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10화
재판이 시작되고 일주일에 한 번 반성문 써서 제출하고 나면 딱히 할 일도 없어서 하루가 너무 지루하고 느리게 흘러갔다.
죄가 확정된 사람들 (기결수) 은 출력( 교도소 내에 있는 공장 또는 자격증반 등) 도 나가고 구내식당에서 취사반으로 일도 하고 설비기술도 배워서 교도소 내에 있는 것들을 재소자들이 수리도 한다고 하는데 미결수들은 재판 중이라 일을 시키지 않았다.
순천교도소로 답장을 보내고 일주일정도 지났을까 또 답장이 왔다.
90프로 이상은 거짓이겠지만, 은근히 편지가 기다려졌었다.
웃을 일 없고, 매일 방에 갇혀서 같은 사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지겨웠다.
운동시간에 잠깐 다른 방 사람들과 수다를 떨어봐야 자기 방 식구들 험담하는 게 전부였고 새로 신입이 안 들어오면 그나마도 매일 듣는 이야기는 거기서 거기였으니
편지는 아주 다른 흥미로운 것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날 운동시간 미결사동에 신입 때문에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시작되었다.
" 어제 2번 방에 새로 신입이 왔는데,
그 여자는 겨우 19만 원 훔친 걸로 법정구속 된 거래 "
" 뭐 19만 원 장발장이야 ? "
" 듣기로는 4만 원짜리도 있었고, 소액절도로 수없이 벌금내고 집행유예 받고 그러다가 이번엔 판사가 아예 들어가서 살아보라고 했다네 "
" 얼마나 받고 왔다는데 "
" 4개월 받았대 "
" 이왕 들어올 거면 많이나 훔치지 무슨 19만 원이야 그 사람 억울하겠다 "
" 저기 저 여자야 키 작고 통통하고 얼굴 넙데데한 저 여자 "
" 도둑질하게 생기지는 않았는데 며칠만 식당에서 일해도 19만 원 벌겠다 "
" 그러게 말이야 내 말이 "
교도소는 하는 일 없으니 새로운 소식만 생기면 이상하게 금방 그 소식들이 퍼져나갔다.
더구나 19만 원 훔치고 들어왔다는 여자는 교도소 생활을 평생 한 사람보다 더 느긋하게 깔깔깔 웃으면서 이 사람 저 사람하고 돌아다니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나는 그게 너무 신기할 뿐이었다.
" 사는 게 얼마나 힘들면 겨우 몇만 원을 훔치겠어 차라리 저 여자는 여기 사는 게 나을지도 몰라 밥 주고 재워주잖아 일 안 해도 되고 "
" 그럴지도 그래도 뭔가 씁쓸하네 "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교도소는 정말 별의별 죄를 짓고 들어온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순천교도소에서는 꾸준히 편지가 왔는데 여자나 남자나 하루 종일 싸우는 건 다 같았다.
남자 재소자들이 조금 더 과격하고 무섭게 싸운다는 게 다르고 조폭들 이야기는 흥미롭기도 했다.
심심풀이로 편지를 주고받고 있던 건데, 운동 시간에 다른 방 사람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조언을 해주었다.
그 여자도 절도 전과가 있는 재범 재소자라서 교도소에 대해 이것저것 아는 걸 말해주곤 했었다.
" 779번 남자교도소랑 펜팔 한다면서 ? "
" 응 그냥 시간 때우는 거야 "
" 적당히 하다가 끝내 그렇게 편지하다가 출소 후에 영치금도 넣어주고 그러니까 그거 노리고 편지 보내는 사람들 많아 "
" 에이 내가 바보도 아니고 출소하고 나서 뭣하러 연락을 해 걱정 고마워 "
" 2심 판결날도 다가오고 마음도 뒤숭숭하고 그러니까 잠깐이라도 다른 생각 해보려고 편지를 쓴 것이지 다른 생각은 없었어 앞으로는 하지 않을게 "
교도소라는 특수한 상황에도 한 두 명쯤 진짜 인성이 바르고 속이 깊은 사람도 있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이곳에도 사람이 있고, 사람들이 사는 세상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조언대로 편지는 더 이상 보내지 않았다.
혹시 또 보내올까 봐
무죄받아서 나간다고 마지막 편지를 정중히 써서 보냈다.
2심 결심공판일이 다가올수록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계절은 분명 봄을 향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내 마음은 결코 녹지 않을 것 같은 얼음이 되어갔다.
교도소에서는 그나마 하루에 몇 번 틀어주던 보일러도 끊긴 상태라서 담요를 겹으로 깔고 앉아있어도 냉기가 올라왔고 밖엔 햇살이 포근해도 그 햇살이 감방 안을 비추어주진 않았다.
한겨울 보다 봄이 더 춥다는 생각을 했다.
" 779번 결심공판일 다가오지 ? "
" 응 언니 그러네 "
" 잘 될 거야 네가 유죄면 대한민국에 감방 안 올 사람 없어 "
" 들어왔네 그것도 6개월씩이나 받았고 "
" 야 1심 판사새끼가 미친놈인거지 "
" 아냐 언니 2심 판사도 만만치 않다고 들었어 "
" 마음 편하게 생각해 어차피 2심에서 똑같은 결과가 나와봤자 너는 두 달도 채 안 남았잖아 "
나가라는 것인지 살라는 건인지 27번뿐만 아니라 미결사동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말을 했다.
겨우 두 달 살다 간다고 쉽게 말하는데 그 두 달을 지옥 같은 곳에서 더 살아야 하는데, 그런 마음을 헤아리긴 하는 건지 늘 의문이었다.
진심 같지만 진심 같지 않은 대화는 감방의 상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말해 남이 잘 되면 겉으론 축하하고 속으론 배 아파하는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 법은 어렵지 않아요 ~~
법은 불편하지도 않아요 ~~
법은 우릴 지켜주어요 ~~ ]
감방의 하루를 깨우고, 또 하루를 마무리하는 법 찬양 노래가 흘러나올 때쯤 살짝 포근한 봄바람이 창살을 넘어왔다고 느끼면서 채도가 조금 낮아진 형광등 불빛을 보면서 이제 정말 결과가 어떻게 나 온던지 27번과 헤어진다는 생각에 시원섭섭하단 마음이었다.
교도소의 시곗바들도 같은 방향으로 도는데 마음은 반대방향으로 돌고 있었고, 두 달을 더 살게 되어도 바로 출소를 하더라도 이젠 슬슬 밖에 나가면 겪어야 할 또 다른 걱정거리들이 마음을 짓눌러오기 시작했다.
직장은 퇴사를 해야 할 것이고, 그러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부터 이쯤이면 내가 교도소에 와 있다는 걸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았을 테고, 위로가 되었든 손가락질이 되었든 그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건 내 몫이었다.
운동시간에 얼핏 본 작은 풀 한 포기가 문득 생각나고, 나 자신은 지금 그 풀 한 포기보다 보잘것없는 사람이 되어있다는 것이 서글프고, 한 순간에 잘못한 판단은 삶을 이렇게 맨 밑바닥으로 떨어트려버리고 다시는 돌이키지도 못하고 평생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쇠창살에 어렴풋이 비치는 겨울달빛이 서걱서걱 심장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파왔다.
( 11화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