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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기와거울 Jun 21. 2024

축사

  볼룸안은 과연 국제 포럼에 온 기분이었다. 거대한 무대가 정면에 좌우로 펼쳐졌고 그 앞에는 10개의 책상열들이 물결처럼 뒤쪽 출입문을 향해 쓸려내려 왔다. 중앙에는 웨딩홀 마냥 넓은 통로가 있었다. 사랑이 결핍된, 어느 준재벌가의 냉정한 정약 결혼식 하객이 된 바이브였다. 배열을 대충 보니 양쪽에 5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고 각 의자 앞에는 노트북과 필기구가 세팅되어 있었다. 연수생들은 설렘과 고민이 엉킨 채 각자 어디 앉을지 헤매고 있었다. 택한 자리에서 3개월은 버티어야 할 테니 신중한 결정이 아닐 수가 없지..


  각양각색의 연수생들. 그들의 선택도 국가적 특색을 반영하는 듯했다. DK를 비롯한 국제 투자은행들은 뉴욕과 런던에서 일할 신입들을 인도에서 대거 뽑는다. 그것도 전부 IIM (India Institute of Management)이라는 20개 정도의 개별 대학으로 이루어진 국립기관에서 선출한다. 1억 명이 넘는 인구의 탑오브탑 수재들은 자연스레 IIM으로 모이고 그중 입학하기 가장 어려운 분교는 인도 테크성지인 Bangalore시에 있다.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연맹의 70여 개 대학들. 하버드, 스탠포드, 프린스턴, 예일. 이 명문대 출신들은 들어보지도 못한 IIM의 입학 경쟁률을 알게 되면 오토로 무릎 꿇게 된다. 연희대 마지막 학기 때 학점도 채울 겸, 견문도 넓힐 겸, ‘생활과 원예’란 교양 수업을 들었는데.. 30문항 객관식 기말고사 때 꽃이름 잘못 찍는 바람에 150명 정원 수업에 등수가 50등 정도 밀려나갔다. 만만하게 생각한 수업이었으나 결국 C학점이 나와버렸다. 초경쟁사회 속 상대평가의 아픔이란. IIM에 입학한 학생들은 유치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생활과 원예’를 초월하는 전쟁을 매일 치렀을 거다. 대치동 학원가는 이에 비하면 파라다이스일 테고. 어쨌든 성격 건조한 공붓벌레 같은, 파티에서  IQ 테스트를 재는 놀이만 할 것 같은, 말 걸고 싶지 않은 상대들이었으나 나중에 이들은 런던, 뉴욕, 홍콩 사무소에서 대여섯 개 컴퓨터 스크린 앞에 앉아 꽈배기처럼 비비 꼬인 파생상품을 매매하며 떼돈 버는 요직을 모조리 평정하게 된다. 


  일찌감치 20명 정도로 추정되는 IIM 사절단은 맨 앞 두열을 차지했다. 그 뒤로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선발된 독일인 10명 정도가 진을 쳤고 또 그 뒤로는 비슷한 인원의 도쿄 원정대가 조심스레 소지품을 책상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영국과 미국에서 뽑힌 연수생들은 각각 20명 정도 있었고 이들은 출신 대학별로 끼리끼리 사방에 흩어 앉았다. 나는 대충 뒷열 빈자리를 찾아 가방을 의자뒤에 걸고 앞뒤 주변에 떠들고 있는 호주 연수생들과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내가 겪어본 호주 사람들은 모두 시원시원하고 쾌활했으나 아직도 영어 발음은 적응 안 된다. 그들이 ‘no’라고 내뱉을 때 경청해 봐라. 모음 서너 개가 혼합된 정체불명의 입체적 사운드가 입아귀와 턱관절을 간지럽힌다. 중앙 통로를 넘어 리사는 벌써 독일부대와 깔깔대며 농담 따먹기를 하느라 정신 팔려있었다.


  내 왼쪽은 중앙 통로였고 오른쪽 자리는 아직 비어있었다. 그러더니 빨강 가죽 숄더백이 책상 위를 덥석 내리쳤다. 그리고 하이힐 한쌍이 의자 다리옆에 나타나 침착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Is this seat taken?”

  (이 자리 비었나요?)


  나는 위를 쳐다봤다. 20대 풋내기 다이애나 로스의 세련된 미모를 지닌 인도계 영국여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두꺼운 아이라이너, 나를 닿을 듯 말듯한 기나긴 속눈썹, 또렷한 이목구비. 게다가 신비주의 카리스마까지. 남자들 꽤나 울리고 다니겠다 싶었다.


  “It’s free. Hi, I’m Saejin.”

  (비어있어요. 세진이라고 해요.)


  “Thanks. Indra. Which office are you from?”

  (고마워요. 저는 인드라이고. 어느 오피스에서 왔죠?)


  말을 경제적으로 했다. 군말 없이,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 없이 바로 본론으로. 전형적인 트레이더 말투였다. 


  “Seoul. Yourself?”

  (서울이요. 그쪽은?)


  “London. And I’m already assigned to the short-term credit trading desk.”

  (런던이요. 이미 단기 회사채 트레이딩 데스크로 배정받았고요.)


  아이스퀸처럼 INTJ 스러운 그녀는 ENFP인 나와 은근히 케미가 맞았다. 문장이 점점 길어지며 단답형 질의응답은 어느새 잡담영역에 침범해 있었다. 인드라는 이미 6개월 정도 일한 경험이 있는, 아직 보직이 확정되지 않은 대부분의 연수생들과는 다른 계약직 출신이라고 밝혔다. 채권 트레이더들의 잔무를 돕는 보조직으로 고용되었으나 일을 잘해 보스가 정사원으로 승격시켜 줬고, 동년배들과 네트워킹하라는 권유로 연수프로그램에 합류하게 된 극히 드문 케이스였다. 처음에는 지인들이 하루하루 리스크를 짊어가며 밤잠 설치는 트레이더보다 차라리 가늘고 길게 밥벌이할 수 있는 보조직을 영속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 식의 조언을 줬다한다. 하지만 그녀는 짧은 인생을 그렇게 소극적으로, 안전빵모드로 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정사원 트레이더로서 망할지언정 거액 날리고 업계에서 소문이라도 쫙 퍼졌으면 좋겠다고. ‘인드라, 그 인도 여자 배짱 하나는 대단했지’식의 강렬한 인상이라도 남기고 꺼져버리겠다고. 그래야지 나중에 금융 시장이 호황으로 돌아서고 모두가 헬렐레 해피해지고 뭘 매매하던 돈이 쉽게 벌리면 비록 깨진 그릇이긴 하나 크기 하나로는 꿀리지 않는 트레이더가 다시 스카우트되지 않겠냐고. 그녀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금융업계 전선에 있는 사람들은 과거의 실수를 잘 잊는 경향이 있다. 뇌리에 새겨지는 건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결과의 양적 임팩트뿐 돈을 대박으로 벌었는지 날렸는지, 성격이 얼마나 지랄 같았는지, 모럴리티 따위에는 별 관심 없다. 인드라말 그대로 ‘If you’re going to fuck up, fuck up big (과오를 범할 거면 크게나 저지르라)’식의 마인드가 팽배했다. 내가 편안했는지 초면에 별의별 말을 다 쏟아부었다. 축구장만 한 Deutscher Kredit (DK)의 런던 트레이딩룸이 기 드세 보이는 이 주니어에게는 많이 외로웠나 보다. 


  다짜고짜 볼룸안이 조용해졌다. 인드라 하고 떠드는 동안 100여 개의 자리는 어느새 다 주인을 찾았다. 조명이 어둡게 조광 되더니 DK의 수익 엔진인 Global Markets 부서를 총괄하는 아제이 파텔 (Ajay Patel)이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DK는 무늬만 독일 시중은행일 뿐, 돈을 창출하는 핵심은 뉴욕, 런던, 홍콩에서 온갖 금융 자산 매매를 중개해 주는 투자은행 업무였다. 아제이의 위엄과 영향력은 DK의 독일인 CEO를 몇 배 능가하고도 남았다. 그가 회사 전체 실세였고 60대 백인 남성 노인들로 구성된 프랑크푸루트 이사회를 새끼손가락으로 휘어잡고 있었다. 아제이는 90년대 말 모건스탠리로부터 영입돼 DK를 국제 투자은행으로 탈바꿈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업계 전설이라 아무도 그를 반대할 수 없었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DK의 전용기를 이용해 출장 떠나기 전, 비서가 사전에 경로를 미리 예행연습해 일정의 총 소요시간을 분단위로 계산한다고 한다. 런던의 잦은 안개로 소형 항공기의 결항이 비일비재한 London City Airport의 특수성을 어떻게 감안했을지 궁금하다.


  “Today you will embark on the first steps of your careers in finance. And I welcome you to the finest training ground on offer in the world..”

  (오늘은 여러분의 금융 커리어의 첫 단추를 끼우게 됩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훈련장을 제공해 드립니다..)


  앞둔 줄 IIM 인도 연수생들의 등과 어깨는 곧게 펴져있었고 아제이의 후광을 빨아드린 두 눈은 동공지진을 일으키고 있었을 거다. 더군다나 같은 인도계라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웠을까. 일류 국제 금융계에서 언제 이 같은 한국인 리더가 발굴될지. 나보라 하라고? 솔직히 뱅킹은 대학이라는 관문을 갓 통과한 사회 초년생이 곧바로 큰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지 내 열정은 오히려 예술계에 있는 게 사실이었다. 물욕은 완강했으나 일상 대화가 돈돈돈으로 얽매여있지 않아서 이 바닥 사람들은 나에게 거리낌 없이 말을 걸고 호감을 느낀 걸까? 모르겠다. 


  “For the next three months, learn as much as you can. From the teachers. From each other. From yourself. And make mistakes. It’s fine. But live up to your fullest potential for this time won’t come again. Make your hiring managers proud.”

  (앞으로 3개월 동안 최대한 배우세요. 선생들로부터. 동료로부터.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실수하세요. 괜찮아요. 하지만 이 같은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니 본인의 잠재력을 극대화하세요. 여러분을 선발해 준 상사들을 자랑스럽게 해 주세요.)


  이 마지막 덕목이 목에 걸렸다. 나는 이미 DK 서울지사를 탈출해 런던본사에 눌러앉을 궁리를 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뒤에서 누군가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帰りたくないな..”

  (돌아가고 싶지 않아..)


  이름조차 모르는 그녀와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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