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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드리 Aug 17. 2023

지렁이랑 약속지키러 가자

너에 작은 눈에 보인 지렁이를 나는 보지 못했을까

아침부터 내 이름을 힘차게 부르는 하나의 목소리에 무슨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되어 맨발로 현관앞에 나왔다. 


"왜 하나야 무슨일이야?. 선생님 여기 있어."


"선생님 아침에 할머니랑 오는데 지렁이를 봤어요. 지렁이가 길에서 죽으려고 해요. 개미들이 지렁이가 싫다는데도 자꾸 와서 지렁이가 울고 있어요. 우리가 구해줘요. 빨리요"


"조금 있으면 친구들이 올텐데. 친구들 오면 구하러 안될까?"


"안돼요. 그럼 개미 때문에 죽으면 어떻게 해요. 내가 지렁이한테 꼭 구하러 온다고 말했단 말이예요. 선생님이 말했잔아요.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고"


"미안해요. 우리 하나 마음을 몰랐네. 선생님이 약속은 지키는거라고 했지. 지렁이랑 약속도 꼭 지켜야지요. 우리 같이 가자. 빨리 다녀오면 될거 같애요."


하나의 손을 잡고 지렁이가 있는 놀이터로 갔다. 지렁이는 흙속에서 나와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있었다. 개미보다는 뜨거운 햇빛과 달궈진 아스팔트 때문에 힘들어보였다. 


"지렁이를 어떻게 구해주면 좋을까?"


"지렁이는 초록이 좋아해요. 초록이 있는 흙에 놔줘요. 선생님 지렁이 잡을 수 있어요?"


내가 지렁이를 들 수 있을지 의심하는 하나를 위해 조금은 무서웠지만 큰 나뭇잎을 가져와 지렁이를 나뭇가지로 조심스럽게 옮겨 초록이 풀밭에 놓아주었다. 지렁이가 움직일때마다 캬하고 소리가 날 것 같았지만 대담한 듯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지렁이가 풀밭에 있자 우리에게 머리를 들어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하나 약속 지켜줬어요. 지렁이가 하나한테 정말 고마워할거야. 우리 이제 교실가서 친구들한테 지렁이 얘기해주자. 하나가 씩씩하게 구해줬다고"


"선생님도 씩씩했어요. 내 약속도 지켜주고 친구들 데리고 우리 지렁이 보러 다시 와요"


하나가 본 지렁이는 내가 출근하는 길이었다. 하나에 눈에는 크게 보였을 지렁이가 나는 보이지 않았다. 순수한 하나의 눈에는 얼마나 많은 것이 보이고 느껴질까. 이 유리 같은 마음을 오늘 나도 느낄 수 있어 하나에게 고마웠다.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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