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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고 Jun 12. 2024

몰락하는 신사도행전

요한복음 1장 1절에서는 하나님이 곧 말씀이라 말한다. 이 구절을 두고 신이 인격체가 아닌 질서 그 자체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보면 신이 택한 사람이 나타났을 때 질서를 깨달은 시대의 리더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만일 신천지의 총회장이 그 존재라면 나는 기꺼이 따라갈 것이며 그의 말로 세상이 변화될 거라고 굳게 믿었다.

신천지 초창기에는 성경과 신천지를 이성적으로 바라보던 총회장은 언젠가부터 기적과 표적을 논하고 자신의 행보에 거창한 영적 의미를 부여했다.

나는 성경 대로 살아가기를 원했다. 이는 총회장이 매일 같이 강조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성경대로 살지 못한다. 표면상으로는 자신의 행보를 성경적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하나하나 돌이켜 생각하면 그는 모든 행보에 변명을 일삼고 있다.

나는 신약의 대부분을 기록한 바울의 말을 기준으로 삼아 살아가려고 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고 잘 해내지 못했다. 다만 나는 누군가에게 신천지의 신앙을 설명할 때 바울의 말을 인용했으며 바울의 삶을 따라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 수치스럽게도 당시에는 바울의 삶과 총회장의 삶을 같은 선상에 놓았다. 지금도 그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떠들고 있는 나를 떠올리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쩌면 총회장은 때에 따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카드로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 기독교와는 다른 길로 가겠다며 비상식적인 한국 기독교의 은사 문화를 비판하던 때를 기억한다. 말씀 위주의 이성적인 신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진리를 깨달야 한다고 총회장은 외쳤다.

그러던 그는 이제 자신의 영적인 체험들을 신도들에게 자랑삼아 말한다. 그의 꿈에는 영인이 출현하고 말을 건넨다. 요한계시록 10장의 책을 받아먹었을 때는 다소 모호하게 진리를 깨달았던 그가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영인과의 만남을 설명할 때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있어야 할 일들을 보여 알려주었다는 신은 왜 자꾸만 그의 꿈에 나타나 말을 건네고 있을 걸까.

총회장의 이상 행보에 그동안 마음을 숨기고 있던 기적을 바라는 신도들이 본색을 드러냈다. 그들은 마치 자신이 신의 능력이라도 받은 것처럼 취해서 아직 받지도 않은 영생과 신의 권능에 대해서 떠들기도 한다.


신천지에 있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성적인 척하는 비이성적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신천지에 입교하는 과정에서 반년이 넘도록 매일 같이 성경을 배운 것으로 사람들은 진리를 모두 깨달은 것처럼 굴었다. 선교센터는 두괄식으로 답을 내리고 주절주절 성경을 찾아가며 변명을 했다. 품이 많이 드는 교육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교육 방식의 장점은 한 번 세뇌가 시작되면 두괄식으로 던지는 메시지만으로도 세뇌가 강화된다는 것이었다. 선교센터의 교역자들은 신학 과정 초반부에 세뇌를 마치기 위해 열과 성을 올렸다. 그리고 세뇌된 신도들은 자신을 가르쳤던 강사와 전도사를 스승으로 삼고 자신의 나아갈 길을 맡긴다.

한 번 결론에 닿으면 다시 과정으로 돌아가 생각하는 것은 어렵다. 신천지 신도들 대부분은 이미 자신이 결론에 도달했고 그것을 진리로 삼아버렸다. 결론을 해치는 수많은 논리는 진리를 위협하는 비진리로 치부한다.

사람들은 이미 믿기로 한 그것에 보강할 만한 정보만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듯했다. 진위여부도 신빙성도 고려대상은 아니었으며, 신천지에서 정죄하는 곳의 정보라도 입맛에 맞으면 가져다 쓰는 식이었다. 사단도 때에 따라 들어 쓴다는 논리가 무자비하게 쓰였다.

신천지 신도는 자신이 성경을 통달했다고 말한다. 그것이 총회장이 말하는 '신천지의 자랑'이다. 그러나 이는 신학 과정에서 인용하는 성경 구절의 양이 많을 뿐이지 실제 신도들이 모든 내용을 관통할 만한 지식을 쌓은 것은 아니다. 장담하건대 신천지 신도 중에 성경을 덮어놓고 신천지 교리를 나불거리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자신이 신천지 교리를 기반으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자신의 말이 진리에 가깝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때에 따라 그것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바뀐다. 자신이 진리를 말하고 있다는 정당성을 가졌지만 실은 이익을 위해 신천지 교리와 성경을 차용한 것뿐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보에 신사도행전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스스로가 너무 자랑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는 꼴이 우습기만 하다.


모략 전도를 일삼다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공개 전도를 선포했다. 모략 전도로 법적 공방이 생기고 세상의 지탄을 받게 된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는데, 다수의 인력을 필요로 하는 모략 전도 보다 소수의 인력으로도 가동할 수 있는 공개 전도가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전도 실적이 좋지 않더라도 세상이 핍박을 해 어쩔 수 없다는 논리를 대면 그만이었다.

현재 신천지는 다시 모략 전도를 하고 있다. 다시 위장 단체를 운영하고 사람들을 기망한다.

신천지는 성경을 이루는 것이라고, 예언을 이루는 성취라고 말하면서 이런 식으로 수차례 발언과 행보를 번복한다. 안 하던 짓을 할 때는 반드시 성경으로 이유를 찾지만 버렸던 카드를 다시 찾아들고 올 때는 인정에 호소하는 추잡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를 보았을 때, 신천지도 곧 저기에 나와서 철퇴를 맞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천지는 간사하고 교묘해서 중대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거의 없었다. 신천지 전체를 보아도 착복에 가담하는 세력은 극소수이며, 절대로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공격적이고 적극적이지 않은 착복의 형태는 총회장의 순수성으로 둔갑한다.

총회장이 우는소리를 내어 신도들의 금전을 거출하는 것은 성전을 짓는 일, 전도를 하는 일, 하나님의 일, 이 세 가지뿐이다. 그러나 이는 참신하게도 전도를 위해 연수원을 짓고, 전도를 위해 해외 순방을 하고, 전도를 위해 방송국을 인수하고, 지파 성전을 짓기 위해, 총회 성전을 짓기 위해 돈을 모은다. 신천지를 홍보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 문화예술체육 행사에 돈을 퍼붓는다. 그때도 신도들의 거출을 필요로 한다. 최근에는 법적 공방에 쓰이는 돈을 거출하기 위해 하나님의 일에 필요하다는 명분을 댄다.

신도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그의 행보를 지지한다. 그러는 중에 이 돈이 얼마나 투명하게 쓰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우리 가족은 20여 년 신천지에 있으면서 수천만 원에 달하는 헌금을 냈다. 큰 금액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가족의 형편과 삶의 궤적을 고려한다면 그렇지도 않다.

신천지 총회와 열두 지파는 신도들에게 적당한 금액을 아주 오랜 시간 거둬들인다. 과하지 않아야 하고 반드시 총회장의 세 가지 이유를 대야만 한다. 총회장이 원론적인 이야기를 꺼내면 충성이 가득한 열두 지파장들이 말을 보태고 나면 신도들은 책정된 금액을 작정한다. 여유가 되는 사람은 일시불로, 여유가 없는 사람은 분납으로.

물론 단기간에 많은 돈을 쓰는 사람도 있다. 이 경우 원래 돈이 많은 사람들이다. 선교센터의 월세를 담당하거나(원장이라는 직책이 부여된다) 때마다 생기는 행사의 비용을 찬조한다. 그것으로 교회에서 좋은 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극도로 적은 수에 불과하다.

그 와중에 직접적으로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신천지의 총회장은 자신 이외에는 누구도 금전 거출을 자유롭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았다. 총회장을 비롯한 모든 직책자의 여비교통비의 액수를 책정하고 그 이상 받지 못하게 했다. 그러니 착복은 비밀리에 이루어진다. 지파장의 경우 주례비를 받거나 가족의 이름으로 사업을 벌이고 은연중에 신도들에게 물품 판매를 하기도 한다. 총무나 건설부장은 행사나 건축을 주도하면서 리베이트를 노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모두 총회장에게 발각되면 가차 없이 징계를 받았다(웃긴 건 가끔 살아남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 훗날 고위직으로 인사이동된다) 대체로 이런 내용들은 신도들은 거의 알지 못한다. 믿음, 그러니까 충성도에 따라 공개 범위와 여부가 갈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깊은 내용과 적당히의 비율이 적절하달까.


그러니 뭘 모르는 신도들은 특별히 거부할 만한 것이 없다. 적당히 헌금을 내고, 적당히 전도를 하고, 적당히 구원을 바란다. 여타 다른 사이비의 행보와는 조금은 다르다는 것이다. 구원을 위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상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신천지 신도들은 삶을 살아가면서 구원의 그날을 위해 버티고 있다. 때때로 무너져버린 자신의 일상을 원망하지만 이내 신천지의 구원으로 위로를 받는다. 그러다가 신천지의 구원으로 절망에 빠지기도 하지만 곧 지속 가능한 자신의 일상으로 위로를 받아 살아간다.

총회장은 때마다 지금의 신천지가 계시록을 이루는 중이라고 설교한다. 이어 열두 지파장은 총회장을 향한 찬양과 신의 택함을 받은 자의 고단함을 말한 뒤 신도들의 할 일을 정해준다. 이제 교회 담임과 교역자들이 신도들을 감독하고 일을 주도한다. 성경에 근거한 명령과 적당한 할 일, 그것이 신천지를 지속시키는 힘이 된다.

그러나 이제 많은 것이 변했다. 반복적인 실패와 변명이 이어지는 동안에 마음이 떠난 자들이 많다. 신천지는 더 이상 교세가 확장되지 않는다. 신도들은 자꾸만 이탈하고 남은 자들은 아둔하고 멍청하다. 발전의 가능성은 없다.

고령의 총회장이 노환으로 사망하고 신천지가 와해되는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총회장이 살아있을 때 신천지가 침몰하기를 바란다. 모든 신도들이 신천지의 거짓말을 깨닫고 하루빨리 그곳에서 탈출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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