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14화
목욕하는 날은 사동별로 목욕시간이 다르고, 목욕을 끝내고 오는 재소자들과 목욕을 하러 가는 재소자들이 계단을 오르고 내리고 한다.
그러다 보면 같은 방에 있었던 사람들은 잠깐이라도 안부를 묻고 잘 지내느냐 잘 지내라 간단히 인사도 나눈다.
" 말하지 않습니다. 말 섞지 않습니다 "
그때 교도관들은 굉장히 예민하다.
같은 방에 있다가 전방을 가는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싸워서 이동을 시키기도 하고 너무 친해도 이동을 시킨다고 했다.
그때 내 앞에서 계단을 내려가던 영자언니를 어떤 젊은 여자가 툭 치고 지나갔는데 얼핏 봐도 스므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아주 어린 여자였는데 남자처럼 짧은 스포츠머리에 키도 꽤 큰 편이고 걸음걸이도 꼭 남자 같이 보였다.
영자언니는 순간 굉장히 당황한 얼굴로 그 아이를 쳐다보는데 눈가가 촉촉해졌다고 느껴진 건 착각이었나 싶었다.
탈의를 하고 목욕탕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마약쟁이 미자가 내 옆자리에 앉는다.
" 언니 언니 아까 봤지 ? 그 남자 같은 여자애 있잖아 걔랑 영자언니 봤지 ? "
" 응 그 애 너무 남자 같고 무섭더라 영자언니를 툭 치고 가는데 영자언니가 살짝 글썽이는 것 같았어 둘이 아는 사이인가 봐 "
" 맞아 언니 나도 들은 얘긴데 영자언니 언니보다 조금 먼저 우리 방으로 전방온거거든 그런데 그전 방에서 아까 그 여자애랑 애인이었대 "
" 무슨 그 애는 스무 살도 안 돼 보이더라 영자 언니는 나이가 60살이라면서 무슨 애인이야 ? "
" 진짜래 영자언니는 그 방에서 방장이었고 그 애는 소년원에 있다가 성인이 되면서 여자교도소로 온 거라는데 영자언니가 딸처럼 챙겨주고 굉장히 잘해줬는데 그 애는 영자언니를 여자로 생각했대 그런데 웃긴 건 영자언니도 그 애를 좋아했대 "
" 어떻게 그래 그냥 소문이겠지 괜히 다른 사람 이야기 막 하고 그러지 말자 "
" 언니 왜 아침저녁으로 영자언니가 방장언니랑 다투는지 모르지 ? "
" 영자언니도 방장출신이라 방장언니를 누르고 우리 방 방장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영자언니 조심해 좀 이상한 사람이니까 "
미자랑 서로 등을 밀어주면서 영자라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데 왠지 모르게 영자언니가 나를 보던 눈빛이 이상했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쳐왔다.
나도 커트머리에 약간 보이시한 부분이 있다 보니 어쩌면 나를 보면서 아까 그 아이를 떠올린 게 아닐까 살짝 기분이 이상해졌다.
목욕을 마치고 다시 방에 돌아와서도 미자가 했던 말들이 신경 쓰이고 뭔가 개운하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더구나 내 바로 옆에서 영자언니가 잠을 잔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자꾸 영자언니에게 시선이 갔다.
물품구매 신청날이라 사소들이 창틀에 물품구매 신청서를 올려놓는 사소 얼굴을 보는 순간 난 반가움과 의아함에 창문으로 가서 사소를 불렀다.
그 사소는 미결사동에서 처음 같은 방을 썼던 770번이었고 기결사동으로 갈 때 나와 이불을 바꿔달라고 했던 여자였다.
" 770번 나야 여기 있는 거야 ? 사소가 되었네 "
" 아 언니였구나 언니 나간 거 아니었어 ? 왜 여기 있어 ? "
" 웅 그렇게 되었어 2심도 똑같이 6월 받았어 합의도 못했고 공탁도 안 걸었거든
여기서 만나니까 반갑네 "
" 언니 나 바빠서 일해야 되니까 다음에 또 얘기하자 잘 지내고 "
770번이 사소라니까 조금은 기대감도 있었다 가령 괜찮은 반찬을 더 준다던가 국에 고기라도 더 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기대는 실망을 데리고 오는데 감옥에서도 나는 바보처럼 사람을 믿고 있었던 거다.
" 언니 저 사소 아는 사람이야 ? "
미자가 다가와서 묻는다.
" 응 미결사동에서 처음에 같은 방에 있었어 기결올 때 내가 이불도 바꿔줬거든 좀 신경 써주겠지 "
" 언니 기대하지 마 여긴 감방이야 그리고 저 여자 얼마나 차갑고 냉정한데 빨래 탈수하는 날도 많이 내놓으면 막 지랄하고 그래 "
" 설마 미결사동에선 엄청 얌전하고 착했어 나한테도 잘해주고 이것저것 챙겨주고 그랬는데 "
" 언니 교도소에서는 사람이 다 변해 성격도 변하고 생각도 변하고 대부분 다 이상해져 가니까 언니도 괜히 사람 믿고 기대하고 그런 거 하지 않는 게 좋아 "
" 그래 마음 써줘서 고마워 조심할게 "
교도소는 사회에서 어떤 지위에 있었던지 얼마나 잘 살았는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영치금 많은 사람이 힘 있는 사람이 되고 접견 많이 오는 사람이 우월한 사람이 되는 곳이었다.
다들 물품구매 신청서를 쓰고 있는데 봉자만 신청서를 쓰지 않고 있었고 경자언니가 봉자를 불렀다.
" 봉자야 이번에 내가 너 팬티 사줄게 언니 설거지날 하고 화장실 청소하는 날 네가 해줄래 ? "
" 네 이모 고마워요 이모 당번날 내가 해줄게요 "
그때 또 현자가 봉자를 부른다
" 봉자야 언니가 너 주려고 빵 하고 땅콩하고 우유 주문해 줄게 나 대신 설거지랑 청소해주라 "
" 오케이 현자언니 고마워 언니는 나갈 날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언니 당번날 내가 다 해줄게 편하게 있다가 가 "
가만 듣고 있다 보니 봉자는 영치금이 없어서 물품 구매를 못하는 것이고 방 식구들이 물건을 사주고 일을 시키는 것 같았다.
봉자는 그때 내 눈치를 흘끔 보았는데 난 그냥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기결에 온 지도 얼마 안 되니까 지금은 나서지 않는게 좋겠다 생각하면서 조만간 상황 파악이 되면 저 봉자라는 여자를 챙겨주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같은 죄수끼리 감옥에서도 상하가 존재한다는게 왠지 짜증이 났다.
일단 난 신입이니 다 같이 먹을 간식거리만 주문했다.
그렇게 그날 영자언니의 이상한 연애이야기에 싱숭생숭해지고 770번이 차갑고 냉정한 여자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에 놀라고 방장이 무슨 벼슬도 아닌데 방장이 하고 싶어서 아침저녁으로 으르렁 거리는 게 이해가 되지 않고 봉자는 영치금이 없어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기결에서의 하루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밤 또 영자언니와 방장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교도소는 싸움 없이는 하루가 지나가지 않는 건가 싶을 지경이었다.
감옥 말 그대로 죄인을 가두어 두는 곳 그 감옥은 사람의 마음도 가두어 두는 곳이다.
그날 밤 인터넷 편지를 날마다 보내오는 오라버니에게 편지를 썼다.
기결사동으로 왔고, 지낼만하다고 이제 두 달 동안 책이나 실컷 읽으면서 앞으로의 삶을 고민해야겠다고 썼다.
다음날 인터넷 편지가 왔다.
< 오라버니는 요즘 미칠 지경이라오 겨우내 감춰놓았던 허연 살들이 이 짝 저 짝 시도 때도 없이 돌아댕기니 내 맴이 싱숭생숭하여 선글라스를 하나 장만했다오
봄은 언제나 남정네에겐 고문의 계절이라오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 여기시고 무탈히 있다가 나오시면 오라방이 거나하게 한잔 사겠소이다.
그나저나 저 허연 다리들은 왜 자꾸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는지 아주 고단하다오 내일 또 쓰겠소 >
웃음을 담은 편지가 아침마다 전해지는 밖의 봄은 육십을 바라보는 오라버니 마음을 뒤흔들고 있구나 싶어 나 또한 싱숭생숭했다.
하룻밤 사이 세탁실 너머 야산에는 아카시아꽃이 하얗게 피어나고 있었다.
내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 15화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