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세진, 아무리 금요일이라 해도 너 일 너무 안 하는 거 아니야? 인터뷰 본다고 계속 싸돌아다니기만 하고.."
“.. 권 이사님이 취리히 증권 풀타임 오퍼 안 주셨잖아요?”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사님도 내가 잘 되길 바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냥 오피스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가해져서 심심풀이로 나를 툭툭 건드리는 거였다.
“야, 그런데 너 Deutscher Kredit 인터뷰는 진행 중인 거야 끝난 거야?”
“오늘 오후에 2차 면접 결과 알려준대요.”
“그래? 그래서 되면?”
“다음 주 월요일 싱가포르행 비행기 타요. 화요일 온종일 인터뷰하고 수요일 돌아와요.”
사실 저번 달에 인터뷰 전 과정을 이사님에게 설명했다. 불가피하게 며칠 비울 수 있으니 양해 미리 구하겠다고. 아마 그는 내가 최종 라운드까지 갈 거라고 예상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불가능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은 내가 갈비탕 테이크 아웃 쏠게. “
공짜밥에 류 차장님이 옆에서 손뼉 치며 환호했다. 그녀의 베이스 연봉은 적어도 1억 5천.
“그리고 오늘 한가한데 점심 먹고 일찍 퇴근해. 전화 기다리느라 졸라 심란하겠는데?”
종각역 지하보도를 걸어 또다시 진공 플라스틱 용기안 출렁이는 갈비탕과 서비스 파전을 들고 사무실에 도착했다. 이 짓도 이번이 마지막일 듯했다.
파전을 여러 조각으로 찢어 각각 들고 갈 수 있도록 종이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우리는 사무실 한가운데 있는 작은 책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먹지 않았다. 각자 들고 가서 자기 책상에 앉아 인터넷 쇼핑창을 바라보면서 먹었다. 이게 서로 편했다.
진공 포장을 뜯자마자 억눌려 있던 김이 솟아 나오기 시작했다. 자욱한 것이 마치 불투명한 내 미래처럼 보였다. 천장에 달린 형광등이 안갯속의 여명 같았다. 혼자 오버 좀 그만 떨고 마음을 추스르자 생각하는 찰나 핸드폰의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 제한 번호였다.
“여보세요?”
“Deutscher Kredit이에요. 2차 면접 결과 알려드리려고 전화했어요. 합격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권이사님과 류 차장님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둘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나에게 들릴 정도로 은근히 크게.
“그것 봐.. 될 줄 알았다니까요.."
“류 차장 다음 주 일 좀 빡세지겠는데.."
“저희는 도대체 왜 저런 인턴을 뽑은 거냐고요?”
“.. 내 말이, 아니 매일 자리에 없잖아?.."
나는 다시 전화 속 목소리에 집중했다. 인사팀 담당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2차 합격자는 총 다섯 명이에요. 다음 주 월요일 아침에 출발했으면 좋겠는데.. 가능하세요?”
내가 인턴 따까리하면서 작업한 보고서는 3종이다. 주간 아시아 채권 가격 변동 추이 리포트 쓰기. 채권 발행 제안서에 쓰일 온갖 도표 편집해 삽입하기. 그리고 고객들이 해외 기관 투자자들 순방 시, 대략적인 비행 편과 호텔을 넣은 여정 초안 짜주기. 따라서 나는 하루에 서울-싱가포르 비행 편이 대충 몇 편, 몇 시에 있는지 꿰뚫고 있었다.
“월요일 오후 5시 아시아나 편이 있어요. 싱가포르 현지 도착 시간은 저녁 10시 반이고요. 저는 이 비행 편으로 가면 안 될까요? 인턴쉽 도중이라 이틀을 풀(full)로 빠지기가 좀 그래서요. ”
“손세진 씨가 원한다면 그렇게 잡아드릴게요. 오늘 6시 전까지는 여권번호와 은행계좌번호를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오늘 8시쯤에 항공권과 호텔 예약정보가 전송될 거예요. 그리고 현지에서 사용할 경비 500불도 지급될 거고요.”
“네, 감사합니다. 메일 보내드리겠습니다.”
‘해냈다. 500불 쥐고 싱가포르 간다!’
나는 한여름 태생이다. 그래서인지 뜨겁고 습한 날씨를 즐긴다. 싱가포르의 열대 기후는 나에게 딱 맞았다. 서울에서는 해가 조금만 나도 ‘너무 더워’하며 장지갑으로 태양을 가리는 사람들이 속출하지만 나는 달랐다. 호텔에 도착해 내일 입을 양복과 셔츠를 옷걸이에 걸었다. 그리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호텔 옆 야외 푸드코트로 달려갔다. 10불이면 배가 터지도록 호강할 수 있는, 한 평 남짓의 작은 식당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나는 싱가포르인들의 소울푸드인 하이난 스타일 치킨라이스를 먹기 위해 줄을 섰고 내 차례가 되자 일인 요리사 겸 판매원은 ‘with bones or without?’라고 물었다. 당연 ‘without’이라 했다. 조류를 먹을 때 잔뼈를 퇴퇴 하며 내뱉는 식사 매너는 보기만 해도 거북했다. 누가 그러던데 이 뱉는 행위는 음식의 맛과 재미를 한 레벨 격상시키는 식사 컬처라고.. 마치 손가락에 끼워먹는 꼬깔콘처럼. 어쨌든 나는 순살 닭가슴살을 미친 속도로 흡입했다. 그리고 옆집에서 파는 3불짜리 넓적한 간장 볶음국수도 사이드로 시켰다. 서서히 미원빨에 취하면서 갈증이 나기 시작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보이는 좌판에서 수박 주스를 하나 집었다. 시간은 자정을 넘겼다. 일찍 도착한 네 명의 경쟁자들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까.. 그들은 인터뷰를 위해 숙면을 취하고 있겠지. 너무 많이 먹었나.. 배탈이 나면 어쩌지?
“어우, 세진 씨 내정된 특채 아니야? 비행기도 따로 타고 오고 말이야.."
서울 발 경쟁자들이 건넨 첫마디였다. 우리는 아침 9시에 호텔 볼륨 뒷 열에 앉아 앞으로 8시간 동안 진행될 최종 선발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나를 포함 두 명은 연희대, 두 명은 서울대, 그리고 한 명은 고려대. 아시아 각국에서 싱가포르에 모인 총 지원자수는 한 100명 정도 돼 보였다. Deutscher Kredit의 아시아 지역 허브인 싱가포르와 홍콩에서만 각각 20-30명씩 온 것 같았고. 그 외 베이징, 뭄바이, 방콕, 시드니 등이었다. 양복에 하얀 양말을 신은 중국 본토 학생들의 패션이 눈에 띄었다. 신선했다. 유행은 돌고 도니까. 투자은행 지원자가 아니라 최신 논문을 발표하러 온 핵분열 과학자들 같았달까. 진행자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 인사 총괄 담장자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미국인이었다.
“Hi. I’m Stephanie Nielsen, head of HR for Deutscher Kredit Asia Pacific.”
(안녕하세요. 도이처 크레딧 아시아 태평양 지역 인사 총괄 담당 스테파니 닐슨입니다.)
‘영어 잘하는 고급인력이 많은 싱가포르에서 왜 굳이 물 건너온 금발을 인사총괄 담당으로 앉혀놓는 걸까.’
“Thank you all for attending our 2005 Graduate Recruitment Program."
(2005년 신입 사원 리크루팅 프로그램 참여를 환영합니다.)
"We are incredibly honoured to have you here. You represent the best of your school systems. We’ve had over 5,000 applicants this year in the Asia Pacific region. You are the selected final 100 candidates. And after today, a quarter of you will receive an offer to join our Global Analyst Program.”
(여러분을 이 자리에 모실 수 있어 영광입니다. 여러분들은 각국의 최고 대학들을 대표합니다. 올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지원자들은 5천 명을 넘었습니다. 여러분은 선발된 100명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후, 그중 4분의 1만 글로벌 애널리스트 (투자은행에서는 1년 차를 애널리스트라 부른다) 프로그램 오퍼를 받게 될 것입니다.)
‘4대 1 경쟁률. 하지만 각 오피스마다 사정이 다를 테니 우리 5명 중 몇이나 최종합격자가 될지는 예측할 수 없었다.’
“Starting this morning, you will take a numerical reasoning test followed by 3 rounds of interviews..”
(오늘 아침, 수리추리력 측정 테스트에 이어 세 개의 인터뷰가 있을 예정입니다.)
‘영희와 철수가 다른 속도로 서로를 향해 달리면 몇 시에 만날까요?’류의 질문으로 이루어진 수리 추리력 테스트, 그리고 3회에 걸친 인터뷰. 그럼 이 끝도 안 보이는 프로세스는 드디어 종결된다.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합격해 놓은 Pierpoint의 정규직 자리를 떠올리니 한결 차분해졌다.
테스트가 치러질 방으로 이동해서 60분 동안 60문항을 풀었다. 쉽지 않았다. 엄청난 두뇌회전이 요구되는 객관식 문항들이었다. 나는 말발로 때우는 주관식형 인간인데 말이다. 시험장을 빠져나오는 경쟁자들의 표정은 다양했다. 서울대 출신 두 명은 망했다고 했다. 뭐 다들 알겠지만 한국 사람들은 진짜 망했으면 망했다고 떠벌리지 않는다. 진짜 망했으면 손톱으로 담벼락이나 긁으며 조용히 귀가하지..
우리는 다음 장소인 Deutscher Kredit 싱가포르 사무실로 갔다. 10인 1조로 트레이딩룸을 견학하기로 되어있었다. 나 포함 서울에서 온 지원자 5명은 베이징 핵과학자 일부분과 같은 조가 되었다. 인도계 주니어 트레이더가 53층으로 안내해 줬다. 간이 부엌이 설치된 비좁은 복도를 지나니 광야 같은 트레이딩 룸이 등장했다. 크기가 축구장만 했다. 칸막이나, 내벽도 없고 오직 보이는 건 담쟁이처럼 수직으로 쌓아 올린 컴퓨터 스크린과 그 밑에서 키보드를 번갈아가며 타자 치고 있는 직원들뿐이었다. 여기서는 다들 떼돈을 벌겠지만 전자파는 잔뜩 먹고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주니어 트레이더가 우리에게 속삭였다. 어제 연방준비제도에서 기준금리를 많이 낮췄기 때문에 트레이더들이 개스트레스 받고 있을 거라고. 함부로 말 걸지 말라고 (연방준비제도 의장 알렌 그린스팬의 초저리 정책은 투자자들로 하여금 고수익, 고위험 자산을 쫓게 하여 궁극적으로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데스크들을 지나갔다. 그리고 데스크 헤드들은 귀찮은 내색 없이 본인들의 직무를 설명해 줬다. 일본 국채 트레이딩 데스크로 시작해 인도 전력 선물 세일즈 데스크를 끝으로 투어는 끝났다.
화이트 칼라 공장 견학에 흥분된 우리는 주니어 트레이더를 따라 다시 트레이딩 룸 밖으로 조용히 나왔다. 훗날 나는 프라다 주식 상장 시 런던의 투자 고객들과 이태리 아브루쪼 (Abruzzo) 지방의 가죽 공장을 견학하게 된다. 거기에서 최고급 도마뱀 가죽의 염색 과정을 보면서 느낀 뭉클함보다 오늘의 감격이 더 인텐스했다. 돈을 찍어내는 신세계에 눈을 뜬 것이다.
런치 타임이 됐다. 지원자들은 지하 푸드코트로 우르르 몰려갔다. 서울 사무소에서 받은 돈으로 내 지갑은 아직 두둑했다. 돈을 많이 벌면 항상 이런 느낌일까? 사천식 새우 볶음밥을 먹은 후 소화를 도울 겸 인근 타워 레코드로 걸어갔다. 오랜만에 새끈 한 수입 음반들을 좀 만지고 싶었다.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해외 가수의 음반이 라이센싱을 통해 국내 공장에서 생산됐다. 미비한 설비 때문인지 하자가 수두룩했다. 예를 들어, 미제 Nirvana 3집 CD 표면은 핑크색인데 한국 버전은 주황색으로 거칠게 찍혀 나왔다. 아무래도 인쇄소에서 마젠타 잉크가 떨어진 모양이다. 그러나 의아하게도 해외 마니아들은 이런 한국판에 열광했다. 마치 희귀한 해적판을 발견한 것처럼.. 나는 댄스 섹션을 둘러보다 몬트리올에서 소년기를 보냈을 당시 카세트로만 듣던 Soul II Soul(소울투소울)의 ‘Back to Life’ 앨범을 집었다. 그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Keep on Movin’을 하도 많이 틀어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진 아픈 추억이 떠올랐다.. 다들 뉴키즈 온 더 블록에 환장하고 있었을 무렵, 내 음악 취향은 조숙했다. 어쩌면 이 노래가 영국과의 첫 인연인지도 모른다.
3회에 걸친 인터뷰는 무난히 끝났다. 인터뷰어들은 Deutscher Kredit에서만 20년 넘게 경력을 쌓은 초시니어들이었다. 그들은 내 금융 지식에 별 기대가 없어 보였다. 어차피 최종 합격자들은 런던에서 단기 속성 연수를 받을 거니까. 그들의 관심사는 아마 ‘이 사람과 과연 매일 12시간을 버틸 수 있는가’ 였던 것 같다. 그들의 배우자와 자녀들보다 나와 함께 보낼 시간이 더 많을 테니.. 마지막 인터뷰어는 별말 없이 부처 같은 미소만 짓고 있어 조금 당황스러웠다. 뭘 말해도 별 반응이 없었고 매뉴얼 같은 대답뿐이었다. 뭐랄까. 인간 챗봇 같았다.
로비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서울대 형이 보였다. 아침에 망했다고 한 두 명 중 한 명.. 솔직히 이제는 경쟁자로 보이지도 않았다. 누가 최종합격자가 되든 말든.. 최선을 다 해 이 자리까지 온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게 없었으니까..
“형, 오후 인터뷰 어땠어요?”
“나 이번엔 진짜 망했어..”
‘이렇게까지 말하면 진짜 망한 거다.’
“아니, 왜요?”
“이력서에 제2 외국어가 독어라고 적었거든. 외고 때 잠깐 배워서. 그런데 마지막 인터뷰에 프랑크푸르트 본사 독일인 임원이 들어온 거야. 나보고 독일어로 지원 동기를 말해보래.."
“형, 우리 공항 가기 전에 한잔 해요.”
우리 둘은 호텔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근처 야외 바에서 맥주를 부딪혔다. 주위가 퇴근하는 뱅커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저들이 미래의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서울에 가서도 꼭 연락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싱가포르가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될 거라는 것을. 앞만 보고 미친 듯이 달려온 구직 전쟁의 마침표 같았던 그날 저녁. 적도의 뜨거운 석양 아래 안도와 아쉬움이 교차했다.
이틀 후 나는 서울에서 갔던 지원자 중 유일하게 Deutscher Kredit의 정식 오퍼를 받았다. 네덜란드 교환학생 때부터 그토록 바라왔던 외국계 투자은행의 정직원 자리가 드디어 내게 들어온 것이다. 제일 먼저 했던 일은 예상했겠지만 Pierpoint에 전화해서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함께 일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알리는 일이었다. 그렇다. 더 이상 신태호 팀장의 누런 이빨을 보지 않아도 된다. 물론 Pierpoint도 좋은 기회였으나 도서관 같은 공간에 처박혀 엑셀과 회사 재무제표 산더미에 파묻히기 싫었다. 내 체질에는 전화통 붙잡고 고객을 휘어잡을 수 있는 세일즈롤이 맞았다. 은행에 벌어다 주는 커미션에 비례하는 연말 보너스도 합리적이라 생각됐다. 벌 수 있는 돈도 내 상상 이상일 것이다. 어쩌면 내 월급과 대기업 연봉이 맞먹을 수도 있을까나? 그리고 무엇보다 Pierpoint는 런던 연수와 같은 교육 과정이 없었다. 솔직히 Deutscher Kredit을 선택한 이유 중 이게 제일 컸던 것 같다. 그토록 나는 런던을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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