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클라이밍

아냐 넌 너의 길을 찾아

by 하빈
나이스!

나에겐 너무나 감사하게도, 한 달에 한 번씩 함께 클라이밍(실내 암벽등반/볼더링)을 함께 가주는 모임이 있다. 난 그렇게 멀리 나가는 걸 싫어하면서도 그 모임은 방방곡곡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도 거뜬히 (물론, 아주 불평하며) 다녀오는 편이다. 그런 걸 보면, 나는 이 스포츠를 꽤나, 그리고 한 때는 열정적으로 좋아했고 아직도 좋아한다.


클라이밍은 인공 암벽을 등반하는 스포츠를 보통 말하는데, 보통 클라이밍을 한다고 하면 볼더링이라는 종목의 암벽등반을 의미한다. 볼더링은 이미 손으로 잡거나 발로 디딜 수 있는 홀드(벽에 붙어있는 돌)가 정해져 있고, 방법이나 순서는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시작과 끝을 터치하기만 하면 성공인 스포츠이다. 보통 클라이밍장(암장)에서는 같은 색깔의 홀드들이 한 문제를 이루고 있고 시작과 끝만 표시해 둔다.


클라이밍은 인싸 스포츠라는 말이 있다. 왜냐면 내가 등반하는 모습을 내 친구들 뿐만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도 함께 바라보고, 때로는 첨언하고 응원하고 박수까지 쳐주기 때문이다. 부끄럼쟁이인 나는 처음에 그놈의 "나이스!"를 어쩔 줄 몰라했는데, 지금은 누구보다 "나이스!"를 열정적으로 외치는 사람이 되었다.


"나이스!"는 암장에서 가장 많이 울려 퍼지는 말이다. 한 홀드를 잡고 올라갈 때마다 해주는 말인데, 다른 사람이 등반할 때 나도 모르게 동화되어 내가 함께 오르고 있는 기분을 느끼고 몰입하게 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으아! 잡았다!!!" -> "나이스!"로 표출되는 것이다. 그럼 등반하고 있는 사람이 너무 부담스럽지 않겠냐고? 벽에 붙었을 때는 너무 집중해서 그런 말이 들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나이스!"를 외칠 때면 당사자도 홀드를 잡았다는 쾌감 때문에 덩달아 속에서 외치고 있을 것이다.


이 취미가 왜 좋아졌을까? 한 때는 나도 클라이밍을 잘하고 싶어서 강습을 신청해 듣고 꾸준히 일주일에 세 번씩 출석체크를 하던 시기도 있었다. 잘못 떨어져서 다치게 되면서 오래가진 않았지만, 다치고 나서도 자주는 아니어도 꾸준히 계속 암장을 찾아가는 걸 보면 나에게 정말 소중한 취미이긴 함은 분명하다. 왜 나는 이렇게 암장을 가는 걸까? 아마 성취와 몰입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놈의 "나이스" 때문이다.


내가 같이 클라이밍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다른 크루들이 그러하듯 다양한 성별과 키, 몸무게, 팔 길이를 가지고 있다. 통상적으로 클라이밍을 할 때는 팔을 벌렸을 때 그 길이가 긴 사람이 유리하다. 아무래도 멀리 떨어져 있는 홀드를 잡기 위해서 팔이 길면 쉽게 노력하지 않아도 잡을 수 있기 때문인데, 비단 팔 길이뿐만 아니라 다른 다양한 신체 요건 때문에 다른 사람은 쉽사리 해내는 동작을 나는 못하기 십상이다. 그럼 나는 못할쏘냐, 무슨 소리! 나보다 키 작고 팔이 짧은 사람들도 해낸다. 각자에게 맞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말들이 많이 들린다.


"나는 안될 것 같아. 나는 팔이 안 닿아"

"아냐, 너의 길을 찾아"


클라이밍장에서 하는 대화의 대부분은 어떻게 하면 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홀드를 하나 더 잡고 올라갈 수 있을까에 관한 내용뿐인데, 들어보면 소년 만화에 나올 것 같은 말들 같다.


"할 수 있어, 집중해!"

"다 왔다, 다 왔어! 잘했어, 멋지다"

"와 지금 너무 멋있었어."

"한 번 해봐, 내가 길 알려줄게"

"한 번에 안되면 뜯어 가자"

"안될 것 같으면 내려와, 그리고 다시 하면 돼"

"그래도 안 돼도 괜찮아, 다른 거 하면 돼"


그리고 나는 이 말들을 들으러, 그리고 외치러 가는 것이 분명하다.

할 수 있다고, 내가 가진 요건이 뛰어나지 않아도 나에게도 방법이 있다고,

그리고 그 모습이 멋지다고.

이렇게 해봐도, 저렇게 해봐도 안되면 쉬었다가 다시 하면 된다고,

네가 안되면 내가 해보면서 길을 찾아봐도 된다고,

그리고 포기해도 된다고, 다른 문제는 얼마든지 더 있으니까.

그냥 오늘 하루 안 다쳐서 참 다행이라고..


나는 클라이밍을 좋아한다. 아니 나는 소년만화에 나오는 응원하고 힘이 되어 주는 말들을 좋아한다. 쉽사리 내가 한 것에 대해 칭찬받기 어렵고, 내가 닥친 문제에 대해 아무도 함께 의논하지 않는 세상살이에 마치 그와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는 암장을 좋아한다. 내가 잡은 작은 돌 하나에 나이스가 울려 퍼지고, 모르는 사람이 다칠세라 마음 졸이며, 내가 안되어도 무시하거나 나는 된다고 으스되지 않고 진심으로 응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그리고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북돋우는 나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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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찾은 제가 좋아하는 것은 클라이밍이었습니다.

오늘의 글이 잘 읽히고,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즐거웠어야 하는데 그랬을까요?

휴, 저희 크루에서 열심히 해보다가 안 되는 문제를 넘기고 다음 벽으로 넘어갈 때 하는 말이 있습니다.

"했다 치자! 처음보다 하나 더 잡았잖아~ (한 잔해~)"

그렇게 다음 문제로 넘어가고 힘이 닿으면 또 돌아와서 다시 풀어보면 되니까요.

저도 오늘의 글은 여기서 "일단 썼잖아~"라고 생각하고 미련을 두고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남은 미련은 다음 좋아하는 걸 찾을 때 쏟아부어 볼게요.

그럼, "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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