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12화
기결사동에 도착해서 간단히 짐 검사를 받고 배정받은 방은 3.4동 7호실이었다.
기결방을 처음 보았을 때 느낀 건 미결수 방에 비해 크다는 것과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복도도 더 넓어 보이고, 교도관도 꽤 많았다.
재소자들이 사는 곳이라 그런지 미결사동보다는 무언가 엄숙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내가 들어간 방엔 나 말고도 8명이나 있었으니 나까지 9명이 같은 방에서 24시간 갇힌 생활을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니 문 입구에서부터 숨이 콱 막혀왔다.
저들은 다 무슨 죄를 짓고 왔을까
젊은 여자 늙은 여자 교수님처럼 생긴 여자
나이도 인상도 느낌도 각각 다른 여자들이 내가 문턱을 넘는 순간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저 여자들은 또 내가 궁금하겠지 싶었다.
학교 다닐 때 전학생이 오면 반 친구들이 선생님 옆에 서 있는 아이에게 초롱초롱 눈을 반짝이는 풍경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교도관이 간단하게 주의를 주었고 쭈뼛쭈뼛 방안에 발을 들이면서 이곳이 이제 나의 또 다른 굴레가 되겠구나 하는 심정이었다.
" 다들 싸우지 말고, 큰소리 내지 말고, 잘 지냅시다. "
기결사동은 교도관 말투부터 긴장감을 몰고 왔다.
사실 미결사동은 교도관들하고 운동시간에 농담도 하고 재판이야기도 나누고 교도관들 진급시험 준비로 책을 읽고 있으면 진급 꼭 하시라고 응원도 보내고 교도관들도 재판결과가 좋게 나오면 좋겠다는 격려도 해주기도 했다.
이런저런 잡생각에 빠져있을 때
" 이쪽에 갖고 온 물건들 정리하고 이불은 이쪽으로 갖고 오세요 " 한다.
방장은 아닌 것 같은 어리바리 하게 생긴 여자가 안내를 해준다.
짐을 풀어서 정리를 하는데 이번엔 머리가 희끗희끗한 여자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오더니 귀에 대고 속닥인다.
" 얼마 받았어 ? 사기 ?" "
빤히 그 여자를 쳐다보다가 고개만 끄덕였다.
내 얼굴에 사기꾼이라고 쓰여 있는 건지 교도소엔 사기가 제일 많아서 대충 넘겨짚는 건지 가는 곳마다 사기 사기 하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왠지 모르게 짜증이 확 밀려왔다.
" 인상은 도덕선생님 같은데 어쩌다가 이런델 왔을까 ? "
순간 웃음이 났지만, 처음부터 쉽게 보일 필요가 없단 생각에 이번에도 그냥 그 여자를 무시해 버렸다.
두 달만 잘 버티다 가자 그래 두 달 감방의 시곗바늘도 째깍째깍 돌아가니까
잘 견디다 가자 생각하는데 이번엔 또 나이를 묻는다. 청문회 하나 ? 호구조사하나 ?
또 화가 올라왔지만 눌러 참았다.
" 사기 6월 받았고, 57일 남았어요 나이는 51살입니다. "
50살에 들어왔는데 감방에서 설날을 보냈으니 51살이 되어있었다.
재소자는 죽은 사람이라 투표권도 없다는데 나이는 먹었다
어차피 다 알게 될 거 확 까발리고 편하게 살다 가자 싶어서 재빨리 말해버렸다.
" 그럼 저기 희자하고 갑이네 갑장이네
야 희자야 너 51이랬지 여기도 51이란다 친구 왔네 친구 "
" 어 그래 51살이라고 친구야 잘 지내보자 "
참내 감빵동기에 빵친구라 그래 뭐 사는 거 뭐 있나 싶어 나도 바로 반말로 응수했다. 얕잡아 보여야 나만 바보 되는 곳이니까.
" 그래 잘 지내자 "
생각보다 암울하지도 않았고 어둡지도 않은 기결방이 첫 느낌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 다들 인사나 나누자고 "
머리가 희끗희끗한 여자는 뭐가 신났는지 나를 가운데로 오라고 하더니 이 사람 저 사람 인사를 시킨다.
무슨 회사에 신입사원이 들어온 듯 그 여자는 신이 났다.
사람만 좋고 진급 못한 만년과장님이 부서 사람들한테 신입사원 소개를 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 저기는 우리 방장 명자 나이도 몰라 죄명도 몰라 고향도 몰라인데 사람은 착해.
여기는 아까 말한 희자 고향은 갱상도 죄명은 사기 이제 20일 정도 살면 출소야.
저기 방장옆에 봉자는 꼴에 폭행으로 왔다는데 어떻게 주먹질을 했길래 2년 받았는지 맞고 들어온 건 아닌가 모르겠어 "
유난히 봉자를 소개할 때 무시하는 어투가 신경쓰였다.
" 그리고 그 다음 어 얘 어디갔어 ? 야 뽕쟁이 어딨어 야 미자야 일루 와 봐 새로 왔다 우리 방에 "
미자라는 여자는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씨익 웃었고 희끗희끗한 여자한테 푹 안기면서
" 이모 오늘 신났네 기분 좋은가 봐
어 언니네 안녕. 난 미자야 뽕 처먹다 잡혀왔어 언니 착하게 생겼다 아 난 33살 삼삼이야 "
진짜 웃음이 나왔다.
삼삼하게 맛이 간 여자 같아서 참을 수 없을 만큼 미자라는 여자의 표정이 정말 웃겼다.
27번도 뽕으로 온건데 저 미자라는 여자와는 아주 다른 뽕이구나 싶게 자신을 뽕쟁이라고 말하는 게 재미있었다.
" 미자 넌 조용히 해봐 미자는 아직도 뽕끼가 안 빠져서 헤롱헤롱 메롱메롱이니까 이해하라구 "
난 진짜 웃음이 나왔고 피식 웃어버렸다.
진짜 뽕끼가 안 빠진 건지 미자라는 여자는 뭔가 나사 빠진 여자 같긴 했다.
얼굴은 굉장히 예뻤고 어딘가 귀티도 흘렀는데 어쩌다 마약을 했을까 싶었다.
" 그리고 저기 구석에 쟤는 현자 쟈도 사기로 들어왔는데 한 달쯤 남았고 나이는 47살이야
저기 저 사람은 60살 나 다음으로 나이가 많고 사기로 왔대 이름은 영자고
음 그다음 누가 남았지 아 선자 안 했지 선자는 횡령 잘 나가던 은행직원에서 밑바닥 깜빵으로 이사 온 왔는데 5년이나 받았대 해처먹기도 엄청 해처먹었어
선자야 너 몇백억이라고 했지 ? "
" 아 이모 진짜 그러지마 나도 피해자야 나 혼자 무슨 500억을 해먹었겠어 그냥 총대 맸다고 몇번을 말해 "
" 야 년아 그래서 집도 받았고, 느그 신랑이랑 애들 잘 먹고 산다며 "
" 언니 안녕하세요 잘 지내봐요 "
선자라는 여자는 인상 좋은 얼굴로 언니 하는데 왠지 낯설지 않았고, 이 방에서 그나마 대화상대가 될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 그리고 다음은 나 경자 이제 새해니까 난 67살이 되셨고, 나는 사기에 횡령으로 4년 6개월 받았어 아직 2년 넘게 더 살아야 돼 잘 지내보자구 " 한다.
" 그럼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 779번은 미결사동에서 왔으니까 목욕날은 알 것이고, 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
" 여기도 책 빌려주나요 "
나는 사실 그게 제일 궁금해서 책 대여날이 있는지 물었다.
" 있긴 한데 여긴 아무도 책 안 빌려보는데
밖에 누가 접견 오는 사람 있으면 책 영치품으로 넣어달라고 해 감빵 책이래 봐야 다 3류 소설에 읽을만한 거 별로 없을 걸 "
" 책을 영치품으로 받을 수 있어요 ? "
" 그럼 있지 왜 없어 죄인도 책은 읽어야지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야 "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야 라는 말이 가슴에 박혀드는 느낌에 명치끝이 묵직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좋은 건 책을 밖에서 넣어준다는 새로운 사실이고 또 방 사람들이 크게 나쁘거나 모나지 않아 보여서 겁나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고, 이 정도면 두 달도 금방 지나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결사동은 어떻게든 나가려 하고,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산다면, 기결은 절망을 안고 어떻게든 하루하루 버티면서 시간보내기를 하는 것 같았다.
더구나 기결 사람들 표정이 의외로 굉장히 편안해 보인다는 것이었는데, 진짜 이곳도 어쩌면 또 하나의 사회구성이구나 싶었다.
이런 분위기면 그깟 두 달 버틸만 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그건 잠시의 휴식같은 것이었지
감옥은 감옥이었다.
13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