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방법을 내년으로 미루기로 함

25주년의 가수와 인생 25년 차인 나

by 미지

올해는 을사년, 푸른 뱀의 해였다. 그리고 나의 해였다. 띠가 돌아왔다는 건 꽤나 상징적인 일이라, 연초에는 무언가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실제로 많은 일이 있긴 했다.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고, 다시 학생이 되겠다고 대학원에 들어왔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낯선 공부를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치열하게, 그리고 꽤나 '잘' 살았다 싶은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은 늘 개운치 않았다.

크리스마스에는 성시경 콘서트에 다녀왔다. 3년 전쯤 싸이 흠뻑쇼에서 게스트로 나왔을 때 처음 라이브로 듣고, 귀가 녹는 경험을 해서 인생에 한 번쯤은 꼭 성시경 콘서트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가게 될 줄은 몰랐다.


우연히 올해는 데뷔 25주년 기념 콘서트라고 했다. 무대 위 전광판에 '25th'라는 글자가 뜨는데 기분이 묘했다. 내가 태어나서 숨 쉬어온 시간이 딱 25년인데, 저 사람은 그 긴 시간 동안 노래를 했구나. 내 인생 전체와 맞먹는 시간 동안 한 분야의 정점을 지켰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 위의 그는 이미 정점에 있는 사람인데도, 여전히 치열해 보였다. 안주하지 않고 땀 흘리는 모습을 보며 묘한 부채감이 들었다. 아니, 부끄러웠다는 표현이 맞겠다.


저렇게 성공한 사람도 열심히 사는데,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지?


솔직히 고백하자면, 최근의 나는 성실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겠다고 퇴사까지 감행해서 온 대학원인데, 막상 들어와서는 지독한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댔다. '열심히' 살지 않았다. 내 눈앞에 놓인 실험이나 과제는 뒷전으로 미뤄두고, 침대에 누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 길이 맞나?" 같은 뜬구름 잡는 고민만 끌어안고 시간을 죽였다.


내가 선택해서 온 길인데 행복하지 않았다. 분명 내가 원하던 자리에 왔는데, 왜 나는 여전히 미래를 불안해하며 오늘을 저당 잡히고 있을까.

그 엉킨 실타래가 오늘, 의외의 장소에서 풀렸다.


오랜만에 SK하이닉스 연수원 동기들을 만났다. 남들이 보기엔 대단한 커리어를 가진, 소위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만나면 뭔가 다른 세상 이야기를 들을 줄 알았다. 엄청난 비전이나 거창한 목표 같은 것들.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들의 삶도 내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매일 출근-퇴근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고, 오늘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사는 게 뭘까' 하는 뻔한 번뇌를 안고 살아간다.


최근 유튜브에서 본 성시경의 <만날 텐데> 대화 내용이 떠올랐다. 그 역시 무대 아래서는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한다고 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위안이 됐다. 다들 그러고 사는구나. 대단해 보이는 사람들도 결국은 하루하루를 견디며 사는구나. 나만 유난 떨며 힘든 게 아니라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됐다.


아쉬운 만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9호선에서, 엔비디아 창업자 젠슨 황의 인터뷰 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찾는 것’보다
’ 지금하고 있는 일에 사랑을 느끼는 법‘을
배우는 게 더 쉽다고 생각해요.


내가 대학원에 와서도 행복하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는 늘 '지금'을 '미래'를 위한 발판으로만 여겼다. 지금 내가 하는 실험, 지금 내가 보는 논문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억지로 견뎌야 하는 과정으로만 생각했다. 현재를 미래의 볼모로 잡고 있으니, 오늘이 즐거울 리가 없었다.


결국 내가 원하는 그 '미래'에 닿으려면, 지금 이 시간을 견디는 게 아니라 사랑해야 한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투정은 그만 부리고, 이 시간을 의미 있게 채우려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일부터 좋아해 보기로.

물론, 하기 싫은 과제나 잘 안 풀리는 연구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그 방법은 아직 모른다. 하지만 해결 방법은 내년의 나에게 맡겨두기로 한다. 적어도 내가 왜 불안했고, 왜 행복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알아냈으니까.


이 정도면 뱀의 해를 보내주는 꽤 괜찮은 마침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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