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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saka Jan 31. 2024

월요일 버프

아득한 빛이 눈꺼풀 위를 맴돌고 있었다. 빛깔이 주황색과 유사했지만 색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보다는 어떤 느낌에 가까웠다. 사막을 이루는 모래알갱이들을 뒤집어 쓴 것만 같았다. 갈증을 느꼈고 눈을 떴다. 창문의 불투명한 유리에 여과된 태양빛이 방 안을 건조하게 말리고 있었다. 나는 침대 머리맡에 놓인 스마트폰 AOD를 확인하고 소리를 꽥 질렀다. 오후 3시가 넘었다. 나는 오늘도 월요일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할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월요일은 시작의 날이다. 새로운 한 주의 첫날이며 설레는 새학기와 치열한 업무전쟁이 시작되는 날이다. ARS 서비스센터의 전화기가 다시 바쁘게 울리고, 쉬고 있던 물류센터의 컨베이어 벨트가 다시 달리기 시작하는 날이다. 또한 실행의 날이다. 바디프로필에 도전하는 내 친구의 헬스장 출근도, 갓생 살기에 도전하는 모 유튜버의 미라클모닝 루틴도, 절치부심하고 삼수에 도전하는 재수생의 열공 모드도 월요일부터 개시된다. 뭐든 시작하기에 월요일만큼 좋은 날이 없다. 월요일은 마치 게임에서 일시적으로 능력치를 올려주는 ‘버프’ 효과와 같은 날이다. 


하지만 문제는 내게 월요일이 벌써 삼십 일째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힘겹게 이불을 걷어내고는 곧장 책상으로 향했다. 엉덩이가 의자에 맞닿기가 무섭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화요일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리고는 수요일과 목요일, 불같은 금요일이 차례대로 그리움을 이어받았다. 그리움은 이내 ‘퇼’에 다다랐다. 단어의 음절마저 하나로 줄여버릴 만큼 빠른 주말의 아쉬움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마침내 갈 길을 잃은 그리움은 환멸이 되어 내게 돌아왔다. 이 모든 것이 다 월요일만 잘 넘기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인데. 대체 왜 넘지를 못하니, 이 의지박약한 인간아.


아무리 내가 요일의 구분이 없는 백수일지언정, 그런 내게도 월요일 버프는 무의미하지 않았다. 내게도 월요일부터 실행에 옮길 야심찬 계획이란 게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른바 ‘재취업 성공을 위한 프로젝트 루틴’이 그것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의 공백이나 중복이 없도록 섬세하고 꼼꼼하게 조립된 계획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란 것은 아침에는 일어나지 못했고 밤에는 잠을 청하지 못했다. 몇 달을 백수로 지낸 내게 갑작스레 평범한 사회인의 시차를 끼워 맞추는 건 월요일에게도 무리였을까? 이같은 변명으로 한 달을 보냈다. 일리가 있던 변명도 이제는 힘을 잃었다.


나는 사실 계획이 실행되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의심이었다. 밤새도록 스스로를 타일러가며 간신히 확신이라는 단어로 고쳐놓아도,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되돌아오는 타임루프 같은 단어였다. 의심이란 이런 것이다.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 이게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삶일까? 아니,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란 어떤 거지? 나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반년 전 회사의 희망퇴직 시행 소식을 접하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소식이 발표되자 회사의 분위기는 급격하게 흉흉해졌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해방을 자축하는 희열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그래, 어차피 나는 회사 체질이 아니었어. 이번 기회에 회사 생활은 과감히 때려치우고 진정한 나의 삶을 찾는 거다!


그때의 내가 생각했던 진정한 나의 삶이란 무엇이었을까. 나는 냉장고를 열어 안에 있는 맥주를 모조리 꺼내 책상 위에 턱 올려놓으며 생각했다. 세상은 돈으로 움직이고, 돈으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나는 무얼 하며 살아야 하는가? 결국에는 다시 일하는 방법뿐이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고, 그나마 덜 불행하게 일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야 하고, 그래도 불행한 건 금융치료와 불금의 설렘에 기대야 한다. 이것이 내가 지난 몇 달간 의심하고 또 의심해서 내린 결론이다. 그리고 결론이란 본래 이성적인 것이어서, 내일이면 또 다시 감성적인 의심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나는 오늘도 맥주를 입 안에 털어넣으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다시 사회에 나를 어떻게든 쑤셔넣고 나면 의심도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 라고 말이다.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다들 아플 걸 알면서도 억지로 자신을 쑤셔넣어가며 버티는 거라고. 그래서 금융치료를 하고 불금을 기다리고 월요일 버프를 노리는 거라고. 이 말이 억지 같아도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시간이 촉박했다. 의심으로 보낸 몇 달의 시간이 고스란히 취업 공백기간으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시간은 간다.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세상과 나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어질 것이다. 그러니 또 다시 월요일 버프를 위해 다음 주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다행인 건 백수에게는 요일의 구분이 없다는 점이다. 내일을 월요일이라고 최면을 거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므로 내일은 1월 31일 수요일이 아니라, 서른한 번째 1월 1일 월요일인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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