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11화
결심공판일을 앞두고 변호사가 접견을 왔다.
" 잘 지내셨어요 ?
" 감옥생활이 편하겠어요 그냥 하루 하루 죽을 용기없어 사는거지요 "
" 그렇지요 갇혀산다는게 얼마나 답답한지 잘 압니다 변호사란 직업이 어느때는 참 힘드네요 의뢰인들의 마음이 느껴지거든요 더구나 779번은 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
" 마음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변호사님 "
" 이 사건은 사실 경찰서에 고소장 접수 되었을 때 거기에서 민사로 끝냈어야 하는데 저도 안타깝기만 하네요 "
" 고소인이 너무 친한 사람이었고 제가 사람을 믿은 죄죠 이렇게 끝까지 올 줄 몰랐어요 "
" 그러니까요 고소인 나이가 많지 않던데 지인이라면서 잘 합의를 하지 이렇게 해야 했나 싶어요 "
" 아는 사람이 더 무서운 걸 새삼 느꼈죠 그리고 이 정도로 독한 줄 몰랐어요 "
" 언니분은 결국 합의를 못했어요 고소인이 피해금액에 두배를 요구하는데다 언니분한테도 공증을 서달라고 했나봐요 "
" 네 언니한테 합의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냥 결과가 어찌되든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공탁금도 걸지 말라고 했어요 "
" 네 잘하셨어요 공탁해도 고소인이 찾아가지 않으면 도움도 안되요 "
" 아마 2심도 뒤집히긴 힘들거에요 "
" 예 그냥 받아들일께요 그리고 3심 포기할께요 "
" 어차피 합의가 안되면 대법원 가봐야 마찬가지니까 잘 생각하셨어요 확정된다해도 두달정도니까 그냥 건강하게 잘 견디다 꼬리( 집행유예 ) 안 달고 나가는 게 더 나아요 "
"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까지 하는 걸로 봐서 집행유예 받아봐야 고소인이 다른 걸로 어떻게든 엮을지도 모르고 집행기간 내내 불안하게 사느니 그냥 다 살고 나가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요 "
" 그래요 진짜 안타까운 사건이에요 이 정도는 1심에서 무죄가 정상인데 1심 판사님이 지나친 부분도 사실 있다고 여겨져요 1심 변호사님이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싶네요 "
" 1심 변호사님은 무조건 무죄를 확신했어요 그런데 고소인은 계속 엄벌에 처해달란 탄원서를 넣었고, 제가 고소인에게 갚은 돈을 이자라고 하고 판사님도 그 부분을 아예 인정해주지 않았어요 "
" 그 부분이 문제였어요 경찰서에 고소장 접수되었을때 차용금 변죄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밀고 갔어야 하는데 이자라고 인정한 부분이 실수였던거에요 "
" 재판부는 그 부분을 피고인과 고소인의 이해관계로 본 것이고, 두 사람의 약속으로 판단한 것 같아요 "
" 2심도 같은 결과가 나올 것 같구요 그걸 미필적고의 라고 해요 779번 입장에선 굉장히 억울한건데 이젠 어쩔 수 없으니 마음 잘 추스리고 기결 가더라도 남은 형기가 짧으니까 잘 견디시고 출소하시면 사무실 한번 나오세요 "
" 네 변호사님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소후에 커피마시러 갈께요 "
" 혹시 대법원까지 가도 같을경우 재심은 아예 가능성이 없겠죠 ? "
" 우리나라는 재심을 신청해도 인용될 확률이 겨우 0.3프로입니다. 접수조차 안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재심은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요 억울한 마음 충분히 이해하는데 그냥 다 잊고 남은 인생 더 잘 살아가시는 게 나아요 "
" 네 어디 억울한 사람이 저 뿐이겠어요 그냥 다 살고 나가서 새로운 삶을 살아볼께요 "
" 공소금액 5천만원에 2천을 갚았는데 징역 6월은 사실 납득하기 어렵지만 2천만원이 이자였다고 하니 779 번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억울한거죠 "
" 네 사실 그 부분때문에 1심에서도 안일하게 생각한 부분이 지금 이런결과를 만든거에요 변호사님 말씀대로 경찰서에서 연락왔을때 심각하게 받아들였어야 했어요 그 부분이 정말 후회스럽습니다. "
" 그래요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게 많으니까요 그리고 고소인이 너무 심한부분도 있고 그만큼 받았으면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해주는 게 통상적인데 안타깝네요 "
" 제가 급한 마음에 빌려쓴게 문제였던거죠 그 친구를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
" 그래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차라리 꼬리 안달고 나가서 편한 마음으로 새출발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시고 건강하게 잘 생활하시기를 바랄께요 "
" 네 변호사님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 그래요 779번은 그냥 운이 없었던거에요 죄인이라기 보다는 판단을 잘못 하신거라 생각해요 남은기간 잘 지내시고 밖에서 봅시다 "
" 네 변호사님 "
변호사 접견을 마치고 교도관을 따라서 방으로 돌아오는 내내 눈에 가득찬 눈물이 흐를까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아도 어느새 주루룩 눈물이 볼을 적셨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교도관도 안타까운지 사무실로 나를 데리고 갔다.
" 779번 울고 싶으면 그냥 편하게 울어도 돼요 잠깐 사무실에 가서 면담합시다 "
" 네 감사합니다 "
교도관도 나의 사건에 대해서 처음부터 의아함을 갖고 있었기때문에 평소에도 잘 해주었고, 가끔 면담을 핑계로 사무실로 불러서 종이컵에 믹스커피도 타주었고 사재 ( 교도소 밖의 물건 ) 책도 빌려주시곤 했었다.
사무실에서 실컷 울고나니 마음이 조금 후련해는 것 같기도 했다.
커피를 마시고 방으로 돌아왔는데, 27번이 짐을 싸야 하는 거 아니냐 했다.
" 779번 짐 정리 해야지 좋은결과가 나오든 나쁜 결과가 나오든 이제 헤어져야 하네 "
" 그러게 언니하고 몇달을 살았네 "
얼굴은 억지 웃음을 지었지만,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지는 것 같았고, 기결수가 되어서 살아야 하는 게 걱정이 되고 잘 견딜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미결수와 기결수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들은게 많아서 사실 걱정이 많기도 했다.
기결수는 진짜 죄수가 된다는 뜻이었다.
내 호적에 전과기록이 남는것이었다.
억울함은 나만의 생각이지 법은 그걸 인정해주지 않았고, 법은 들이대는 잣대에 따라 질량이 달라진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결국 법의 저울은 평등하게 기울지 않는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며칠 후 결국 나는 2심에서도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변호사 말씀처럼 미필적고의에 의한 사기였고, 갚을 능력이 있음에도 갚지 않았고 고소인을 기만했다는 게 판결내용이었다. 갚을 능력은 나의 채무와 상관없이 나의 소득능력만으로 판단을 하는 것이었고, 그 이전 나의 변제의사는 그대로 묵살 되었다.
더구나 2심 재판중에도 고소인은 계속 엄벌에 처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나는 반성문을 제출하고 고소인은 탄원서를 제출했던 것이다.
탄원서가 아니었으면 징역 최소 형량인 4월로 감형돼서 기결로 안가고 바로 출소할 수도 있었는데 고소인은 도대체 무슨 마음인지 나 같으면 돈을 받는쪽을 택할텐데 고소인은 합의도 안해주면서 엄벌에 처해달라는게 납득이 안되었다.
내가 그렇다고 고소인과 돈 문제말고는 무슨 큰 잘못을 한적도 없고, 한때는 그래도 친하다 여겼었는데 사람 마음을 안다는게 너무 어렵다 느껴졌다.
우리나라 법에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고, 방어권이 있는데, 그것조차 내겐 먼 이야기일뿐이었다.
1심에서 법정구속이 아니라 불구속 재판을 진행했다면 어떻게든 합의를 할 수도 있었을텐데 감옥에 갇혀서 지인들을 통한 합의는 애초에 기대하지 말았어야 했다.
재판결과가 확정되고 그날 나는 처음 구치소에 끌려가던 순간처럼 다시 영혼이 나간 상태로 기결사동으로 옴겼고,
기결사동에서 법 찬양 노래를 들으면서
노래도 잔인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 법은 어렵고, 법은 정당하지 않고, 법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
계절은 겨울에서 봄으로 건너가고 있었고, 나는 지옥에서 또 다른 지옥으로 넘어갔다.
나중에 듣게 된 소리에 난 개ㆍ돼지보다 못한 너무나 하찮은 미물에 불과하다는걸
알게되었다.
그 당시 대통령은 벌금도 필요없고, 죄에 경중도 따지지말고, 그냥 다 쳐넣으라는 지시가 있었고, 나를 포함 19만원 절도범까지 다 감빵행 버스에 올라타게 된거라고 했다.
훗날 그 대통령님의 운명을 보면서 인생은 누구도 앞날을 알 수 없는거구나 싶었다.
( 12화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