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라는 우연
사무직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통 바쁜 시즌이나, 맡은 프로젝트가 끝나면 각자 장기 휴가를 다녀오며 쉬고 오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라고 한다.(당연히 모든 회사가 그런 건 아니고 내 지인들의 회사 한정) 병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병원엔 시즌 따윈 없다. 프로젝트와 프로젝트 간의 쉴 틈 따위도 없다. 특히나 종합병원 규모의 병원들은 정말 말 그대로 365일 24시간 쉴 새 없이 굴러가는 탓에 모두가 쉴 수 있는 그런 휴가철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휴가라는 명목하에 그날의 일을 하루 이틀쯤 미루 것 역시 불가능하다. 환자가 내 휴가에 맞춰 검사 결과를 기다려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검사실의 임상병리사 한 명이 휴가를 가려면 반드시 또 다른 임상병리사가 그 일을 대신해줘야만 한다.
업무 환경이 이렇다 보니 직장 동료가 휴가를 길게 다녀와도 되냐고 물으면 반사적으로 "당연하지!"라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속으론 '그런데 길게라면 얼마나 길게..?'라는 질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모든 병원을 전부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거쳐온 병원들은 한결같이 휴가에 있어서 상당히 쪼잔한 분위기였다. 많아봐야 이삼일의 휴가만 낼 수 있었고, 그마저도 눈총을 받았다. 휴가를 낼 때마다 서로 눈치를 주면서 점점 더 모두가 휴가를 못 가는 분위기가 고착화됐다. 그 병원들을 다닐 적엔, 앞으론 명절 때가 아니면 영원히 4-5일을 연달아 쉬는 날은 없겠구나 싶어(심지어 명절에도 당직 근무를 해야 해서 그마저도 다 쉬지 못했다.) 대학생 때 유럽여행 한 번 다녀오지 않은걸 땅을 치고 후회했다. 다시 한번 임상병리사가 싫어지던 대목이다.
다행히도 지금의 직장은 그간 거쳐온 곳들과는 사뭇 다르다. 개원 병원에 다 같이 개원 멤버로 입사하다 보니 우리가 직접 업무 분위기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어딜 가나 답도 없는 꼰대는 꼭 1명씩 있기 마련이지만, 적어도 이곳은 내 또래 직원들이 훨씬 많아 꼰대의 의견을 쪽수로 몰아낼 수(?) 있었다. 그간 다들 타 병원에서 휴가의 설움을 꽤나 겪었던지라 휴가 문제에서 만큼은 동료들의 마음을 한 데 모으기가 쉬웠다. 우리는 암암리에 '휴가 서로서로 잘 보내주기' 캠페인을 벌였다. 아무리 곤란한 날이더라도 휴가는 개인의 고유한 권한인 만큼 무리해서라도 보내주었다. 초반엔 꼰대 상사 몇을 주축으로 장기 휴가에 눈치 주는 분위기가 끈질기게 남았지만, 다행히도 병원 자체에서 직접 휴가를 권장하다 보니 이내 우리의 바람대로 분위기는 바뀌었다. 나도 이제 유럽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직장에 다니게 된 것이다!
서론이 꽤나 장황한데, 오늘 이야기는 내 생에 첫 일주일 휴가로 인도네시아 발리섬을 다녀오면서 시작한다. 월화수목금, 5일의 휴가를 내고 앞뒤 주말 당직 근무는 동료들과 순번을 바꿔 총 9일의 시간을 냈다(그렇다. 휴가만 낸다고 끝이 아니다. 당직 근무는 휴가로 대체가 불가능하기에 동료들에게 부탁해서 바꾸는 수밖엔 없다.). 유럽 타령을 해대서 곧바로 유럽 여행을 갔으려나 싶겠지만 검사실에 찌든 직장인이 오래간만에 떠나려니 생각나는 건 휴양지뿐이었다. 그렇다고 3, 4박이면 다녀올 수 있는 가까운 곳은 가고 싶지 않아 고민 고민하다 결정한 여행지가 발리였다. 적당히 멀고, 적당히 이국적인 곳.
발리에 가겠다고 결정했을 때만 하더라고 나는 요가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발리가 요가 여행으로 유명하단 사실 자체를 다녀와서야 알았다. 동행하는 친구의 요가 클래스 제안에 '여행 가서도 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네..'라며 깜짝 놀랐지만, 당시에 딱히 세워둔 여행 계획도 없었고 그저 항공편과 숙소만 결제해 둔 상태라 친구가 하자는 대로 따랐다. 맛있는 거 왕창 먹을 건데 중간중간 운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라는 마음에. 그렇게 나는 요가의 세계에 입문했다.
요가를 잘 모르던 시절의 나는 요가가 마냥 스트레칭 수준의 쉬운 운동인 줄 알았다(지금은 누가 그런 말을 하면 발작하고 일어나 아니라고 침을 튀기며 말한다.). 게다가 휴양지에서 하는 원데이 클래스는 더더욱 쉽고 간단한 동작만 시키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미리 말했듯이, 발리는 요가의 성지로 유명하다. 전 세계 각지에서 요가 좀 한다는 사람들이 요가 여행을 하러 찾아오는 곳. 아무리 비기너용 클래스라 하더라도 산스크리트어로 된 요가 용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은(심지어 영어도 잘 못하면)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요가의 요자도 모르던 우리는 뭣도 모르고 비기너용 클래스가 아닌 더 윗 단계 클래스를 들어버렸다지.
발리에서 총 두 번의 요가 클래스를 들었는데, 둘 다 정말 고난과 고행의 시간이었다. 발리의 7월 아침 7시는 가디건을 걸쳐도 될 정도로 쌀쌀하다. 별생각 없이 긴 팔 외투를 챙겨 입고 첫 번째 수업에 참여한 나는 끝날 땐 겉옷을 전부 벗어던지고 브라탑만 입고 있었다. 땀이 주룩주룩 흘러 바지의 허리 부분도 축축했다. 클래스 이름에 힐링이 들어가 있었기에 운동 강도가 약하겠거니 방심한 결과, 나와 친구는 둘 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나마스테(산스크리트어 인사말)를 외치게 됐다. 덕분에 밥맛은 훌륭했다. 아침부터 호텔 조식을 몇 접시를 먹었는지 모르겠다.
두 번째 수업은 선셋 요가라 오후 5시에 노을 지는 하늘 아래서 진행됐다. 첫 번째 수업 때 호되게 당한 나는 이번엔 애초에 헐벗고 수업을 들으러 갔다. 이번에도 땀범벅이겠거니 예상한 것과 달리 두 번째는 첫 번째와 결이 달랐다. 그 당시엔 요가 용어를 전혀 몰라 수업 이름이 적혀있어도 뭐가 뭔지 알 길이 없어 대충 예약하고 시키는 대로 따라 했는데, 돌이켜보니 첫 번째 수업은 빈야사 요가였고 두 번째 수업은 하타 요가였던 것 같다. 빈야사는 호흡이 빠르고 근력을 많이 요하는 동작들로 구성되어 있고, 하타는 호흡이 매우 길고 유연성과 근력이 모두 요구되는 동작이 많다. 두 번째 수업은 땀을 뽑아내는 속도감 있는 동작들로 구성된 첫 번째 수업과는 달리 온몸을 찢고 찢는 동작을 한 동작당 5분씩 유지해야 하는 인내심이 필요한 수업이었다. 속으로 1초, 1초 카운트하며 지금쯤 5분이 되었을까 싶어 몸을 한껏 찢은 채 조심스레 선생님을 올려다보면 그녀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아직 2분 더 남았다며 등을 두들겨주고 갔다. 정말 고행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하타 요가로 내전근이 너덜너덜해진 와중에도 머릿속에선 한국에 돌아가 요가를 시작해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가쁜 숨을 입이 아닌 코로 내뱉어야 하는 것도, 수련 중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있으면 찡그리지 말고 웃으라 말하는 선생님과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에게만 집중하라며 다독여주는 말들까지. 짧았던 발리에서의 요가 시간은 여행을 떠나오기 전까지 어지러웠던 내 마음을 전부 다독여 주는 기분이었다. 지금껏 운동을 하면서 이런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던가? 지금까지 내게 있어서 운동이란 그저 다이어트를 위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헬스 pt나 필라테스 수업을 중엔 힘들어 그만둘라치면 할 수 있다며, 왜 포기하냐고 다들 날 몰아치기 급급했다. 그래서인지 운동이 끝나고 나면 '왜 이렇게 나는 못할까', '이게 다 살이 쪄서 그런 거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요기, 요기니(요가 수행자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남성형-요기, 여성형-요기니)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요가엔 잘하고 못하고 없습니다.'라는 말처럼, 요가를 하는 동안은 버둥거리고 헤매고 있더라도 불안하고 초조하지 않았다. 요가는 운동의 "목적"에만 집착하던 나를 운동을 하는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줬다. 요가는 무엇보다도 직업적 고민 속에서 헤매고 있는 나를 다잡아주었다. 그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계속하면서 하루하루 스스로를 갉아먹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 기분은 퇴근 후 집에까지 이어졌고 잠들기 전까지도 쉽사리 떨칠 수 없었다. 물론 요가가 이런 내 상황과 고민을 직접적으로 해결해 주진 않았지만, 적어도 부정적 감정들로부터 나를 구출해 주었다. 요가 시작 전, 후에 하는 짧은 명상으로 잡념을 몰아내고 아사나 수련(요가 자세, 몸으로 하는 수련)을 시작하면 곧바로 현재의 나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 스스로 선택한 고행길로 땀을 뻘뻘 흘리고 신체적 괴로움을 느끼면서도 덕분에 요가 후 개운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리고 운동을 정말x1000000 싫어하던 내가 요가하러 가는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발리 여행으로 우연찮게 요가를 시작했던 나는 어느새 요가 수련 2년 차에 접어들었다. 요가에 흠뻑 빠져버린 이후론 여행지를 선택할 때 요가를 할 수 있는 곳이 필수 조건이 되었다. 말만 들으면 온화한 요기니가 다 된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도 안 되는 동작이 셀 수없이 많고, 그런 동작들을 하려고 버둥거릴 때마다 답답한 마음에 마음속으로 화를 내는 초보 요기니이다. 요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든 걸 해탈한 도인일 거라는 편견을 직접 깨부수는 중이랄까.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요가를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계속 이어지면서 문득 언젠가 요가 강사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취미가 업이 되어서도 계속 좋아할 수 있을지는 자신 없지만, 게다가 이 정도 실력으로 '언젠가'라는 무적의 단어를 들이밀며 요가 강사를 꿈꾸는 것 역시 하찮아 보일지 모르겠지만, 단순히 혼자 요가를 즐기고 배우는 것을 넘어서서 이 좋은 걸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싶은 마음에(지인들에게 아무리 요가 좋다, 좋다 입이 닳도록 말을 해도 아무도 안 넘어와서 슬픈 요요기니..) 희미하게나마 요가 강사라는 꿈을 키워보게 되었다.
구체적인 계획 같은 건 없지만 앞으로 몇 년 동안 더 수련을 지속하면서 겸사겸사 요가 지도자 과정도 수료해 볼 생각이다. 지금은 강사가 된 내 모습이 전~혀 그려지지 않지만 작가가 된 내 모습도 그려지지 않는 건 매한기지이니 뭐.
작가든 요가 강사든 나에게 다른 살길 후보가 생기니 그제야 숨이 시원하게 내쉬어진다. 그간 잘 보이지 않는 미래에 숨이 턱턱 막혀왔는데, 이제는 아직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없지만 그럼에도 숨 쉬기가 편안하다. 나에겐 글쓰기와 요가가 있으니.
믿을 구석이 있다는 건 꽤나 든든하다. 덕분에 오늘 병원 출근길이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은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