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의 나이테

에필로그

by 미지
내 태몽은 작은 화분에 담긴 묘목을
누군가 엄마에게 건네주며
큰 나무가 될 테니 잘 키워달라는 꿈이었단다.


20살이 되었을 때, 인생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굉장히 많이 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야 하는 것인가.. ’ 이 질문에 대답을 찾기 위해 삶의 가치관들을 정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어른과 성인은 분명 다르다. 더 이상 미성년자가 아닌 것은 사회적으로 ‘성인’의 범주로 분류되겠지만, 그것이 그 사람을 ‘어른’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사회에 도움이 되고 스스로도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미래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잔잔하지만 단단하게 본인의 심지를 다질 필요가 있었다.

혼자서 백문백답을 해보았다. 나는 어떤 사람들과 있으면 즐거운가? 나는 어떤 공간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그렇게 스스로를 먼저 알아갔다. 그리고 나에게 소중하고 중요한 가치들에 대해 발견했고, 그것들을 지표로 삼아 나름의 기준을 정하여 대학생활을 보냈다.

나름 순탄하게, 특별한 문제없이,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조금씩 나의 가치관에 확신의 살을 붙여가며,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대학 졸업을 하고,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가치관들이 조금씩 깨지고 분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졸업’.

대학이라는 조직에서 벗어나 사회로 나오는 경계선에 서 있는 나에게 갑자기 많은 의문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공중에 떠 있는 수많은 물음표가 나에게 화살처럼 쏟아졌다. 그동안 확신을 가지고 YES! 를 외쳤던 일들에서 no..?라는 마음이 치고 올라왔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 바뀌었고, 주변 환경이 바뀌다 보니 나의 삶은 더 이상 느낌표로 가득하지 않고 물음표로 하나둘씩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남보다 스스로에게서 문제점을 먼저 찾으려는 사람이다. 즉, 자책을 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때론 자기반성을 넘어서 내가 가장 사랑해주어야 할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가치관에 금이 가기 시작하니, 자책을 하는 것조차 생각이 꼬리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이 되어 때론 남들이 느끼기에 ‘너무 과하게 생각하는데?’ 싶은 확대해석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점점 더 실감이 났다. 이제 난 더 이상 ‘어려서’, ‘학생이라서’, ‘처음이라 몰랐어요’와 같은 변명들이 나를 대변해주지 못한다. 학교라는 집단을 떠나 소속이 없기에 그 어떠한 것도 나를 보호해주지 못한다.

그래서 더욱더 나의 가치관이 확실하게 서있어야 하며, 혼자서의 결정에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아무래도 앞으로의 주된 내용은 이제 20대 중반이 된 내가 남은 20대를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가치관 정립을 향해 고군분투해 나가는 이야기가 될 예정이다.

분명 힘들 것이고, 괴로워할 수도 있겠지만, 묘목이 큰 나무로 성장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묵묵히 바라봐주길 바란다.


그리고 당신도 현재 이 과정에 있다면 함께 성장해 나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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