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인적 영광, 물질적 쟁취, 성공이 유일한 목적이다. 남의 디너파티 여담으로 되새겨지는 이방인 성공스토리 따위. 관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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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h is wasted on the young.’
-George Bernard Shaw
지금은 4학년의 마지막 학기. 교환학생으로 간 네덜란드 대학에서 과목의 절반 이상을 낙제하는 바람에 내 마지막 학기는 쉼표이긴커녕 학점 메꾸기 전쟁이라고나 할까. Chicago Consulting Group의 여름 인턴십때문에 기말고사를 못 본다고,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니 겁내 당황하던 반 다이크 교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험을 과제로 대신해도 되냐고 물으니 황당해하던 그 표정. 그래, 뭐. 좀 대범했다. 그래도 물어봐서 손해 볼 건 없으니까.
어쨌든 연희대에서 보내는 마지막 학기를 절대 평가의 메카, 국제 학부에서 들을 수 있다니 천만다행.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코리안 대학의 국제화를 취지로 신설된 국제 학부는 전 강의가 영어로 진행되며 연희대에서 유일하게 절대 평가로 학점을 준다. 학생들의 영어 포비아 때문에 아직 베일에 싸여 있지만, 영어만 구사한다면 개설과목의 난이도는 중학생도 풀 수 있는 수준이다. 예를 들면 ‘Introduction to Korean Furniture.’ 과목의 시험 문제가 ‘왜 한국 가구의 높이는 제한적인가?’였고, 답은 ‘천장이 낮아서..’였다. 이 정도 수준의 영어 라이팅만 하면 A+가 나온다. 이러니 몬트리올에서 유치원을 졸업하고 십 년 이상을 해외 국제학교에서 생활한 내가 학점 따기가 얼마나 쉽겠냐. 몇 년 후 국제 학부의 인기는 폭발하게 된다. 나의 선견지명이란. 영어만 할 줄 알면 학점이 나오니, 외국물 좀 먹어본 애들이 취업을 위해 학점세탁?을 하러 몰려든 것이다.
2000년대 초반의 연희대에선 대학교를 다니기 전에 해외에서 생활한 애들이 그렇게 많진 않았다. 나처럼 부모님이 외교관이거나 혹은 무역회사 관련자거나 해외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부모님을 따라 살다 온 경우들로 상대적으로 다른 학부 학생들보다 유복했다. 그래서 그런지 국제학부에는 해외 명품 브랜드를 입은 아이들이 유독 많았다.
지금은 ‘International Business’ 과목의 조별 최종 발표시간. 직장인이 다 된 양 다들 PT라고 부른다. PT를 하겠다는 학생들의 저 유니폼 같은 옷차림들 좀 보라지. 도대체 선을 보러 가는 건지 수업에 온 건지.. 아르마니 스타일의 검은색 정장에 리본 장식 페라가모 구두, 그럴싸해 보이는 실크 스카프 포인트까지. 물론 대부분 짝퉁이다. 페라가모 구두가 진품이면 고무신처럼 저렇게 일자로 구겨지지 않을 테고, 저 스카프가 100% 실크라면 이렇게 흐린 날 거울처럼 반짝이지도 않을 거다. 벽난로 가까이에 가면 녹아버릴지도.
물론 진품을 쳐 바르는 애들도 있다. 주민등록증에 찍힌 강남구 주소를 이마에 문신한 것처럼 구는 종자들. 맨질맨질한 프라다 백팩이 나란히 걸어가는 풍경을 국제학부 앞 산책로에서는 쉬는 시간마다 목격할 수 있다. 미우챠 (Miuccia Prada)가 보면 기절할걸. 이렇게 단체로 다 같이 EU 토산품으로 치장하라고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만드는 건 아닐 테니까. 물론 나일론 백팩은 중국 공장에서 찍어내겠지만. 다들 좀 사는 것처럼 보이려고 천편일률적으로 따라 하는 이 사회. 남 모방 하기가 대한민국 종특인 건지. 여하튼 내가 여길 뜨고 싶은 이유가 바로 이런 지긋지긋한 획일 문화 때문이다.
다시 수업에 집중. 스테판과 클로이의 발표시간이다.
스테판은 독일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를 둔 하프. 클로이는 자기의 영문 이름을 영미식으로 제대로 발음도 못하는 코리안 네이티브다. 이국 땅에서 태어나 태생이 클로이면 이해가 가지만 이 한반도에 태어나서 왜 멀쩡한 이름 석자를 버리고 마이 네임 이즈 ‘끌.로.에.’라고 하는 거지? 프렌치가 되고 싶은 건가. 영국에서는 중저소득층의 비틀린 신분 상승 욕구가 함축된 이름으로 여겨진다는 건 모르고 있겠지..
스테판과 클로이는 세계 투자은행 자산을 비교하는 표를 파워포인트로 띄웠다. Deutscher Kredit가 투자은행 자산 0순위라며 흐뭇해하는 스테판. 그의 몸 어딘가에는 게르만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증거인가. 복화술을 하듯 연신 고개만 끄덕이는 클로이, 아니 끌로에. 그런데 저 수치는 부채를 감안한 건가? 무리하게 부채 끌어당겨 자산 증식하다가 IMF 때 망한 회사가 한 둘이 아닌데. 벌써 잊어버렸니? 10년도 안 지났다고! 그리고 부채 상환일에 새로운 부채로 돌려 막기 못하면 저 수치는 순식간에 사라질 신기루인데. 그리고 스테판, 왜 양복에 양말을 안 신은 거야? 발표 끝나자마자 와이셔츠 단추를 풀고 카프리 섬에 요트 타러 갈 것처럼. 미용실에 깔린 GQ 코리아의 에디터는 패션도 때와 장소를 구분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건지 굳이 독자에게 설교하지 않는 건지. 참.. 그래도 귀여우니 참아주자.
그렇게 마지막 학기는 어설픈 발표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나는 취리히 증권의 채권 발행 데스크 인턴십에 지원했다. 인터뷰는 1차, 2차 이런 것도 없이 실무자 두 명과의 인터뷰 한 번이 다였다.
"손세진 씨는 지금 4학년 마지막 학기 휴학이시죠?"
"네. 졸업하기 전에 투자은행 쪽 경력을 쌓고 싶어서 취업 게시판을 보고 지원했습니다."
"저희가 매년 가을에 인턴을 뽑아요.. 이 자리를 거쳐간 학생들이 다 잘 나가요. 업무량 많은 건 아시죠? 보니까 여름에 Chicago Consulting Group (CCG)에서 인턴십 하셨던데 그쪽처럼 매일 밤샘하고 그렇진 않아요. 궁금해서 묻는 건데 CCG에서 최종 오퍼 받으셨나요? 오피스가 저희 회사 바로 아래층이라 좀 신경 쓰이겠어요.."
‘아, CCG 오퍼는 왜 물어본담. 서로 핏이 안 맞았던 거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일단 투자은행에 대한 나의 담대한 열정을 구토하듯 쏟아내고, 물어보지도 않은 내 장단점을 자신감 있게 열거했다. 물론 단점은 투자은행 인터뷰 모범 클리셰 답안- ‘제가 너무 어그레시브 해요. 성격이 급해요’ 같은 위액 쏠리는 답변으로 마무리했다. 그래도 ‘지나친 완벽주의자’라는 말까지는 참았다. 이건 정말 들어주기 역겨우니까.
인터뷰를 하고 나오는데 스테판이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아, 다음 지원자인가하고 그냥 지나치려고 하는데 그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번에는 양복에 양말을 신고 있었다.
“저기.. 수업시간에 봤어요. 형”
“아 네, 그래요. 저도 봤어요. 행운을 빌어요.”
거짓말, 어차피 한 명 뽑는 자리인데 내가 되어야지. 나를 형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내 호적조사를 좀 했나. 그래 아우면 네가 양보해라. 귀엽지만 내 타입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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