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굴절만으로 표현하기에는 아쉬운
노을을 좋아한다.
하루가 저물어 가는 그 순간을
낮에는 상상할 수 없던 빛깔로
별안간 물들어 가는 하늘을
때론 개운하게
때론 아쉽게 바라볼 때면
나도 모르게 벅차오르는 마음을 느낀다.
그 시간들을 좋아한다.
해가 뜨지 않는 새벽에 버스를 타고
어느새 어두워진 세상을 보며
퇴근하던 나날이 있었다
손에 일이 익숙해지기 무섭게
회신해야 하는 메일과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가 쏟아졌고,
내 권한과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막막하기만 한 직장인 초년생에게
햇살을 느끼는 것은 사치였다.
그러다 보니 소중한 연차를 써서 간
여행에서 보는 햇살과
시간에 따른 하늘의 변화는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
PPT에 파묻혀 있을 때는
해는 동쪽에서 떠서
정오에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가
저녁이면 저물어서 노을을 만든다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완전히 잊는다.
「인상, 해돋이」를 그린 모네의 연작 중에,
루앙 대성당 그림들이 있다.
루앙 대성당을 관찰하며
시간에 따른 그 변화를 그린 그림이다.
예전에는 그 그림들의 매력을 몰랐는데,
시간에 따라 바뀌는 햇살과 성당의 찰나를
화폭에 담고 싶었던 모네의 마음이
지금은 십분 이해가 간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최초의 해질녘은 언제일까?
나는 초등학교 때 살았던 주공아파트에는
매주 목요일이면 단지 내에 장이 열렸다.
학교가 끝난 오후에 느지막이 집을 나선 엄마가
쪽파를 고르고, 두부를 사고 나면
잘 따라다닌 나를 위해 늘
"떡볶이랑 순대 사갈까?"
라고 물어보셨다.
"응!"
그렇게 엄마가 좋아하는 야채튀김까지 사고 나면
수백 개의 형광등을 켜놓은 듯 밝았던 하늘이
어느새 그 색감이 백열등처럼 변했고
엄마와 나는 장사를 접느라 어수선한 소리를 뒤로 한채
따끈따끈한 순대와 떡볶이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최초의 해질녘 노을이다.
노을은 분명 오늘 하루가 끝나간다는
이별과 같은 느낌인데도
내가 노을을 볼 때마다 느끼는 따뜻함과 벅참은
혹시 그때의 말랑 따뜻하던 떡볶이 비닐봉지 때문일까?
어쩌면, 노을을 좋아한다.
해가 길어지면서 요즘은 퇴근길에 노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늘어났다.
노을 명소라는 여행지에서 찾아간 높은 곳이나 바닷가만큼은 아니지만
높은 건물 사이사이 분홍빛으로 변해가는 모습부터 붉어졌다가 순식간에 어스름해졌다가 갑자기 어둑어둑해지며 밤이 찾아오는 퇴근길의 풍경은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한다.
내가 정말 그림을 잘 그려서 그 순간들을 화폭에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록 주식처럼 당장 내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주지도 않고, 뜨개질처럼 결과물을 나눠 주며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걸로 어떤 내일이 나올지 도통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노을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