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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충천은 너만 있으면 돼

by 아름드리

5월은 숨 쉴 틈 없이 달렸다. 부모교육, 어린이집 지도점검, 부모참여수업,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까지… 하루가 마치 마라톤처럼 질주했다. 머리는 늘 바람에 헝클어졌고, 아침에 최화정처럼 강렬한 붉은 립스틱을 비른지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지워지기 일쑤였다.


오후 간식을 나누고 나니 문득, 오늘은 붉고 힘있는 최화정이 되고 싶었다. 거울 앞에 앉아 조용히 립스틱을 꺼냈다. 립스틱을 칠하려던 찰나,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키가 나만큼 크고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한 소년이 서 있었다.


“어서 오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내 말에 소년은 조심스레 말했다.


“혹시... 저를 아실까요?”


순간 낯선 얼굴에 머뭇거렸지만,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니 오래된 기억의 조각 하나가 떠올랐다.


“혹시... 몽이니? 선생님이 처음 어린이집 왔을 때, 옆반에 있던 몽이 맞지?”


“네! 맞아요. 선생님이 기억하시네요. 혹시 기억 못 하실까 봐 이름도 안 말했는데...”


“그럴 리가. 널 어떻게 잊겠니. 진짜 많이 컸다.”


“지금은 5학년이에요. 7살 때도 키가 컸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선생님만큼 컸어요.”


수줍게 웃는 모습에 아직 초등학생 티가 가시지 않았다. 함께 수업하던 어린이집 교실을 보여주며, 몽이는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재미난 일들도 들려주었다. 우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다시 7살 몽이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선생님... 얼굴이 많이 피곤해 보여요. 어린이날 때문에 힘드셨죠?”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떨렸다.


“몽이가 선생님 힘든 것도 알아주다니, 고맙다. 몽이 7살 때 선생님이 자주 안아주며 ‘충전’이라고 했던 거 기억나니? 오늘도 충전해 줄 수 있어?”


몽이는 잠시 말없이 서 있다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오늘은 제가 충전 백배로 해드릴게요!”


나를 꼭 안아주는 몽이의 품에, 배터리가 1% 남았던 내 마음이 어느새 가득 충전되었다.


“선생님이 지금 간식이랑 달달한 젤리 있는데, 친구랑 나눠 먹어. 선물로 챙겨줄게. 정말 반가웠어.”


몽이는 간식이랑 젤리를 받아 들고 말했다.


“저를 기억해 주는 선생님이 아직도 이곳에 계시다니, 신기해요. 가끔 놀러 올게요. 오늘 선생님이 이렇게 반겨주셔서... 저도 충전이 된 것 같아요.”


우리는 작별 인사 대신, 또 한 번 꼭 안아주었다. 서로의 하루를 충전하는 순간, 문득 알게 되었다.

5월이 그렇게 벅찼던 이유는, 몽이의 충전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단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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