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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스 Nov 29. 2023

개를 키우면 일어나는 일 1-11

응급실

구급상자를 가져와서 부랴부랴 소독을 하네 붕대를 감네 하고 그 남자분은 견주에게 전화를 하는 것 같았으나 나는 이 집 개로 인해 벌써 두 번째 사고를 당하고 기껏 준비했던 말은 꺼내보지도 못한 채 이 지경이 되었다는 게 참으로 기가 막혔다.  

아니 남편이 물리고 우리 봄이가 물린 것까지 본다면 네 번째던가?


한참을 거의 이십 분을 기다린 끝에 그 견주부부가 차를 가지고 나타났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리고 그 지인부부는 남의 일이라서 상처에서 출혈이 계속되는  와중임에도 마냥 기다렸던 것이지 사실 이건 바로 119를 불렀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 견주는 앙다문 표정으로 약간의 난감해하는 태도는 보였지만 역시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최소한의 관용적인 표현 없었다.  


이들에겐 그 단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번 말하는 게 너무 어려운 것이가?

아니면 그 말을 할 정도의 일이 아니고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또는, 초등생도 알만한 그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이상하리만치 그 말만은 절대로 하지 말자고 작정하고 있는 사람들인가?

어찌 되었든 그들의 그간의 행태와 지금 병원으로 향하는 과정의 미묘한 기류등을 종합해 본다면 맨 마지막 이유가 가장 유력해 보였다.

뭔가 많이 경험해 본 끝에 가장 효율적이라고 결정된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듯이 보이는 건 내 과한 추측이었을까?




응급실로 가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24시간 여는 아는 개인병원을 가자고 물어왔다.  

나는 심신이 지치고 불안했던 탓에 내 상처가 어떤 상태인지 빨리 알고 처치를 받고 싶은 마음이 커서 응급실로 바로 가자고 했지만 가는 길이라고 굳이 들르겠다고 우겨서 갔고... 

하지만 거기서도 뭐가 여의치 않았는지 결국 원래대로 응급실로 향하느라 시간만 지체되고 출혈만 방치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더욱 가관인 것은 사고를 당해서 모든 게 미약한 무엇보다 빠른 처치가 필요한 나에게 이 상황에 맞지 않는 이상한 말을 해왔는데 부부가 번갈아가며 한다는  말이


지금까지 일은 얘기할 필요? 가 없고 하지 말고? 앞으로의 일?을 얘기를 하자고 했다.  


이 무슨 뚱딴지같이 사과도 한마디 안 하는 사람들이 무슨 앞으로의 얘기를 하자는 건지?  


무슨 앞으로의 일? 앞으로의 일 뭐?


어이없게도 이 와중에 지극히 이성적이고 이기적인 발상에서 나온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주장하며 위협까지 해 오던 그 말....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본인들 사유지 근처 오지 말라고 다니지 말라고?  이 말을 하고 싶어 한다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피해를 끼친 타인의 불행에 공감하고 책임을 느끼기는커녕 그걸 이용해서 재빠르게 본인들 이익을 취할 기회로 보고 있었다니 일반적 상식을 깨는 기발한 영악함에 분노가 차올랐다.


응급실 도착하자마자 항생제와 파상풍등 온갖 주삿바늘을 찔러 넣고 다친 손등 위로는 밑에 양동이를 받쳐놓고 소독약 십여 병을 연달아 계속 부어댔다.  다행히 인대는 살짝 벗어났지만 근육 속 깊숙이 물려서 그때까지도 지혈이 되지 않은 채 피가 흐르는 중이었고  바보같이 내 상처가 그 지경인 것도 모르고 무수한 시간을 낭비하며 자기들 잇속만 챙기려는 이들을 기다리고 무기력하게 이리저리 끌려다녔다니... 

한편으로 너무나 한심했다.


남편이 물렸을 때처럼 역시 개물림 상처는 바로 봉합할 수가 없어 며칠 통원하고 지켜본 후 한다 하여 항생제등 먹는 약을 처방받고 자정이 넘어서야 오는 차 안에서 허벅지를 물려서 같이 갔던 그 지인 남자분과 견주부부 세명은 가 홀가분해졌는지 나를 배제하고 자기들끼리 참 한가하게도 의미 없는 부동산얘기를 하며 웃어(?) 댔다.  


 나는 이제부터가 고난과 근심의 시작인데 말이다.




심지어 항생제 반응 이상으로 응급실치료가 길어지자 오늘이 아들 생일이라 술을 먹었다며 나를 두고 가려는 낌새를 보였고 그래서 부인이 운전한 거 알고 있는데? 뭐?

핑곗거리가 되지 않자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떠넘기고 빠지려는 속셈이었는지 

아내가 다쳤는데 병원 안 올 거냐며 따지고 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견주부인은 보험사인지? 제출할 서류까지 따박따박 챙기면서 아마도 이걸로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오는 중에는 물론 집 앞에 다 와서까지도 나에게 말을 건넨다거나 사고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없었으며 그들에게 내일 당장 병원을 또 가야 하는데 대중교통이 열악한 동네사정상 그리고 양손이 다 정상이 아니라 운전도 못해서 어떻게 할지 걱정이라고 했더니 그걸 왜 자기들한테 묻냐는 듯이 웃으며 남의 일처럼 택시 타고 가라고 했고 고생하셨다고 말하며 내리자 귀찮은 일 해결했다는 듯이

네네~  이게 끝이었다.


뭐지? 이게 이렇게 끝날 일인가?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이런 태도들과 대우가 본인들 불찰로 일어난 사고합당한 도의적이고 상식적인 처리라고 할 수 있을까?


먼저 사과의 말 한마디, 그에 준하는 어떠한 표현도 없었고 앞으로의 치료와 배상에 대한 언급도 일언반구 없었다.  

다 차치하고라도 빈말이라도 오늘 고생하셨고 죄송하게 되었으니 앞으로도 치료 잘 받으시라는 인간다운 형식적인 말이라도 들었다면 사실 족했다.

향후 치료비나 피해배상문제를 꺼내 들고 얘기하지 않았어도 말이다.

그러나 이들은 응급실 치료를 끝으로 이미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고 그래서 의례적인 인사조차 할 필요를 못 느끼고 아니면 애초에 나란 사람의 생명과 부상을 우습게 여겼던 건지 아니면 그들의 알 수 없는 일방적인 억하심정에 비추어 사고를 당해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건지도 모른다. 


날 내려주고 자신들 사유지로 두런두런 뭔가 가벼워진 분위기를 풍기며 몰려간 그들은 이제 이걸로 앞으로는 이쪽으로 무서워서 절대 못 오겠지 하며 이 날 희희낙락 자축이라도 하는 밤이었을지 모른다는 예감이 그 이후 보인 행태들로 미루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거라고 짐작이 었다.




이제 망했다.

작년 가을에 이어 올봄 시작도 하기 전에 또 개로 인한 부상으로  회사에 긴 병가를 신청해야 하고 사실 유기견을 입양하고 매일 산책을 하며 건강을 지키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그로 인해 누군가에게 미약하나마 선한 영향력을 주었으면 고 기대했던 야무진 꿈은 먼지처럼 날아갔다.

나로 인해 단 한 마리라도 유기견이 입양되고 그  가족이 같이 행복하면 좋겠다는 소박바람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는 게 허탈했다


개를 입양하고 예방주사를 맞히고 중성화수술시키느라  휴가를 썼던 것을 회사동료들이 알고 있었고 매일 산책하며 건강해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며 그래도 세상에 작지만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일조할 수 있겠다 싶어 나름 뿌듯했었는데 이건 무슨 개 키운답시고 노상 다치고 수술한다 하니 무섭고 위험해서 누가 나처럼 개를 입양하고 키울 엄두를 내겠느냔 말이다.   


남모르게 품은 허영이었을지도 모를  작은 소망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있었다.

실제로 사고 전에는 우리 개 안부를 어주고 입양계획까지 내게 상의하고 개에 대한 여러 가지 상식을 즐겁게 물어오던 동료들의 문의가 다치고 나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나야말로 개를 키우는 일이 새삼 이렇게 위험한 일이었는지...

개를 키우고 산책시키는 평화로운 일상이 이렇게 어렵고 힘든 바라선 안 되는 결국 꿈으로 끝났어야 일이었 너무도 충격적인 사건의 연속이라 어떤 말도 나오지가 않았다.

정말 이럴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연거 퍼서 일어나고 있으니 갈수록 놀랍고 지쳐가는  중이었다.




아니다.   

이건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몰지각하고 비양심적인 인성과 객관적인 상식이 부족한 이기적인 자를... 자신이 가진 사회적 지위를 무기로 애견인임을 뽐내고 과시는 위선자를 이웃(?) 상대로 만난 탓이다.  


거기서부터 일들이 잘못되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일상에 균열이 생기고 보이지 않는  사회적 규범과 평범한 상식이 무너져갔다.

문제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내게 희망차게 다가왔던 이번 봄은 봄이 아니었다.

작년 가을부터 겨울이더니 되돌아가서 또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봄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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