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서의 익사
오전 출근길은 늘 그렇듯 삭막했다.
미처 다 오르지 못한 해가 무심히 거리를 밝혔고
거리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쥐죽은 듯 고요했다.
역내에서는 오늘도 서로를 죽일 듯 밀고 밀리는 촌극이 벌어졌다.
끌려가는 사축들의 분주한 발굽 소리로 그득한 공기가
독가스처럼 역내에 퍼지며 월요병을 유발시켰다.
평범한 월요일의 아침이었다.
갑자기 세상의 모든 공기가 사라졌다.
아니, 갑자기 세상이 바닷물로 가득 차버린 것만 같았다.
그것은 어떠한 예고나 특별한 징후도 없이 찾아온 재난이었다.
그저 초점 없는 눈으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인 나는
갑작스런 쓰나미를 맞닥뜨린 해변가의 어린 아이처럼
미처 대응할 새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물살에 휩쓸렸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내 몸은 격정적으로 반응했다.
코와 입 속으로 바닷물이 밀물처럼 들이치고 있었다.
바닷물은 폐와 혈관을 넘어 이내 머리 끝까지 차올라
북적이던 소리를 일그러뜨리고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익숙했던 세상이 돌연 낯선 심해가 되어 있었다.
극도의 공포감이 일순간에 휘몰아쳤고,
나는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수.. 숨이.. 꺼억, 꺼억.. 좀 도와주..”
주위를 향한 간절한 외침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물 속에서 흩어지는 기포처럼 꼬르륵 소멸했다.
문득 사람이 익사하는 게 이런 기분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숨을 들이쉴수록 더움 숨통을 조여오는 기분이겠구나.
그렇다. 지금 나는 허공에서 익사하는 중이다.
내 의식은 점차 빠르게 심해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새하얗던 머릿속이 수면 아래에서 점점 빛을 잃어갔다.
주위에서 나를 두고 여러 다급한 말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허공에서 허우적대며
쉬어지지 않는 숨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것뿐이었다.
고작 몇 초의 시간만이 흘렀을 것이지만
초 하나하나가 주는 무게가 마치 몇 시간처럼 무거웠다.
상황이 이러니 나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나는 아마도 다시는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할 것이다.
그 순간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떠오른 건
심해만큼이나 아득했던 옛 기억이었다.
그때의 계절이 여름이었는지, 겨울이었는지
누구와 함께였는지 혹은 무얼 입고 있었는지
명확하게 초점이 잡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내 의식에 의해 주관적으로 왜곡된 조각들이
단편적으로 눈 앞을 아른거릴 뿐이었다.
조각들은 이내 한데 모여 하나의 풍경을 이뤘다.
그곳은 인파들로 가득한 어느 한 놀이공원이었다.
거친 파도를 넘듯 격하게 꿀렁거리는 바이킹 뒷자리에서
안전바를 목숨처럼 꾹 움켜쥐고 있는 어린 소년이
수면에 비친 그림처럼 잔잔하게 일렁거렸다.
나는 그 모습에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한껏 소리를 질러대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어린 소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인 채
격정적으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때의 감각이 불현듯 지금의 내게로 와서 닿았다.
소년의 두려움이 이내 뼛속까지 사무치게 퍼졌다.
그것은 결코 왜곡됐던 적이 없다.
그것은 너무나 명확하고 익숙한 감각이었다.
소년은 끝내 거친 파도를 이기지 못하고
겉잡을 수 없는 공포에 휩쓸려버린 것이리라.
예고 없이 찾아온 쓰나미에 속절없이 휩쓸린 채
허공에서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는 나처럼.
나는 그날 이후로 다시는 바이킹을 타지 않았다.
격정적으로 숨을 토할 수밖에 없었던 소년의 두려움은
기억으로 왜곡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기에.
그런 나는 지금의 이 상황이 무척 당혹스러웠다.
심해에 오랫동안 파묻혀 있던 난파선 조각이
이제 와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라도 한 걸까?
도대체 그 감각의 너울은 얼마나 거대하길래
이토록 아득한 과거까지 휘몰아칠 수 있었단 말인가?
의문이 의문을 낳던 찰나에
사라졌던 숨이 다시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바닷물로 가득 차버릴 것만 같던 세상은
조금 전 그러했던 것처럼 돌연 삭막함을 되찾았다.
정신이 돌아온 나는 주위를 환기했다.
흐릿하기만 하던 주위의 시선이 새삼 따갑게 느껴졌다.
이윽고 열차의 접근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울려퍼졌고,
자리에서 멋쩍게 일어나며 나는 생각했다.
지금 나, 불안한가?
아니, 얼마나 불안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