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창살에 달이 뜨면

15화

by 서윤

15화


방장 명자.

방장 명자라는 여자는 서울의 대형교회 회계담당 전도사였는데 미혼이었고 나이는 정확히 모르지만 50대 후반정도로 보였다. 죄명도 추측만 할 뿐 정확히 알 수가 없었는데, 방 식구들 이야기를 종합하면 교회 돈을 수십억 횡령해서 5년 이상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조용하고 침착한 편인데 또 그 부분이 교도소와 어울리지 않았고 답답한 유형이었다. 책을 욕심내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잡지책이나 신문에 맘에 드는 그림이나 글이 있으면 그걸 찢어서 모으는 취미가 있었는데 그 양이 많다 보니 사물함을 넘어서 문 입구에도 잔뜩 쌓아놓고 들키지 않을 만한 공간엔 그 여자의 종이들이 군데군데 쌓여있었다.


검열 때마다 빼앗긴 적도 많다는데 여전히 종이에 집착을 했다.

그림도 굉장히 잘 그려서 A4 용지를 주면 아기자기 예쁜 그림으로 세상에 한 장밖에 없는 편지지가 탄생하기도 해서 마약쟁이 미자는 명자에게 그림 부탁을 자주 했다.

미자는 남자친구도 마약쟁이 같았고, 남자친구에게 편지가 올 때 꼭 편지지에 귀여운 캐릭터 스티커가 붙여져서 왔다.

그 보답으로 예쁜 그림이 그려진 종이에 답장을 해 준다고 했다.


그날 아침에도 변함없이 영자언니의 일방적인 이불 개기 쇼로 새벽을 열었고 우린 다 지쳐서 방장이랑 싸움을 하든지 말든지 무관심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봐도 영자언니는 방장을 이겨먹고 싶은 마음이 훤히 보였다.

아침 인원점검이 끝나고 밥상을 펴는데

갑자기 영자언니가 히스테리를 부리기 시작했다.


" 방장 오늘 중으로 저 쓰레기 다 치워요 방에서 종이 냄새가 나니까 너무 머리 아프고 종이 먼지 때문에 목 아파 죽겠으니까 "


다들 멍하니 두 사람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가만있는 종이가 걸어 다니는 것도 아닌데 냄새는 조금 나긴 해도 먼지가 날리지는 않았는데 드디어 꼬투리를 잡은 것 같은 의기양양한 표정이 압권이었다.


" 종이를 펄럭인 적도 없는데 무슨 냄새가 나고 먼지가 난다고 그래요 "


" 추워서 환기도 자주 못 시키는데 그 종이에서 먼지가 뿌옇게 올라와요 눈 없어요 안 보여요 ? "


" 나참 이젠 별 걸 다 시비거시네 이불도 영자 씨가 다 한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는데 왜 자꾸 나한테 그러는 거예요 "


" 아니 생각 좀 하고 살아요 그 종이에서 나오는 먼지가 호흡기에 얼마나 나쁜지는 알아요 가뜩이나 먼지가 안 빠지는 방에서 무슨 종이 나부랭이를 그렇게 끼고 사는 건데 "


이젠 막 반말에 무시하는 말들을 쏟아내는 걸 보니 영자언니가 오늘 안에 일을 내겠다 싶어서 우리들은 서로 눈짓으로 말려봐 말려봐 하는데 그 분위기를 깨는 소리가 복도를 걸어왔다.


[ 배식 배~~ 식 아침 배식 준비하세요 ]


배식할 때는 교도관이 따라오는데 지금 멈추지 않으면 큰일이란 생각에 다들 입 꿈을 하고 있을 때


" 그 쓰레기 좀 버리라는 게 무슨 잘못이에요 방도 좁은데 쓰레기를 왜 안 버리고 모아 놓는 건데요 "


헉 이었다.


어느새 우리 방 앞에 도착한 교도관이 창문으로 얼굴을 디밀면서


" 무슨 일입니까 왜 아침부터 시끄러운 겁니까 "


이때가 기회다 싶은 건지 이미 이 장면을 염두에 두고 아침 배식시간에 맞춰서 시비를 걸은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영자는 벌떡 일어나더니 교도관 앞으로 간다.


" 아니 교도관님 환기도 안되는데 우리 방 방장이란 사람이 방에 온갖 쓰레기를 쌓아놓고 버리지 않아서 목도 아프고 두통도 심해서 버리면 좋겠다고 한 거예요 "


" 방장 맞아요 ? 쓰레기 오늘 중으로 밖에 내놓으세요 사소는 배식 끝나면 이 방 쓰레기 수거하세요 "


결국 방장은 한마디 변명도 못했고 애지중지한 종이들이 밖으로 끌려나갔다.

쓸데없는 종이를 모으는 방장도 이해가 안 되고 왜 굳이 종이를 갖고 시비를 거는지 영자언니도 이해가 되지 않은 채로 그날 아침 밥상은 차가움 그 이상이었다.

운동시간에 봉자가 같이 걷자고 내 옆으로 왔다.


" 언니 아침일 어떻게 생각해요 "


" 뭘 어떻게 생각해 둘 다 이상하지 "


" 언니 나는 방장언니랑 이 방에서 제일 오래 있었거든요 우리 방 폭파 당할 때도 우리 둘만 남았거든요 "


" 방 폭파가 뭐야 ? "


" 아 그거요 그러니까 방 폭파는요 싸움이 자주 일어나면 방 식구들을 각각 전방시켜요

또 반대로 너무 잘 지내도 해요 뭐랄까 그냥 이상하다 싶으면 방 사람들을 다른 방으로 전방 보내고 또 다른 사람들이 오는 거예요 "


" 참 교도소는 별 걸 다하네 "


" 그런데 아침일은 왜 물어보는데 난 관심 없거든 그러거나 말거나 "


" 그게 언니 제가 전에 같이 방 쓰던 사람한테 들었는데요 영자언니라는 사람요 전에 있던 방에서도 그런 식으로 방장 내 보내고 자기가 방장 했대요 "


" 무슨 방장이 벼슬도 아니고 귀찮게 왜 그런 걸 못해서 안 달인 건데 하라고 해도 안 하겠다 신경 쓰이기만 하지 "


" 언니는 기간이 짧으니까 금방 나갈 거라 상관없는데요 형량이 긴 사람들은 특사나 가석방을 생각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방장을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것도 봉사점수가 있거든요 "


" 아 그런 게 있어 난 몰랐네 이제 왜 영자언니가 그러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긴 하네 "


" 언니가 봐도 영자언니가 방장자리 노리고 일부러 방장언니 골탕 먹인 거 같죠 "


"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네 참 이상하다 감방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어 "


" 언니는 교도관들도 잘해주는 것 같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싸우고 그런 건 하지 마요 "


" 뭐 싸울 일이 있나 알았어 봉자야 고마워 "


운동시간이 끝나고 방에 와서 속옷하고 수건을 빨기 위해 화장실로 가는데 느닷없이 영자언니가 나를 부른다.


" 순자 씨 잠깐만요 "


" 네 왜요 "


" 순자 씨는 이성적인 사람 같아서 묻는 건데 아침에 내가 너무 했다고 생각해요 ? "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왜 나를 그 사이에 끼우려 하지 의아한 마음에 대답을 해야 하는 건지 무시해야 하는 건지 순간 헷갈리고 무슨 의도가 있다고도 여겨졌다.


" 저는 이성적이지도 않고 온 지도 얼마 안돼서 잘 모르지만 물어보시니 하나만 질문할게요 방장 언니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가요 ? "


" 무슨 맘에 들고 안 들고 문제가 아니라 방장이 솔선수범 해야 하는데 하지 말아야 하는 걸 하니까 그런 거지요 "


" 아 그런 거면 솔직히 제가 느낀 걸 이야기할게요 방장에게 불만이 있으면 둘이 따로 이야기를 나눠도 되고 그게 어려우면 면담신청해서 조용히 해결해도 될 일인데 아침저녁으로 이불 갖고 다투고 사사건건 방장 언니가 하는 건 다 불만인 것 같아 보이는데요 그리고 여기 저보다 훨씬 오래 계신 경자언니도 있고 희자도 있는데 왜 굳이 저한테 물으신 건가요 "


" 다른 뜻은 없고요 그냥 순자 씨는 책도 많이 보는 것 같고 현명해 보였어요 "


" 그렇게 생각한다니 한마디만 더 할게요 방장언니에게 있는 불만은 직접 두 분이 하세요 괜히 싸우고 큰소리내서 교도관들이 우리 방 전체를 주시하는 게 싫고요 또 하나는 제 개인 생각인데 방장이 하고 싶으신 거면 면담해서 방장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어떨까 싶네요 계속 두 분이 냉랭하니까 신경 쓰이고 불편해요 "


" 방장은 하고 싶다고 해서 시켜주는 게 아니에요 "


" 그게 아니면 방장이랑 대화로 하세요 괜히 방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지 말고요

저는 빨래해야 하니까 여기까지 할게요 "


그리고는 화장실에 들어가 버렸는데 괜히 짜증이 나고 왜 날 건드리나 신경이 쓰였다.

처음부터 그다지 마음 가는 유형도 아니었는데 진짜 경계를 해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 와 언니 보기랑 다르더라 언니 멋지던데 "


빨래를 널고 자리에 앉았는데 선자가 내 옆에 앉아서 좀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한다.


" 멋지긴 무슨 짜증 나는데 "


" 아니야 언니 잘했어 거기서 언니가 피했으면 아마도 타깃이 언니가 되었을 거야 "


" 그게 무슨 소리야 "


" 그냥 내 생각 "


" 그 생각을 말해봐 "


" 다른 게 아니고 언니가 오고 나서 미자도 그렇고 봉자도 그렇고 경자언니도 언니한테 자꾸 의논하고 그러니까 영자언니가 질투 비슷한 걸 하는 듯했거든 내가 느낄 때는 그랬다는 거지 뭐 "


이건 또 무슨 터무니없는 이야기인지 머리가 어수선해졌다.

방에 갇혀 사니까 생각도 갇히는 것인가

아니면 매일 같은 사람들에 매일 같은 생활이 지겨운 와중에 내가 새로 왔으니 그냥 친숙을 위한 거리 좁힘이라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몇 군데 편지 보낼 일이 있어서 편지를 쓰고 있는데 경자언니와 미자가 믹스커피에서 커피만 꺼내서 종이에 말고 있었다. 뭐 하는 거지 힐끔 쳐다보니까

경자언니가 손짓을 한다.


" 순자야 일루 와 봐 우리 담배 만드는 거야 "


" 엥 담배요 커피로 무슨 담배요 "


" 궁금하면 와봐 담배랑 비슷하니까 "


공책을 적셔서 조금 마르면 풀칠을 하고 또 말려서 그 안에 커피를 넣고 피우면 담배맛이 난다는데 믿기지도 않았고 감옥에서 할 일이 없으니 별짓을 다하는구나 싶었다.


교도소는 육체만 가두는 게 아니라 정신도 가두는 곳 같고 하루도 조용히 지낼 수 없으니 이런 게 죄지은자의 고통이려나 이 고통을 견디는 게 징역이구나 싶었다.


교도소 창살을 비추는 달빛은 유난히 회색빛이고, 환기를 위해 반뼘 남짓 열린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정수리를 얼려버릴 듯 차가운데 그럼에도 코를 골면서 잠을 자는 사람들의 마음은 새벽 강가를 뒤덮은 뿌연 안갯속 같기만 했다.


밤이 지나면 또 지옥 같은 옥살이를 이어가야 하는 내 마음은 엉킨 실타래 같았다.



( 16화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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