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발걸음을 서둘러 집을 나섰던 아침이었다. 반짝이는 새 신발을 신고 현관을 나서던 순간, 골목 어귀에서 덩치 큰 개와 눈이 마주쳤다. 심장이 지진이라도 난 듯 쿵쾅거렸다. 달려들까 봐, 뒤돌아보지 말자고, 아무 일 없다는 듯 걸어가자고 스스로에게 조용히 주문을 걸었다. 그 긴장을 알아챘을까. 반짝이는 새 신발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복숭아뼈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겉은 반짝이지만 안쪽은 아직 내 발의 굴곡을 모른다. 쓰라린 통증에 걸음이 조금씩 느려졌다.
건널목을 건너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길, 발갛게 부어오른 복숭아뼈가 이상하게도 내 마음 같아 서러웠다. 어린이집 문을 여는 순간, 신학기의 하루가 시작된다. 낯선 교실에서 아가들은 부모님과 떨어지며 울음을 터뜨리고, 아이를 떼어놓는 부모님의 눈시울도 붉어진다. 나는 그 사이에서 아이를 안아주고 동화를 들려주고 작은 장난감을 조심스레 건넨다. 아이들의 눈물과 콧물, 점심시간에 바지에 눌어붙은 밥풀처럼 마음속 고민들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내 마음을 가장 무겁게 만드는 것은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며 들려오는 한 문장이다.
“원감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잔인했던 2월 그 문장 뒤에는 늘 작별이 서 있었다.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이제는 너무 쉬고 싶다며 이별의 말을 눈물로 꺼내던 선생님들.
“우리 선생님들의 방패가 되겠습니다.”
오티 때마다 했던 그 말이 내 안에서 조용히 무너졌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속에서 나는 여러 명의 선생님을 떠나보냈다. 내 마음도 새 신발에 까진 복숭아뼈처럼 오래도록 쓰리고 아렸다. 그리고 다시 3월. 빈자리에는 새로운 선생님들이 들어왔다. 하지만 아직 길이 들지 않은 새 신발처럼 교실은 모두에게 낯설고 뻐근하다.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
“원감님… 적응하기가 참 힘들어요.”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쓴 물을 삼킨다. 아침마다 커다란 개를 마주한 것처럼 긴장한 채 출근하고, 길들지 않은 새 신발에 뒤꿈치를 내어준 채 하루를 버티고 있을 우리 선생님들. 떠나간 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새로 온 이들에 대한 안쓰러움 사이에서 나는 마음의 건널목에 서 있다. 문득 고개를 숙여 보았다. 바지에 딱딱하게 붙어버린 밥풀, 그리고 새 신발에 쓸려 붉어진 복숭아뼈. 생각해 보니 아침마다 커다란 개를 마주한 듯 긴장했던 사람은 선생님들만이 아니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고 불안해하는 부모님을 안심시키고 선생님들의 방패가 되려 애쓰던 나 역시 길들지 않은 3월이라는 낯선 새 신발을 신고 뒤뚱거리며 걷고 있었다. 누구보다 위로가 필요한 건 어쩌면 나였는지도 모른다.
“너무 다 잘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늘 남들에게만 건네던 말을 오늘은 내게 조용히 들려준다. 가슴으로 울며 하루를 버텨낸 나를 내가 먼저 안아주기로 했다. 다시 마음의 서랍을 연다. 떠나간 선생님들의 뒷모습, 낯선 교실에서 한숨 쉬는 새로운 선생님들, 그리고 누구보다 애써 걷고 있었던 나의 마음까지 글로 하나씩 다독여 본다.
그래야 내일 아침 쓰라린 복숭아뼈에 밴드를 하나 더 붙이고 다시 그 새 신발을 신을 수 있을 테니까.
우리 선생님들이 마음 편히 기댈 수 있는, 흉터마저 단단한 나이테가 된 한 그루 아름드리나무로 서 있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