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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스 Dec 13. 2023

개를 키우면 일어나는 일 1-12

산책전쟁 3

항생제가 말을 듣지 않았다.  

두세 시간 간격으로 설사를 했고 뭐 때문인지 먹을 수가 없어 먹지도 잘 마시지도 못했는데 몸에서는 어떻게 그 많은 물을 쏟아내는지도 신기했고 병원에서는 항생제를 다른 종류로 계속 바꿔줬지만 그래도 설사...  아니 물이 그냥 쭉쭉 나오고 있었다.

하루종일 화장실만 왔다 갔다 하면서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는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몸은 계속 처지고 먹지를 못하겠고 오른손은 안전을 위해서 부목을 하고 심장보다 높이 들어야 한다고 해서 잠도 거의 못 자고  꼬박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병원에서는 입원을 권유했지만 다른 환자들도 같이 있는 병실에서 밤이고 낮이고 두세 시간마다 화장실 가는 것도 민폐라 더 불편할듯했고  무엇보다도 게는 돌봐야 할 나의 두 마리 진돗개가 있었다.




개를 좋아하지도 키우고 싶어 하지도 않았던 남편에게 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사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성향이 다른 큰 개 두 마리 동시 산책은 경우에 따라서 꽤 오랫동안  단련해 온 나만의 스킬과 노하우가 필요한 고난도의 작업이기도 했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남편은 시간적으로나 기술적으로도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개들이 실외배변만을 고집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매일 아침저녁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는 것이 나만의 버킷리스트이자 소박한 꿈이었고 예전에 아빠와 강아지산책을 아침엔 내가 저녁엔 아빠가 하며 좋았시절을 추억하고 싶기도 하는 등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너무나도 산책을 하고 싶어서 키우고 싶었던 개를 입양했다고도 할 수 있는 그 꿈과 행복감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우리 개들의 산책권은 무슨 이유에서든 지켜져야 마땅했다.


일단 목줄고리 두 개를 왼 손목에 걸고 다시 잡아 최대한 안전을 목표로 극도의 긴장감을 갖고 볼일만 보는 아주 짧고 소극적인 산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내가 산책하는 새벽이나 저녁시간에는 파지를 모으러 다니는 트럭이나 청소차 외에 거의 아무도 안 다니는 시간이라 시도해 볼 만했다.


지난번 왼손 중지가 부러졌을 때는 오른손으로 한 마리씩 나갔었는데 사실 왼손재활도 아직 더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 재활을 마저 도와야 할 오른손이 이지경인 데다 두 손이 모두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고 지금으로선 한 번에 두 마리를 같이 산책하는 게 시간을 아끼고 혹시 모를 리스크를 방지할 수 있는 최선책이었다.


아직 다 회복되지 않아 주먹이 잘 쥐어지지 않는 어설픈 왼손을 그래도 믿으며 목줄을 단단히 부여잡고 주변상황과 개들 컨디션을 면밀히 살피면서 행여나 있을지 모를 돌발사태를 사방으로 경계해 가며 있는 대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산책을 이어나갔다.

어지럽고 휘청거리는 몸상태와 아직 봉합되지 못한   덧날지 모를 급성기 상처를 생각해서

최소한으로 산책시간을 줄여야 했다.

그렇게 라도 산책은 계속되어했다.

내 유일한 힐링타임을 그마저도 이따위 이유로 할 수 없게 된다면 더 울하고 속상해서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회사에서는 지난번 왼손가락 골절부상을 알렸을 때는 장애가 되면 장애수당 신청하라는 등 가벼운 우스갯소리를 건네며 시트콤을 대하는 분위기였는데 두 번째 물림사고까지 나자 대번 할 말을 잃은  침묵으로 급냉각된 숙연해진 리얼다큐 같은 반응을 보이더니 곧이어 스릴러 장르까지 넘어갈 것 같은 태세가 되어갔다.


그리고 입원을 안 하는 대신 매일 통원해서 드레싱을 하고 듣지 않는 항생제는 링거주사로 처치하기로 했다.

사고 다음날 내원 시 응급실 방문 당시에는 누워서 치료를 받았고 두렵기도 해서 보지 못했던 내 상처를 처음 제대로 보는 순간이었는데 지금도 생생한 게 붕대와 부목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내 손등 위에 저게 뭐지????? 

왜 샤부샤부집 소고기더미저렇게 높이 쌓아있지? 


예전에 어디선가 상처에 소고기를 붙인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설마 병원에서 그런 처치를 한 건가?


잠깐사이 말도 안 되는 바보 같은 상상을 하며 한참을 긴가민가 가물가물 꿈처럼 보이는 비현실적인 그 광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세상에!!!!!!


그건 소고기가 아니라 응급실에서는 눈을 감고 누워있어서 못 봤던 손등 위로 비정상적으로 높게 덮어 올려졌던 붕대더미가  피를 빨아먹어 얇은 소고기뭉치로 보였던 것이다. 

밤새 피는 멈추지 않고 붕대에 다 배어 나오고 있었던 거였다!!!!!

내가 어지럽고 처졌던 이유!!!  

탈수증과 출혈이었다.

족히 두 세 주먹의 붕대더미를 치우고 나서야 내 뭉크러진 손등상처가 드러났다.


, 휴일이 끼여있어 하루 내원을 못했더니 드레싱 한 시트 위로 피가 번져 나오고 있었는데 난 회사에는 오후에 출근을 하겠다고 하고 병원을 갔고 그걸 본 담당의사가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면서 염증이  팔꿈치 위 팔뚝까지 벌겋게 올라와 있는데 아픈지도 모르냐고 무슨 출근이냐고 당장 입원하라고...

염증이 번져서 지금 못 잡으면 봉와직염 오고 패혈증까지 가면 그때는 끝나는 더 이상 손을 못쓴다는 거였다.  




회사에 제출해야 하는 진단서에  전치 몇 주인지기재해 달라고 했더니 지금 상태로 볼 때 별일이 없다면 빠르면 3주겠지만 늦어지면 6개월도 넘을 텐데 기한을 어떻게 적냐며 예측할 수 없다고 완고하게 거부하는 의사에게 그래도 행정처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강하게 주장했어야 했는데 나는 여러 가지로 심신이 지친 상태이고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제대로 요구생각을 못했그것이 결국 회사에서나 경찰에서나 내게 불리하게 작용되고 말았다.


의사는 부상을 경미하게 여기는 환자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서였는지 몰라도 통상적인 피해기준인 전치 몇 주가 적혀있지 않은 진단서는 심각하지 않은 피해로 간주되어 회사에서도 병가처리가 곤란해지고 차후 경찰에서도 단순상해처럼 치부되어 내가 당한 피해만큼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제대로 된 치료를 위해서라면 입원해서 수액과 항생제  링거치료를 계속한 후에 경과를 보고 봉합수술을 했어야 옳았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개에 물려 죽었다는 얘기를 설마 하며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과장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던  의사의 논리적인 설명이 내 현재 상태 맞아떨어지며 그때야 비로소 실감이 되면서 내가 이것 때문에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등골이 서늘해지 급작스런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편으로 그분들은 응급치료 이후에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괴상한 문자 하나를 남편에게 보냈는데 눈을 씻고 봐도 죄송하다는 표현은 단 한자도 없는 오직 변명과 책임전가로 이루어진 그럴싸한 문구로 아마도 그걸 사과표현?이라고 생각하며 보낸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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