 내 기준에선 수정 또는 업데이트 수준였다. 그런데 이번 추석 기차표 예매 사이트는 리뉴얼이었다.
10년이 넘는 서울/경기 타지 생활 동안에 명절 기차표 예매의 숙련된 경험자로, 상상초월 처음 보는 100만이 넘는 엄청난 대기 순서.
코레일로 구글링 해서 진입한 명절표 예매 화면.
0.1초를 다투는 예민한 명절 기차표 예매에 몇 분이 지나도록 미동도 없길래,
쎄해서 다른 검색 결과를 클릭했더니 드디어 진입된 [명절승차권/평상시 승차권] 명절표 예매 화면.
출발일이 보이지 않아, 표 예약을 못하고 있다는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긴 대기를 거쳐 3번이나 시도했으나 모두 출발일이 보이지 않는다며, 어떻게 하면 되냐고 경험자이자 이 업계人 내게 전화를 했다.
지인은 윈도우즈 11 사용자로, 혹시 컴퓨터 업데이트 안 된 것들이 있는지 확인 후 있다면 업데이트하고 다시 시도해 보라고 했다. 저녁이 돼서 전화가 왔다. 컴퓨터 업데이트 후부턴 출발일이 보였다고...
(출발일이 안 보인다던 화면을 보지 못한 것이 꽤나 아쉽다. 이 업을 하다 보니, 왜 그랬는지? 보이지 않았다면 어떤 UI들이 출력되었는지?)
뭐 바뀔 수는 있다. 하지만 이미 오래 학습된 사용자 경험을 고려했어야 했다. 특히나 신속/정확이 중요한 민족 대이동 명절 기차표 예매는 더욱이... 가이드라인 또는 매뉴얼을 제공하지만 제대로 보는 이는 많지 않다. 그래서 이를 고려한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 중요하다.
• [즉시 예약]을 없애고 [조회 후 예약]으로만 예약
조회 후 예약자들과 빠르게 치고 빠질, 즉시 예약자들의 사용자 분산이 되지 못해 100만이라는 상상초월 대기자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지 않을까 생각된다.
• [왕복]이 → [여정정보 등록]으로 변경
왕복 예매 어딨지? 나중에 메인에 있던 가이드를 읽어보고서야 왕복을 한 번에 예매하려면 [여정 정보 등록]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했다. [여정정보 등록]으로 변경된 것도 인지 못했는데, 하단에 있을뿐더러 내 폰에서는 화면 하단에 겨우 걸쳐져 있어 기능 유무조차 알기 힘들다. 기종에 따라 한 화면에 안 담아졌을 수도 있겠다 싶다. 이 기능을 과연 얼마나 되는 사용자가 이용했는지 궁금하다. GA 같은 분석 도구가 구현돼 검토가 가능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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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뀐 UXUI/사용자 flow로 더 촉박하게 된 3분
기존 [왕복]이 [여정정보 등록]으로 바뀌면서 기존 3분 내 예매는 꽤 촉박한 시간이었다.
1) 여정 등록을 하지 않는 사용자
왕복을 각각 예매해야 하기 때문에 동일한 flow를 2번을 거쳐야 한다. 한 번에 정확한 예매가 관건인 명절표는 꼼꼼히 확인해서 신속하면서도 신중하게 최종 예매 버튼을 눌러야 한다. 그래서 내 경우엔 오는 날 표를 예매하다 3분이 넘어갔고 다시 엄청난 대기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10년 넘는 명절 기차표 경험&숙련자다!)
2) 여정 등록을 하는 사용자
여정을 등록 / 삭제하는 과정에서 추가 flow들이 더해지며 더 긴 flow가 됐다.
• 태그 형태로 구현된 날짜 선택 버튼
드롭다운 또는 달력과 같은 일반적/익숙/학습된 형태가 아닌, 키워드 태그에 사용되는 UI로 구현. 여기서 공간 차지를 않았더라면, 하단 CTA 버튼 노출이 좀 더 확보됐을 것이다.
이 업계의 경력자로, 지극히 개인적인 내 생각은
장비 증설과 같은 물리적인 것 외, 각 장비/통신 간 결합과 세팅도 중요하다고 들었다. 10년 넘게 명절표를 예매하며 처음 보는 100만 명이 넘는 대기자수, 이 부분도 관계가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사용자가 지정한 시간의 3시간 이내 열차가 예약 됐던 [즉시 예약]을 없애서, 사용자가 빠르게 치고 빠질 수 없었고 이것이 엄청난 숫자의 대기자를 유발한 건 아닐까?
따라서 사용자의 사이트 체류 시간도 길게 만든 건 아닐까?
QA/QC의 전문 인력이 없었거나, 치밀하지 못한 체크 리스트에 허점이 있었던 건 아닐까? 체크 리스트조차 없었을지도~ 규모가 작은 회사나 프로젝트의 경우, 전문 인력이 없는 게 대다수였고 내 기준에선 적당히 넘어가는 사례들도 많았다.
- 크로스 브라우징(종류/버전), 멀티 N스크린, 운영체제별 테스팅 등
- case by case 테스팅 등
과하게 동글동글한 형태라던가, 데이터양과 정보의 우선순위/그룹핑에 적절한 배치가 중요한 조회 결과에 단순한 리스트를 대신한 티켓처럼 꾸민 UI 등...
개발 참여자들이 UXUI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책 <UX/UI의 10가지 심리학 법칙>, 닐슨 노먼의 10가지 휴리스틱 원칙에 좀 더 엄격히 접근했다면 이번 사태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기획/디자인/개발 그 누구도 이 문제를 인지를 못했던 걸까? 이들 모두가 지금까지 명절표 예매를 한 번도 이용해 보지 않았던 걸까? 어쩌면 한정된 자원(인력/비용 등), 이해 관계자들/의사 결정권자의 권한, 촉박한 일정에 발현된 사태였을지도 모르겠다. 당일 '내 이럴 줄 알았다'며 한탄했을~
보다 보니 '왜?' 하는 질문과 '이랬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드는 생각들도 있으나, 그것까지 글에 더하기엔 너무 길어질 것 같기도 하고 발행도 늦어질 것 같아 이 정도로 마무리한다. ㅎㅎ
어디까지나 이 업의 경력자로, 개인적인 추측과 짐작, 견해이라는 점~
한 해에 두 번, 여전히 '민족 대이동'이라 수식어가 붙는 명절.
이번 추석 기차표 예매 때문에 출근하면서부터 3시간이나 폰을 붙잡고도 실패했다는 글을 봤다. 이번 추석 기차표 예매 먹통/대란 사태의 데이터 및 사용자 행동 분석을 통해, 다시 같은 실수를 범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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