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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고 Jul 17. 2024

뿌리가 썩으면 나무도 썩는다

신천지에 입교했다가 탈퇴하는 자들의 유형을 보면 상당수가 관계에서 상처를 받아 마음이 떠났다. 그런 사람들을 찾아가 마음을 돌리는 일을 오래 했다. 사람을 맡아 관리하는 일을 하면서 신앙을 가르치고 할 일을 부여하면서 나는 고통스러웠다. 신천지의 신도들은 같은 목표와 이상을 가지고 입교한다. 그러나 배운 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원망은 곳곳에서 일어났다.


공의공도의 하나님, 나는 이 말을 혐오한다. 하나님은 성경 어디에서도 공의공도에 서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기준 대로 논리를 펼치고 뜻을 따르기를 원한다. 실체가 없는 존재는 율법과 계명, 진리라는 허울 아래 스스로를 증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를 증명하는 것은 사람이었고, 사람은 때때로 변질되었다.


하나님이 위대하려면 그가 가진 논리를 펼치는 사람 역시 위대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 기준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높은 곳에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를 모두 이행할 수는 없었다. 예수는 결코 지킬 수 없는 율법을 개혁했고, 율법의 완전체로 나타난 자신을 믿는 것이 신의 뜻이라 가르쳤다.


나는 이쯤에서 신이 가진 부조리를 미워하기로 했다. 차라리 결코 지킬 수 없는 율법을 가까스로 지키며 성인의 길을 걷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예수를 믿으면 만사형통하는 논리는 공평하지도 않을뿐더러 허접할 뿐이었다.


신천지의 교리는 내가 얕잡아 보았던 성경의 논리를 인정하도록 만들었다. 신의 위대함을 깨닫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창조의 근간을 깨달아 가장 처음으로 돌아가려는 행위, 그러니까 잃었던 생명을 다시 되찾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었다. 죄로 인한 사망의 출현, 사망을 해결하기 위한 예수의 대속죄, 종국에 신의 생명을 증명할 마지막 목자, 성경 전체를 신이 만들려는 세상과 그곳에 불려 온 사람들, 그들에게 주어지는 복과 영생으로 귀결시킨 것이다. 차라리 목적이 간단한 편이 내게는 설득력이 있었다.


이대로만 가면 정말 비참한 세상의 끝이 오고 완벽한 창조가 실현되는 것일까. 처음에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열정을 불태웠다. 문제는 신천지의 교리가 계속해서 변개했다는 것이다.


신천지는 1년에서 3년마다 대적자가 출현했다. 이를 적그리스도로 규정하고 이탈자를 사탄으로 만들었다. 어떤 이는 신천지 교리를 기반으로 신흥종교를 창설했고, 어떤 이는 신천지의 교리에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를 촉구했다.


신천지는 대적자들의 주장을 미리 받아 신천지 교리 대로 반론하는 교재를 만들었다. 나 역시 교재를 만드는 데 참여했는데 보통은 총회에서 내려오는 기본 뼈대 안에서 반증 내용을 만들어 제출했다. 전국의 모든 교역자들이 답안을 내고 가장 적절한 답을 추려서 반증 교재를 만드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만든 답안으로 교재가 만들어진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도 있었지만 곧 의구심이 들었다. 도대체 총회장은 뭘 하고 이걸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가.


총회장은 예수의 대언자로서 현안의 모든 답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예수는 모든 상황에 대한 대안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았고, 유다의 배신을 알았고, 제자들이 곁을 지키지 못할 것을 알았고, 부활할 것을 알았다. 그러나 총회장은 한 치 앞도 헤아리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나는 언젠가부터 신천지가 가진 특이점을 느끼기 시작했다. 총회장은 커다란 뼈대만 만들었을 뿐이고, 이를 가지고 현실에서 성경이 이루어지는 것들을 구현하는 사람이 신천지의 실권을 쥐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모 원장, 모 지파장, 모 총무, 모 부장 등 신천지에서는 때마다 이인자가 만들어졌다. 신천지에서는 이긴 자만 있을 뿐 이인자는 없다는 식으로 소문을 일축시켰지만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총회나 지파에서는 이인자에게 줄을 대기 위한 갖은 노력을 일삼았다.

문제는 그때마다 패가름이 되어 권력 다툼을 했다는 것이다. 실권자를 몰아내기 위한 술수와 궤계가 난무했다. 가끔은 절대에 가까운 권력을 얻어 장기간 집권하는 이인자도 있었지만, 결국 악행들이 드러나 발목을 잡았다.


총회장은 교세를 불리는 데 공을 세우는 자들을 치하했고 이로서 성경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 공포했다. 지방에서 공을 인정받은 자들은 중앙권력이 있는 곳으로 영전했고, 머지않아  좌천되거나 근신을 받거나 아예 제명되었다. 이인자의 입지가 공고해지는 순간 총회장은 이를 경계해 사람을 버렸다. 적절하게 선을 지키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근신을 받고 기회를 틈타 살아 돌아오는 자도 있기는 했다. 내 기억으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돌아와 현재까지 총회 고위직을 유지하는 사람은 총회교육부장 하나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특이점이 중앙권력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총회와 열두 지파, 그리고 각 지파마다 세워지는 지교회에는 각각 자신들의 입지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존재했고 다툼이 벌어졌다.


겉으로는 거룩함을 쫓고 사랑을 표방하고 있으나 실은 권력 다툼으로 인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열했고 그 가운데 교리적 쾌감으로 입교한 순수한 신도들이 이탈하는 일이 생겼다.


이 가운데 가장 빠르게 실권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실적을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총회장은 실적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지파는 없애버리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실제로 문제를 일으킨 한 지파를 없애버리고 지교회를 조합해 새롭게 지파를 세우기도 하고, 충성심이 대단한 교회담임 하나를 지파장으로 만들기 위해 지교회 하나를 다른 지파에 떼어주기도 했다. 전도, 그러니까 교세를 불리는 데 공을 세우는 것만이 신천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었다.


이미 세상에 알려진 신천지의 특이점은 대체로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과도한 모략 전도, 무리한 성전 건축과 건축 사기, 그리고 횡령 같은 것들이다. 대형 사고를 치지 않고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는 고위직들도 대부분 따로 뒷주머니를 차고 있다. 주례를 서고 주례비를 챙긴다든지, 교육을 목적으로 하위 기관에 방문하고 교통비를 챙긴다든지, 후원을 종용한다든지, 가족들이 운영하는 사업체의 물품을 홍보한다든지.


지도부가 이미 썩어버렸으니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갈등은 필요에 따라 드러내 강력하게 처벌하거나 반대로 무마시키기도 한다. 똑같은 죄질도 때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른 처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신천지에서 출세하려면 제일 중요한 것은 강의실력 향상이나 교리 공부가 아니고, 줄을 잘 서야 한다.


신천지는 전혀 공평하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그곳에 남아서 행복한 사람들은 신천지가 공의공도하고, 신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다. 현재를 바라보기를 포기하고 그저 자신이 처음에 얻었던 교리적 쾌감에 젖어 자위하는 것뿐이다.


"그래도 선생님은 맞으니까." 신천지인들이 제일 많이 하는 헛소리다. 그는 그냥 운이 좋은 사이비 카피캣이다. 그들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교리는 신천지에만 있지 않았다.


신천지에 몸을 담았다가 이탈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심판은 하나님이 하신다면서요. 그런데 왜 저는 저보다 더 더러운 사람들에게 성경으로 정죄를 받나요? 직책이 높으면 면죄부가 생기는 건가요?"

나는 이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신천지는 천년왕국 이후에 최후의 심판을 말한다. 천년 뒤에 잠간 놓인 용을 잡아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니까 사실상 천 년의 기간 동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유지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가. 어느 때가 오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 해결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민심을 잠재운다.


어느 때에는 환상적인 말로 곧 천국이 임할 것처럼 굴다가, 어느 때에는 천년 동안 일해야 하는 제사장과 흰무리의 입장을 말한다. 전자는 교세를 불리고 민심을 잡아야 할 때고, 후자는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어그러졌을 때다. 그때마다 목자의 심정을 들먹이면서 총회장의 나이가 언급된다.


"90세가 넘는 육신으로 신천지를 짊어지고 가는 목자의 마음을 우리가 헤아려야 합니다. 어서 빨리 역사를 완성시켜 총회장님도 쉬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총회장이 이긴 자라면 해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최소한 현세에 일들이 계시록 어느 구절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명확히 짚어낼 수 있어야 한다. 신천지의 모든 신도들은 계시록 1장에서 18장이 다 이루어졌고, 19장이 이루어지는 중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그는 벌써 몇 번이나 이루어졌다던 실상을 취소시켰고, 그 책임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돌렸다. 더 나아가 애당초 계시록의 배도와 멸망 사건은 모두 조작되었다.

현재 신천지의 총회장은 여러 가지 사유로 법적 공방 중이다. 그는 법정에 서서 자신은 영생할 거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했으며, 자신은 구원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가 멸망자라고 지명한 한 저명한 목사의 아들은 신천지의 모든 주장이 거짓임을 밝히고자 총회장을 고소한 상태다.


나는 지난 시간들에 큰 회한이 있다. 그리고 신천지의 존망에 관심이 지대하다. 그들이 완벽히 궤멸하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가족들의 충격을 걱정한다. 그러나 나는 가족들을 믿는다. 신천지를 택했을 때 이성적인 판단으로 신천지를 택했던 것처럼, 신천지가 틀렸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이성적인 판단으로 그곳에서 나오기를 바란다.


신천지가 틀렸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하는 방법이 총회장의 죽음뿐이라는 것이 안타깝다. 영생을 주장하는 신천지의 수장은 현재 자꾸만 설교 중에 죽음을 논한다. 영생을 당연하게 여기던 그였다. 이미 수년 전에 한 번 부활했다는 퍼포먼스를 보였음에도 그는 또 죽음이 두려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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