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차담을 나누는 시간이 있다면
내가 가진 조금 사치스러운 취미가 하나 있다면, 바로 차 마시기이다.
(Not a car, Just tea : ) 오 물론 car도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차 마시는 시간은 바로 아침이다.
눈을 뜨자마자 비몽사몽 상태로 물주전자 버튼을 누르고, 끓는 동안 잠시 화장실도 들르고, 신중하게 오늘의 찻잎을 고른다. 혼자 마시다 보니 많은 찻잎을 구비할 수는 없어서 2개(지금은 얼그레이와 세작)를 그날의 기분에 따라 번갈아 고른다. 많이 덜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이번에 새로 장만한 옆손잡이 찻주전자에 오늘의 찻잎을 덜어 넣는다. 그러고 나면 바로 보글보글 물주전자의 물이 끓으며, '틱'하고 스위치 내려가는 소리가 조용한 주방을 울린다. 그럼 새하얀 찻주전자에 살살 물을 부은 후 찻잔과 함께 책상으로 옮겨간다. 정신없는 아침 시간, 차가 가장 맛있게 우려지는 시간을 정확히 헤아릴 여유는 없어서 자리를 잡으면 바로 물을 따라낸다. 그래서 처음에는 맑은 차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진하게 차가 우려 진다. 제대로 식히지 않고 팔팔 끓는 상태에서 부은 내 차. 차의 첫 입은 정말 뜨거워서 호호 살살 불어마셔야 하는데, 열심히 불어도 여전히 뜨거운 차가 입술에 닿으면 정신이 번쩍 깬다. 그리고, 뿌옇게 피어오르는 증기가 코를 살살 간질이는 것을 느끼며 호로록 차를 마신다. 코 안에 가득 그날의 차 향기가 차고 입술은 뜨끈한 차로 촉촉하게 적셔진다. 입안을 차로 채우고, 세작일 때는 찐 차의 향을, 얼그레이일 때는 얼그레이만의 독특한 향을 혀를 굴리며 만끽한다. 내가 가진 찻주전자에서는 작은 찻잔 기준으로 4~5잔 정도가 나오는데, 마지막 잔을 마실 때 즈음에는 차도 적당히 식고, 출근 시간도 성큼 가까워져서 단숨에 호로록 털어 넣고 주방으로 가서 찻주전자와 찻잔을 헹군다.
왜 난 차를 좋아할까? 내 나이에는 조금 올드한 취미 같은데? 근데 나보다 더 올드한 엄마아빠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데? 내가 왜 차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그 시작을 분명 찾고 싶은데, 그럴싸한 추억을 갖고 있진 않다. 그냥 녹차의 쌉싸름한 맛을 좋아하던 게, 페퍼민트의 시원함까지 확장되고, 귤차의 상큼함과 찐 차의 뜨끈한 맛, 꿀이 들어가지 않은 허니차의 달달함까지 알게 되어 버렸을 뿐이다.
차를 좋아해서 잎차나 찻가루를 많이 사모으긴 했지만, 카페에서 차를 잘 사 먹진 않았는데 역시 그 이유는 다른 사람과 같이 티백을 우린 차에 아메리카노보다 비싼 값을 지불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티백 하나에 얼마인지 뻔히 아는데, 에스프레소 머신처럼 내가 구비할 수 없는 어떤 장비를 이용하는 것도 아닌데 집 밖에서 5천 원 넘게 주고 사 먹는 것이 아까웠다. 그래도 요즘에는 카페에 그 카페만의 찻잎을 배합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잎차를 찻주전자에 우려서 찻잔과 함께 제공하는 곳이 많아져서 그런 곳에서는 차를 많이 시켜 먹는다. 아, 근데 회사에 가면 티백이라도 아이스페퍼민트를 자주 먹긴 한다. 열받아서 그런가?
그리고 나는 차는 정말 찻주전자와 찻잔에 마시면 차의 향을 더 온전히 느끼고, 차가 주는 여유로움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차가 좀 더 대중화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 회사 탕비실에서 가끔 드립커피를 내려 마시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원두를 갈아서 필터를 끼워서 물을 끓여서 내리는 드립커피가 다도보다 훨씬 어려운 것 같은데! 차를 취미로 마시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면, 탕비실에 찻주전자와 찻잔들도 구비되어서 함께 "오늘은 봄 기념으로 우전차를 마실까요?" 하며 아침에 함께 차담을 나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너무 좋을 것 같아! 지금처럼 두 종류의 찻잎을 조금씩 먹지 않고 더 다양한 종류의 찻잎을 구비할 수 있을 텐데! 차선(말차 같은 가루차를 물에 푸는 도구)도 있어서 가루차를 거품 내가며 풀어 마시는 모습도 참 재미있을 것 같다. 휴가로 해외여행을 가면 각국의 차를 사 와서 여행에서의 이야기를 풀어가며 따뜻한 차를 호호 불어가며 나누는 대화들도 얼마나 즐거울까? 히히 이상 아무도 바라지 않는 제 작은 꿈이었습니다.
나는 차담 하면, 20살 여름에 친구와 함께 나섰던 템플스테이에서 스님과의 차담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어쩌면 처음으로 다도를 배우고 즐겼던 경험이었을 것이다. 새벽 4시 반에 번쩍 눈을 떠서 새벽 예불을 드리고, 평소라면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을 그 이른 시간에 허겁지겁 밥을 먹고, 한숨 더 자다가 맞이한 스님과의 차담. 대학생이던 우리를 배려해 자신의 대학시절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주신 스님 덕분에 따뜻하고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불교학부가 있다는 거 아셨어요? 전 이 날 처음 알았었어요) 차를 마시던 모든 기억들은 이렇듯 여유롭고 따뜻하다.
차가 좋다. 말라비틀어진 조각들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크로마토그래피를 할 때 하얀 종이를 물들여가는 검은 사인펜처럼, 초록 빛깔이 퍼져나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녹차는 차를 마시고 나면 찻주전자에 마른 조각들이 물에 불어 펼쳐져 본래의 잎이 되는데, 그 찻잎들이 참 귀엽다. (캐모마일 빼고, 캐모마일은 말랐을 때가 더 예쁘다) 어떻게 찻잎들은 자신의 그 아름다운 순간을 향으로 담고 있는지! 그 향이 내 안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 좋다. 쑥차는 봄의 쑥향을, 연잎차는 연잎쌈밥향을, 귤차의 말린 귤껍질은 수많은 귤을 까먹고 나서의 그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그럼 나는 짧게나마 그 순간으로 빠진다. 정말 찻잎 이름 그대로의 향을 내는 걸 신기해하면서. 그리고 대부분의 차가 한 번 우리고 나면 그 향이 아득해진다. 그러니까, 아쉬운 마음에 한번 더 마시려고 물을 새로 부으면 처음의 향이 온데간데없이 무상해진다. 그래서 차를 마시며 순간들이 짧게 피는 벗꽃처럼 더 귀하게 느껴진다. 그걸 알기에 나는 더 향을 깊게 맡고 더 오래 입 안에서 굴린다. 나는 차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