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글을 쓴다고? 혹시, 웹툰?"
"그건 절대 안 쓸 거야"
라고 말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정말 웹툰에 대해서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는데.
좋아하는 것이 많지 않은 평범한 이의 성찰은 결국 여기까지 와버렸다.
나는 웹툰을 좋아하나? 솔직히,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근데 웹툰을 하루 종일 보긴 한다. 정말 숨 쉬듯이. 샤워하면서 보려고 자동 스크롤 어플을 미친 듯이 알아보기도 했다. 몇 번이고 정주행 했던 제일 사랑하던 웹툰은 단행본으로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웹툰을 좋아하나? (쓰고 보니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의 흔적 같긴 하다만)
웹툰을 처음 보기 시작했을 때는, 내가 초등학교 시절이다. 김규삼과 조석의 시대. 그리 친하지 않은 친구네 집에 어떤 이유로 얼결에 따라간 갔었다. 지금도 그 친구의 이름도 성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친구가 어색함을 없애려고 앉은뱅이책상 위에 있던 컴퓨터에 나를 앉혔다. 그리고 귄모술수가 난무하는 정글고에 초대했다. 나는 그 친구의 엄마가 오셨는데도 컴퓨터에서 엉덩이를 뗄 수 없었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게 있다니. 이렇게 색깔이 화려하고, 각종 언어유희가 난무하는 사람 혼을 쏙 빼놓는 게 컴퓨터 안에 있다니! 집에 하나 있는 컴퓨터라곤 늘 오빠에게 양보당해서 켤 줄도 모르던 컴맹에게 신세계가 펼쳐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집에 가야 할 시간이 한참 지나서까지 그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있었고,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한 친구가 옆에 있었다.
세상은 빠르게 발전했고, 모바일로 웹툰을 쉽게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나는 다음, 케이툰, 네이버 웹툰 등 온갖 플랫폼을 넘나들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웹툰이 엄청나게 많지 않아서, 나는 늘 목말랐다. 쿠헬헬 베스트 도전까지 닥치는 대로 보아서 세상에 내가 아직 안 본 웹툰이 없다는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다. 작가의 작화만을 보고 예전 작품을 유추하는 일도 즐거웠고, 내가 발굴한 작가가 정식 연재로 넘어가는 일도 (내가 한 것은 없었지만) 뿌듯했다. '야! 오이' 때부터 범상치 않음을 느낀 랑또 작가님이 계속 활동하고 늘 멋진 작품을 내주는 것도 감사했고, 난다 작가님의 젊은 시절부터 육아하는 일기까지 접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미스터리심리썰렁물의 강풀작가님의 세계관이 드라마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는 게 자랑스럽기도 했다. 친구들이 모두 성인이 되면서 자연스레 웹툰가 멀어졌다고 했지만, 나는 그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럼 엄청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회사 스트레스가 심해지면서, 사내 심리상담을 할 때의 일이다.
"보통 쉬실 땐 어떤 일을 하세요?"
"아, 쉴 땐 보통 그냥 누워서 웹툰을 봐요"
"웹툰 보시는 걸 좋아하세요? 그럴 때 쉰다고 느끼시나요?"
"저는 그냥 습관처럼, 숨 쉬듯이 보는 거긴 한데, 쉰다고 느끼는지 잘 모르겠어요. 눈이 뻐근할 때까지 보는 게 일상이라서.. 사실 진짜 짧은 틈에도 웹툰을 봐요. 화장실에서 볼일 볼 때도 보고, 걸어가면서도 당연히 보고, 인스타 릴스 보듯이 멈추질 못해요. 헬스 하면서 한 세트 다음에 쉬는 순간에도 웹툰을 봐요"
"왜 그런다고 생각하세요?"
"... 모르겠어요"
나는 조금 당황했다. 원래 사람이 이렇게 짧은 순간에도 무언가를 하고 있기도 하나? 이게 내 취미가 맞긴 한 건가? 예전엔 시간을 쪼개서 효율적으로 쓴다고 생각했는데, 핸드폰 액정 위에 스크롤을 내리며 생긴 손자국이 뭔가 잘못되어 보였다. 내가 왜 이렇게 하루 종일 이 화면을 보고 있지? 나는 웹툰 보는 일이 크게 즐겁지 않았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웹툰이 생겼고, 나는 그 많은 웹툰을 대부분 살펴보며 검토했다. 10개의 웹툰을 보다 보면 1개의 내 취향인 웹툰이 있었고, 100개의 웹툰을 보다 보면 1개 정도의 전율이 흐르는 웹툰이 있었다. 문제는 내가 웹툰 감별사도, 평론가도 아닌데 99개의 웹툰을 꾸역꾸역 다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진짜 재미있는 운명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로. 그리고 모두 봐야 한다는 왠지 모를 의무감으로. 나는 정말 웹툰 보는 것을 좋아하나? 나는 상담을 한 날, 상담사님의 마지막 질문에 대답하고 싶어서 웹툰을 꺼보았다.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웠나?'
웹툰을 보지 않고, 앞을 보며 길을 걸었을 때 느낀 가장 큰 감정이었다. 한 가지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세상에 온갖 소리가 가득했다. 그리고, 머릿속도 엄청나게 시끄러웠다. 웹툰을 보지 않는 짧은 순간순간, 내 머릿속을 잡념이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대부분 영 좋지 못했다. 일에 대해 매몰되어 있다거나, 좀 전에 친구와 함께 했던 대화가 마음에 걸린다거나. 견디기 어려웠다. 나는 내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도피처로 웹툰을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나는 웹툰에 심리적으로 의존하는 중독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역으로 나는 내 감정을 온전히 돌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이렇게 계속 곱씹는 소심쟁이인 줄 몰랐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아서 상담을 했지만, 나는 그냥 일이 많아서 부담되어서 그런 줄 알았지 내가 하루 종일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할 만큼 신경을 쓰고 있는 줄도 몰랐다. 나는 내가 마땅히 나를 위해 해야 할 모든 관찰과 돌봄을 어디론가 맡겨 놓고 웹툰에 의지하고 있었다. 잘 모르겠고, 이게 나의 오랜 시간 동안의 구원이었으니까.
나는 웹툰을 좋아하는 걸까? 나는 아직 여기에 손쉽고 명료한 대답을 못 찾았다. 그래서 타인이 보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꼽는 `웹툰`을 좋아한다고 적기가 어려웠다. 아직 `웹툰`을 내 삶에 건강하게 녹여내는 방법을 못 찾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때때로 침대에서 손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날이면, 오른 엄지 손가락만을 까딱거리며 웹툰을 본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제 그 순간들이 내가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어 하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어쩌면, 웹툰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저 도파민 공급처일 수도 있다. 그래도 솔직한 심정으로는 나와 반평생을 넘는 시간을 함께하고 울고 웃고 위로와 힘이 되어준 좋은 친구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주고 싶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나의 충전소로 남기를.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을 순수한 마음과 건강한 관계로 오래 지켜내는 일은 더 어렵다는 것을, 오늘 찾은 웹툰을 통해 느낀다.
ps. 웹툰 중독자로써 요즘 웹툰 추천을 안할 수 없잖아요?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명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