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되면 나박김치, 총각김치, 파김치, 겉절이를 준비해서 명절을 보내시던 친정엄마였답니다. 이번 추석에는 김치도 음식도 거의 하지 못하셨어요. 엄마는 이제 음식에 자신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나이 들수록 음식이 짜지고 맛이 없어진다고 말에 쨍한 뭉클함이 느껴졌답니다. 평생을 엄마 김치를 먹고살았던 큰딸이 이제 김치를 담가야 할 때가 온 것 같네요. 이제는 제가 김치를 담가 엄마를 챙겨줘야겠어요.
처음 하는 김치가 맛있을 수는 없겠죠. 그래도 저에게는 레시피를 알려줄 여러 선생님이 계시답니다. 유튜브를 보며 꼼꼼히 메모하고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파김치와 우리 집 청소년들이 라면에 먹기 좋아하는 총각김치를 해보기로 했어요. 우리 집 청소년들은 엄마 김치가 맛있을까 하는 의심하는 눈초리를 보냈지만 유일하게 응원해 준 사람은 남편이랍니다. 역시 나이 들면 남편밖에 없다는 말이 맞나 봅니다. 남편이랑 손잡고 시장에서 김치 재료를 사보았어요.
알타리 한 봉지가 15,000원 쪽파 2단에 10,000원에 구매했답니다. 생각보다 저렴해서 깜짝 놀랐어요. 야채가게 아주머니께서 파김치는 눈감고도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셨어요. 김치재료를 사서 집에 오는데 부담감이 많이 들었답니다. 집에 도착하자 마당에 김치 재료를 펼치고 알타리부터 다듬고 씻었어요. 알타리가 너무 싱싱해서 기분까지 좋아졌어요. 소금을 무 쪽에 많이 넣고 절어지기를 기다렸답니다. 마당이 있어서 김치 하기 좋다는 걸 오늘 알았네요.
쪽파는 다듬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요. 이럴 때 노동요가 있어야 될 것 같아서 사랑하는 영웅님의 모래 알갱이를 들으며 흥얼흥얼 쪽파를 다듬고 있었답니다. 제가 불쌍해 보였는지 우리 집 수험생이 마당에 나와 쪽파를 같이 다듬어주며 오랜만에 까르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참 고마웠답니다. 쪽파를 깨끗이 씻어 뿌리 부분에만 액젓을 뿌려 절여두었어요. 이제 양념장 만들어보겠습니다.
파김치 양념장은 배, 양파, 생강 없어서 패스, 새우젓, 매실청을 넣고 믹서기에 갈아서 고춧가루랑 살살 버무렸답니다. 맛있어져라. 제발 맛있어져라 주문을 외우면서요. 파김치 레시피 중에 이영자 파김치 레시피가 제일 따라 하기 쉬웠어요.
총각김치 양념장은 사과, 양파, 밥 3숟가락, 멸치 육수 넣고 갈아주었어요. 마늘, 고춧가루, 매실, 새우젓, 멸치액젓을 넣고 버무렸어요. 매실청은 생각보다 많이 넣었어요. 무에 알싸함을 단맛으로 없애준다고 나박김치 주신 연장반 선생님이 알려주셨어요. 김치 담그면서 알게 된 게 참 많네요.
이렇게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는 김치를 엄마는 우리를 위해 평생을 해주셨구나. 엄마의 남은 시간 동안은 큰딸의 김치와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김치를 담그고 나니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라요. 김치 찍으면서 사진 찍기 힘들었지만 찍은 사진 보며 뿌듯했답니다. 엄마에게 전해줄 김치를 정성껏 담아 카톡으로 사진을 찍어 보내드렸더니 맛있게 생겼다고 칭찬해 주셨어요. 나이 들어도 칭찬을 들으면 참 좋네요. 김치를 하고 나니 주고 싶은 사람이 많아졌어요. 파김치 좋아하는 여동생도 주고 나박김치 주신 연장반 선생님도 드려야겠어요.
'김치야. 맛있게 익어다오. 익은 김치 좋아하는 신랑 반찬으로 싸주고 좋아하는 사람들 나눠주게. 이 가을이 가기 전에 김치 너를 자주 만날 거 같구나. 자주 하면 너와 친해질 거 같아서. 우리 자주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