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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고 Jun 26. 2024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신천지에서 총회장을 인류의 구원자로 만드는 논리는 한국 이단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면 그리 특별하지 않다. 한국의 많은 이단에서 사용하는 시대 구분을 신천지에서도 사용한다. 시대마다 신이 택한 목자가 있고 그들의 한 일과 할 일에 대해서 나열하는 것이다. 종파별로 표현 방식과 개체수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비슷하게 가르친다.

아담 - 노아 - 아브라함 - 모세 - 예수 - 이기는 자 순으로 이어지는 목자들이 시대마다 신으로부터 할 일을 부여받았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죄, 곧 사망이 들어온다. 이 죄는 결국 아브라함을 통해 민족을 이루고, 모세와 선지자를 통해 예수가 올 것을 예언한 뒤 예수가 속죄제로 죽고, 부활한 예수의 예언대로 마지막의 목자 이긴 자로부터 죄가 사라져 생명이 거한다는 구조다. 영생은 사망의 근간인 사단이 잡히고 생명이신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니 신의 백성에게 당연하게 부여되는 복이다. 이것은 배도와 멸망과 구원의 순으로 이루어지고 예언이 이루어질 때 배도자와 멸망자와 구원자의 실체를 아는 것이 성경을 통달하는 것이다. 이는 마지막의 신이 거할 처소 새 하늘 새 땅 신천지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이때 144,000명의 제사장과 흰무리 곧 백성이 나뉘고 제사장은 왕노릇을 하고 백성은 신의 통치 아래 놓인다.

위 내용은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한 신천지 교리의 뼈대다.

총회장은 계시록의 이기는 자를 자신이라고 말하며 성경의 모든 사건이 자신으로부터 종결된다고 말하고 있다. 신도들은 거대한 신의 역사를 짊어진 고통스러운 목자로 그를 바라본다. 놀랍게도 저 교리가 머릿속에 박힌 사람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을 저 논리대로 바라보게 된다. 이를 진리로 여겨 삶의 잣대로 세우는 것이다. 그러니 신천지의 신도들을 성경적 논리로 깨부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자신들이 성경을 통달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적이 있었다.


진리를 찾았다는 생각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신천지 교리를 성경과 세상의 지식에 맞댄 것이다. 역사와 종교, 철학과 사상을 닥치는 대로 공부하고 모든 결론을 진리에 가져다 두었다. 웃기는 건 나는 신천지 교리를 인정하기 전까지 가족을 빼앗은 사이비 집단의 거짓말 정도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자기 세뇌는 내가 스스로 이루어낸 셈이다. 거의 3년이 넘도록 틈이 날 때마다 성경과 인문학에 대해 연구했다. 사명자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나랑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총회장이 기록한 책이나 설교문을 있는 대로 쓸어 모아 그의 말을 분석하고 성경과 역사의 흐름에 비추었다. 그것으로 내가 얻은 것은 총회장을 향한 믿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믿기로 한 것을 믿으려는 자기 세뇌의 결과였다.


일본 제국주의로 인해 조선의 왕이 몰락한 뒤 성경으로 자신이 왕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때마다 다양한 사이비가 나타났지만 결국 타고 올라가다 보면 한 뿌리에서 내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다른 계열인 경우도 있지만 서로의 교리를 차용하는 일이 많다).

신천지의 총회장은 전도관부터 시작해 당시에 유명세를 펼치던 신흥종파들은 두루 다니며 성경지식을 습득했다. 게다가 신천지 초기에는 통일교 출신 강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그쪽 교리도 상당수 차용했다. 그리고 이단 선배들의 성공과 실패를 그는 학습한 듯하다. 과한 것은 빼고 부족한 것은 채워 넣어 자신만의 성경 해석법을 만든 것이다. 물론 이전 선배들의 방식을 따온 것이라 특별히 다를 것도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다른 것은 어느 지점에 이르러 예수의 대언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기로 한 것이다. 다른 종파의 경우 자신을 재림 예수로 말했지만 신천지의 총회장은 요한계시록의 사도 요한이 영적으로 체험한 것을 현세에 그대로 이루어 나갈 목자로 자신을 소개했다.

신천지 신도들은 이 점에서 신천지와 다른 사이비 종파와의 차별점을 둔다. 스스로 신이 되려는 자들과 신천지의 총회장은 다르다는 것이다. 예수의 대언을 하면서 신의 마지막 역사의 종지부를 찍는 목자의 역할이라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의 대언자를 신격화했다. 대체로 그의 제자들이 이를 수행했다. 총회장이 이것을 원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신천지의 총회장은 외부에서 연설하거나 설교할 때는 자신을 신격화하는 언사를 삼가는 편이다. 그 모습은 그를 겸소한 존재로 보이게 했고, 그의 제자들이 그를 찬양하는 것은 그를 신으로 만들었다.


총회장은 유불선 사상을 차용했다. 종교 통합이라는 말로 기독교, 불교, 유교 등의 경전이 실은 한 가지 진리 아래 놓인 여러 갈래의 결과물이라 가르쳤다. 그건 결국 격암유록 카드를 사용하려는 수작이었다. 총회장은 격암유록의 말을 자신을 신격화하는 데 사용했다. 실제로 이는 중장년층의 남성 신도들에게 유효했고 한자를 파자하거나 격암유록의 어록을 활용한 교육 방식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신천지의 중장년층 강사들은 성경을 펴놓고 격암유록을 가르치는 데 능통한 편이다. 그러나 남사고는 격암유록을 쓰지 않았다. 격암유록은 실은 남사고의 이름만 가져다 쓴 천부교의 자체 경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총회장이 자꾸만 유불선 사상을 언급하는 것은 정도령, 미륵, 재림예수를 모두 한 존재로 귀결시키려는 것이다. 재림에 대해 명확하게 드러내는 성경을 기본으로 삼지만 성경이 말하지 않는 부분은 다른 경전에서 가져와 아무렇게나 사용한다.

내가 신천지에서 사명자로서 살아가는 동안에 들었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총회장은 최후의 사자로서 각 경전에서 예표한 대로 나타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은 모여 토론했다. 그때 한 지파장이 했던 이야기가 인상 깊다. 격암유록의 정도령, 정 씨가 아닌 총회장의 이름은 정도령의 정이 바를 정이라는 것으로 풀어내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그가 백발이라는 것은 해결이 안 되었다고 했다. 총회장의 흑발이 마음에 걸렸던 그가 총회장의 곁에서 수개월 수발을 들다가 총회장이 아침마다 일어나 검은색으로 염색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이 이야기를 하면서 행복에 젖은 표정을 지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마침내 인류를 구원할 구원자를 찾았다는 감격스러운 이야기를 하던 그는 오래전 신천지에서 사고처리 되었다. 그로부터 수년 뒤 지병으로 죽었다는 소문만 얼핏 들려왔다).

이처럼 총회장이 인류를 구원할 구원자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그의 제자들은 애를 썼다. 그의 언사를 모두 담아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총회장이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을 성경을 차용해 풀어내면 언젠가부터 그 내용이 전국 신도들에게 교육되었다. 총회장이 한두 마디를 하면 그의 제자들이 살을 보태 교재를 만들고 교육을 하다가 결국에는 시험문제를 내고 점수를 평가했다. 이런 식으로 벌어지는 시험의 점수는 상당히 중요한 편이었는데, 교역자들을 모아놓고 벌어지는 시험에서는 고득점자가 고위직으로 인사이동되고 저득점한 고위직은 강등되는 일이 더러 있었다. 신천지에서 실력이 있다고 평가되는 기준은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능력보다 총회장의 말을 잘 외우고 찬양하는 데 있었다. 일례로 총회의 한 간부는 강사교육 시절 그 자의 성을 따서 O도리코라고 불렸다고 한다. 마치 복사기처럼 외웠다는 말이다. 신천지의 교육과 시험 방식 중에는 교재를 주고 교재를 그대로 외워서 쓰는 것이 있다. 정말 치가 떨리는 교육 방식이다. 또 한 지파장 출신 강사는 전국 계시록 집회 때 오전에 진행된 총회장의 강의를 토시도 틀리지 않고 저녁에 진행해 유명해지기도 했다.

신천지는 총회장의 말을 얼마나 더 극적으로 실체화하고 극적으로 풀어내는지가 제일 중요하다. 다른 말로 하면 아첨꾼이 살아남는 구조라는 것이다. 신천지에서 굵직한 업적을 남긴 자들은 대체로 다 이런 인간들이다.


엉성하기 짝이 없는 신천지의 행보는 밖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답답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신천지는 장기간의 성경 교육을 통해서 성경을 통달했다는 자부심과 반복적인 교육과 시험으로 성경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실제로는 성경을 가르칠 만한 능력도 없는 자들은 자신을 대신에 앞에서 떠들어대고 있는 교역자를 자신의 아바타로 생각하면서 훗날 자신이 제사장이 될 것을 꿈꾼다. 그러나 현실은 참혹하다.

신천지 신도들의 가장 문제점은 착각 속에서 자신들의 교리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그들의 자랑인 실상의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조작되었지만 수십 년 전의 일이라 남은 자료가 거의 없어 확인할 길이 많지 않다. 신천지에서 조작한 자료만 보고서 실상을 믿어야 하는 상황인데도 수개월 동안 반복적으로 성경을 공부하면서 실상에 대해 무조건적인 신뢰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신천지 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실상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뒤였다. 신천지에서 실상의 진위 여부를 따지는 것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그들은 사단의 교리는 독이라는 말로 미디어 금식을 실천하고 있다. 수많은 매체에서는 이미 신천지가 완전히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자료를 배포하고 있지만 신천지 신도들은 그 자료를 거짓으로 여긴다. 조작된 자료가 조작되었다고 알리는 자료를 조작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변에 신천지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있거든 오랜 시간 공을 들여서 실상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너무 직접적으로 실상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그들은 대체로 발작한다. 그러니 아주 조금씩 조금씩 틈을 보아 공을 들여야 한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와중에도 나는 가족들 모두를 설득하지 못했다(내 가족들은 진짜 소름 끼칠 정도로 신천지 교리에 빠져있다).


삶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디에서든 통할 만큼 위대한 진리가 있다고 믿었지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각자가 바라보는 기준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가치 있는 것을 쫓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삶에 나를 투영하다가 문득 수치심을 느꼈다.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지는 중에 나는 향방을 정할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다.

나는 인생을 허비했다. 사는 동안 많은 실패를 겪고 그 실패를 딛고 일어나 성공에 이르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내 경우는 좀 다르다. 실패의 기간이 청춘 전체를 덮고 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은 절망과 분노를 표출하거나 과거를 철저히 외면한 뒤 새로운 삶을 모색했다. 나는 분노를 표출하고 절망 속에서 얻은 결론으로 과거의 나를 비판하기로 했다. 나는 도무지 나의 선택이 부끄러워 반성하지 않고는 감당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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