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너무 많아져서 적습니다
한때 기계식 키보드에 푹 빠져 있었다. 일정이 없는 날이면 키보드의 성지, 용산을 갔다. 인터넷으로 미리 알아본 가게들을 방문해서, 쳐보고 싶었던 키보드를 눌러보곤 했다. '인터넷에서 말하는 보글보글 소리가 날까? 저소음이라던데 먹먹한 느낌이 들려나?' 유튜브로만 듣고 보았던, 꼭 만져보고 싶었던 키보드 앞에 섰을 때, 난 이렇게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부서 △△△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두드려 손에 익어버린 문장이었다.
리포트에서 벗어난 직장인이 써볼 수 있는 글자가 뭐가 있을까.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건 때문에 메일 드렸습니다."
"보고서 송부드립니다. 재가 후 결재 요청드립니다."
"바쁘시겠지만, 이 부분 확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나는 주로 이런 글을 쓴다. 나는 테스터용 키보드 앞에서도, 펜을 써볼 수 있는 문구점의 종이 위에도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분명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 입이 말이 없는 만큼, 내 손도 말이 없어서, 빈 종이 앞에서 회의록이 아니면 뭘 적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쩌다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을까?
되짚어 보면 더 이상 저놈의 자기소개 문장을 쓰지 않고 싶어서였다. 이제 나를 가두는 사회의 틀에서 벗어나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졌다는 그런 낭만적인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냥 그놈의 □□부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7년을 일한 조직에서 나오고 싶었다. 나는 모든 게 지긋지긋했지만, 모두가 나를 말렸다. 도망간 곳에 낙원이 없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심지가 곧지도 자기주장이 강하지도 못해서, 그런 말 한마디 한마디에 텀블러 속의 아이스커피처럼 요란하게 흔들렸다. 보다 못한 내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종이를 꺼내, 그리고 한쪽에는 부서를 옮기지 않았을 때의 장단점을 쭉 적어. 그리고 반대쪽에는 부서를 옮겼을 때의 장단점을 쭉 적어. 그럼 돼."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을 일이었으면 내가 몇 날 며칠을 고민했겠는가. 그렇지만, 사정없이 흔들리는 텀블러 속에서 거품을 내던 나는 그 조언이 간절했다. 마음을 경건히 하고 21세기의 종이,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적었다. 처음엔 친구의 조언대로 부서를 옮겼을 때의 장단점을 적어 내려갔다. 그걸로는 결단이 안 서서 내가 왜 결정을 못 하는지 적어 내려갔다. 그다음 날은 지금 상황이 왜 싫은지 적었다. 그다음 날은 회사를 왜 내가 다녀야 하는지 적었다. 그다음은 나에게 돈이 무엇인지, 그다음은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나는 매일 적었다. 쓸 말이 너무 많았다.
토해내듯 적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잘 정리된 글 같은 건 없었다. 나만 본다고 생각하니까, 키보드 몇 개로 쉽게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하니까 손으로 쓰는 글보다 쉬웠다. 분명 글은 의식의 흐름대로 적었는데 뱉어내고 나면 오히려 내 머릿속은 선명해진다. 아, 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매일매일 팽팽 돌아가는 머릿속을 왜 적기 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할까? 나는 내가 엄청나게 편협한 사람이라는 것도, 어떤 부분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둔감한 사람이라는 것도 적으며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들은 모두 내 행동에 표현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된다더니! 나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내 행동과 말을 따라가 보면 나의 열등감이나 나의 약한 부분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과정이 때로는 힘들었지만 대부분 신기하고 새로웠다.
나는 글쓰기를 오랫동안 해온 사람도, 평소에 관심과 흥미가 있던 사람도 아니다. 나에게 글쓰기는 여행지에서 잠깐 만난 친구 같은 느낌이다. 단지, 그 여행지에서의 기억이 즐거웠었어서 다시 일상에 복귀해서도 계속해서 회상하고, 주변에 말하고, 연결 짓게 되는 친구. 이 친구와의 시절인연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지만(1화에서 말했듯 나는 아주 꾸준하지 못한 사람이다), 나는 이 시절을 제대로 즐기고 내 곁에 두고 싶다.
어쩌면, 나는 글쓰기를 좋아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