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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고 Jul 03. 2024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

새벽 2시 반, 잠에 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새벽의 전화벨은 유난히 다급하게 들렸다. 역시나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상소집입니다. 구역장 이상 사명자 성전으로 모이시라고 합니다. 지파장님 명이예요."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사명자였다. 아버지는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일찍이 잠자리에 들어가셨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가 깰까 봐 조심스럽게 안방 문을 닫고 나왔다.


"4시까지면 지금부터 간단하게 씻고 바로 출발해야겠다. 서두르자."


어머니는 화장을 지운 지 4시간 만에 다시 얼굴에 분칠을 했다. 동생은 방금 집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새벽까지 잔업을 하다가 택시를 타고 온 듯했다.


"나는 옷만 갈아입으면 돼."


동생의 목소리는 잠겨있었다. 화를 억누르는 듯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어머니가 화장실에서 씻는 동안 나는 싱크대에서 세수를 했다. 부스스한 머리는 포마드를 발라서 눌렀다. 가족 모두가 한숨이 새어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누르고 있었다. 자꾸만 호흡이 끊어졌다.


부리나케 달려가 지파본부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3시 40분경이었다. 벌써 꽤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사뭇 진지한 얼굴로 서로의 상황을 격려했다. 어떤 이는 긴박하게 이곳으로 오는 과정을 옆사람에게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연락을 늦게 받은 건지, 전화벨소리를 듣지 못한 건지 꼴이 엉망인 사람도 있었다. 누구도 그 사람을 나무라지는 않았지만 분명 눈빛으로 비난하고 있었다. 정신이 빠져있구만.

3시 50분이 되자 집회 전에 찬양을 부르기 위해 찬양단 리더가 마이크를 잡고 섰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줄을 맞춰 앉았다. 신천지의 예절은 질서정연에 있다면서 찬양단 리더는 잔소리를 시작했다. 이십 대 중반이나 될까 싶은 햇병아리는 자신이 받은 감투가 세상에서 제일 큰 것이라고 여기는 듯 군중들을 통제하려고 했다. 사람들은 군말 없이 그의 지휘에 맞춰 자리에 앉았으나 개중에는 일부러 행동을 굼뜨게 해 최대한 뒷자리로 가려는 자들도 있었다.

십 분간 찬양을 부르고 나자 요즘 잘 나가는 주강사가 나와 대표기도를 했다. 기도를 마친 주강사는 자신이 지파장을 얼마나 존경하는지에 대해 잠시 떠들다가 지파장을 소개했다. 지파장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고 단상에 올랐다.


"새벽에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나아갈 각오와 믿음이 있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나오지 못한 자들은 성경을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열처녀의 비유는 우리가 수도 없이 외우고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의 바울처럼 깨어 근신해야 한다고 수백 번 외치는 사명자들이 아직도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면 말이 되는 겁니까!?"


지파장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성전을 매웠다. 나는 이따금 지파장은 데시벨이 높은 순으로 뽑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감투 하나 지키기 위해서 애를 쓰는 그의 모습에 환멸을 느꼈다.


"총회에서 비상소집을 걸었을 때도 이렇게 하실 겁니까!?"


다시 한번 지파장이 소리쳤다.

그랬다. 총회장은 살아있는 군대를 원한다면서 사명자들은 어느 시간에 부르든 어디에 있든지 모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의 깨어 근신하라는 말을 인용한 것이었다. 총회장은 때마다 자신이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전쟁의 참상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군인정신에 대해서 자꾸만 강조했다. 그가 생각하는 군인 정신은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었다. 신도들은 성경의 순종과 연결 지어 그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따르려고 했다.

전국 각 지파는 때마다 새벽에 비상소집을 걸어 사명자들을 집결시켰다. 처음에는 80%, 그러다가 90%, 결국에는 전원이 참석했다. 그 과정에서 새벽잠이 많은 사람들은 맡은 직책에서 해임되었다. 총회장이 원하는 사명자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비상소집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미리 들은 사람들은 아예 집에 가지 않고 예배당에 모여있었다. 잔업이 있어 새벽까지 업무에 시달리다가 그런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문득 기시감이 들어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휴거를 기다리는 다미선교회 신도들의 격앙된 모습이었다.


그 무렵 총회에서는 두 번 정도 비상소집이 진행되었다. 전국 사명자 전원 참석. 기염을 토할 만한 성과는 총회장의 자랑이 되었다. 각 지파는 기준에 걸맞은 사람으로 사명자들을 전부 교체한 뒤였다.


이 집단 이상 행동은 신천지에서 꽤나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당시를 추억하는 사람들은 이따금 자신이 관할하는 부서에서 갑적스럽게 시행하기도 했다. 특히 낮과 밤이 없는 부서에서는 더 심화되었다. 믿음과 충성을 보기 위한 말을 하지만 부서원을 어느 시간에든 부려먹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신천지에서는 자꾸만 사명자와 신도들의 믿음 테스트를 진행한다. 이것은 반복적인 세뇌작업이다. 넘어서기 어려울 것 같은 기준을 넘었을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집단 전체에 작용하면 그것은 믿음의 잣대가 된다. 자신의 경험이 믿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면 사람들은 타자 보다 우위에 선다. 그것으로 이미 구원을 얻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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