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13화
사회도 감빵도 처음 대면할 때 모습은 정말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방 식구들 소개를 받고 저녁을 먹을 때까지도 그냥 기숙사 생활처럼 조용히 각자 하고 싶은 걸 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웃을 일이 생기면 다 같이 웃으면서 감옥이란 걸 잊을 만큼 아무 일 없이 흘러갔다.
그리고 듣기 싫은 법 찬양노래가 흘러나올 무렵 우리 방은 갑자기 고성이 시작되었다.
" 왜 이불을 그렇게 펴 "
" 그럼 어떻게 하라고 한 사람이 더 왔으니까 좁힌 건데 어쩌라고 "
" 이래나 저래나 일렬로 누울 순 없으니까
두 사람은 아래쪽에 자야 돼 "
" 지금 그렇게 하고 있잖아 그럼 언니가 해 "
방 평수에 비해 인원이 많으니까 담요를 접고 접어도 9명이 일렬로 눕기는 어려운 상황이고 한 명이나 두 명은 사물함 옆쪽 공간에서 자야 하는데 그걸 갖고 큰소리가 났다.
가만 보니 영자라는 여자는 낮엔 말이 없었는데 잘 시간이 되니까 무슨 내무반장이 된 것처럼 진두지휘를 했다.
" 미자야 미자야 넌 무슨 화장실 전세 냈냐 좀 나와 나 급해 "
" 아 씨 나간다 나가 볼일도 못 보게 하네 "
" 야 빨리 나와야 우리도 씻을 거 아냐 "
선자라는 여자는 시끄러운 상황을 다른 것으로 돌리기라도 할 요량인지 애꿎은 미자를 부르고 있었다.
" 그래 미자 너 아까 들어가서 왜 안나와 빨리 나와 빨리 "
이번엔 경자라는 여자까지 미자를 불러댄다. 그러고 보니 방장이라는 명자와 60살이라는 영자는 낮에도 멀찍이 떨어져 있었고 밥 먹을 때도 두 사람은 끝과 끝에 앉았었다는 게 떠올랐고 둘 사이가 좋지 않아 보이긴 했었다.
이불 펴는 걸로 저렇게 큰 소리를 낼 줄은 몰라서 역시 갇혀있다 보면 생각도 틀에 갇히는구나 싶기도 했다. 그깟 이불 대충 펴고 새우잠이든 칼잠이든 자면 되는데 저것도 힘 싸움인가 보다 했다.
그때 화장실에서 뽕쟁이 미자가 나왔다.
" 이모들은 왜 그렇게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야 밤만 되면 서로 으르렁거리니까 똥도 안 나오잖아 "
" 야 미자야 내버려둬 하루이틀도 아니고 희자야 너랑 내가 발냄새 맡으면서 자자 "
방 분위기가 이상해지면 경자언니와 미자가 우스갯소리로 잠잠해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 도대체 대통령인지 뭔지 대책도 없이 다 감방에 처넣으면 어쩌라는 거야
아주 방마다 미어터진다 "
" 진짜 ? 이모 대통령이 다 처넣으라 한 거래 ? "
" 그래 아까 교도관들이 떠드는 거 들었어 여기도 이제 만실인데 자꾸 들어온다고 이젠 이불도 모자란대 "
" 하 대통령인지 뭔지 그럼 감빵을 더 지어놓고 처넣으라고 해 좁아서 옆으로 돌아눕지도 못하는데 "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그 말이 맞든 틀리든 갑자기 대통령한테 분노가 치밀었다.
현실을 알고는 있는 건지 의문이 남았다.
그때 영자라는 여자가 나를 불렀다.
" 거기 779번 아니 순자씨 원래 신입이 화장실 앞에 자는 건데 나는 가운데 못 자니까 그냥 내 옆에서 자요 "
" 네 알았어요 그럴게요 "
교도소 방은 바닥은 차가운 냉기에 아침이연 이불이 축축할 정도라서 신문을 겹겹으로 풀칠해서 담요처럼 만들어서 깔고 그 위에 담요를 40센티 정도로 접어서 깔았고, 7명이 나란히 누웠고 발밑에 두 명이 눕고 나니 형광등불빛이 흐려졌다.
방장 명자하고 봉자하고 이불속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수군덕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데 발밑에 경자언니가
그만 떠들고 자자고 한다.
나는 기결방으로 와서 긴장도 되고 방에 적응하느라 피곤했는지 바로 잠이 들었나 보다.
새벽 5시 20분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는데, 방 식구들은 벌써 일어나서 씻는 사람도 있고 이불 정리를 하고 있어서 나도 얼른 일어나서 이불을 개키는데 영자언니가 이불은 자기가 정리한다고 먼저 씻으라고 하길래 쭈뼛거리다가 수건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 이불을 그렇게 쌓으면 안 되는데 왜 자꾸만 그렇게 쌓아요 "
" 그럼 어떻게 쌓으라고요 "
" 저리 비켜봐요 내가 할 거니까 눕는 순서대로 쌓아야 저녁에 그대로 펼 수 있는데 뒤죽박죽 쌓으니까 그러잖아요 "
화장실 벽은 방 쪽이 트여있어서 씻는 중에도 방에서 실랑이하는 소리가 다 들려왔고 이 방도 무난하진 않다는 생각에 새벽부터 한숨이 풀 풀 났다.
나는 얼른 머리를 감았고 점검시간에 젖은 머리를 들킬까 봐 마른 수건으로 계속 물기를 털고 짜면서 말리고 있는데, 선자라는 여자가 다가오더니
" 언니 찬물에 머리도 감았어요 " 한다.
" 아 예 미결사동에서도 그냥 감아 버릇해서 그런지 이젠 찬물도 적응이 되네요 " 했다.
" 들키면 경고받으니까 조심해 언니 "
" 응 고마워 선자씨 "
기결사동은 정확히 6시부터 아침 점검을 시작한다.
우리 방도 두줄로 아빠다리를 하고 정자세로 앉아 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뒷줄에 앉은 나를 방장이 자꾸 힐끔힐끔 쳐다보길래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 매일 머리 감을 거면 내일부터는 779번이 제일 먼저 씻으세요 " 한다
" 네 그래도 되면 그리 할게요 " 라고 대답했다.
" 머리 다 마른 거죠 ? 교도관한테 들키면 안 됩니다 "
다시 내 머리를 보고 방장이 돌아앉자마자
교도관들이 창문너머로 고개를 디민다.
" 7호실 점검시작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번호 끝 "
" 밤새 별일 없었죠 오늘은 목욕날이니까 참고하시고 779번 별일 없죠 ? " 한다.
내 번호가 갑자기 불려져서 당황스럽긴 했는데 바로 네 괜찮습니다 대답을 했다.
점검시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 배식 배~~ 식 배식 준비하세요 배식 ]
기결사동도 사소의 목청이 우렁차게 울러 퍼지고 봉자는 철문 아래 개구멍 앞에 플라스틱 통들을 줄 세운다.
아무래도 배식 담당은 봉자인가 보다 생각했다.
인원이 많으니까 그런지 플라스틱 통들은 미결사동에 두세 배 정도는 더 컸다.
나란히 밥상 두 개가 펼쳐지고 밥이랑 국 김치 반찬이 들어왔는데 밥은 질고 국은 멀건 된장국에 반찬은 콩자반 하고 김이었다.
교도소는 매달 식단표가 정해져서 아침 점심 저녁 메뉴를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싫어하는 게 있는 날엔 컵라면을 먹기도 했다.
" 김은 두장씩 나누면 되지 "
" 이모 김은 토요일 김밥 싸 먹게 반만 먹고 그냥 남겨둬 "
교도소에서 무슨 김밥을 해 먹나 나는 잠깐 어리둥절해서 사람들을 둘러보는데
" 그래 토요일 단무지 주니까 우리 김밥 싸 먹자 "
접견 오는 사람들이 교도소 내에서 파는 물건들을 넣어주는데 그 물건들 중에 소시지도 있고 훈제닭도 있어서 토요일에 김밥을 만들어서 먹는 것 같았다.
" 779번 접견 오는 사람 있어 ? "
" 네 언니하고 후배가 와요 "
" 그럼 소세지하고 훈제닭 넣어달라고 해 토요일 김밥 만들어먹게 "
" 네 그럴게요 "
아침을 먹고 나서 설거지와 화장실 청소를 하는데 당번을 정해놓고 하는 것 같았다.
교도소는 화장실 세제를 따로 팔지 않으니까 치약하고 퐁퐁을 섞어서 세제대신 화장실 청소용으로 사용한다.
아침 시간은 그렇게 조용히 흘러갔다.
[ 운동 운동 3.4동 운동 갑시다 다 나오세요 ]
철컥 철컥 철컥 방마다 문이 열리고 복도로 나온 사람들이 두 줄로 쭉 서면 교도관들이 주머니 검사를 한다.
운동시간에 다른 방 사람들과 물건을 주고받을까 봐 하는 검열이다.
그때 선자가 내 옆에서더니
" 언니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
하길래
" 그래요 " 했다.
선자는 K은행에서 근무를 했고 수백억 대의 횡령으로 5년을 받았다고 하면서 공범들은 여주교도소에 있다면서 묻지도 않는 본인 이야기를 했다.
그 뉴스는 밖에 있을 때 나도 얼핏 본 것 같아서 아는 체를 했더니 그 사건이 맞다면서 사실 자기는 희생양이라면서 회사에서 시킨 대로 한 건데 횡령으로 엮었다면서 억울하다고 했다.
그런 사건은 대개 위에서 시키는 게 많기 때문에 나도 그냥 공감을 해주었다.
" 살고 나가면 다시 직장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선자씨도 고민이 많겠네요 "
" 아니요 저는 원주 쪽에 전원주택 사놨고 나가면 작은 가게나 할까 해요 언니 말 편하게 해요 "
" 그럴까. 그러면 다행이네 전원주택 좋지
나도 들어오기 전에 전원주택에 살았는데 다 팔아서 빚 갚고 지금은 아파트에 사는데 답답하네 "
" 언니는 밖에서 무슨 일 했어요 ? 보기엔 전문직 하셨을 거 같은데 "
" 신문사 근무했어 보증을 섰는데 그 사람이 원금도 이자도 안 갚아서 연대보증인이라고 내가 그 돈을 갚다가 형편이 어려워져서 아는 동생한테 빌린 돈을 못 갚았는데 사기로 고소를 했어 그래서 지금 이 꼴이 된 거지 "
" 아 너무 속상하겠다 참 법은 이상해요 사람들도 이상하고요 "
그렇게 선자라는 여자랑 운동장을 돌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운동시간도 끝이 났고 방에 들어와서 목욕준비를 하면서 선자 이야기를 되새기다 보니 세상은 참 우습다고 여겨졌다.
꼬리 자르기
조직적으로 수백억 대의 횡령을 일개 여직원이 했다고 신문이고 뉴스고 연일 떠들어대고 정작 윗선은 쏙 빠져나간다.
공범이래 봐야 대리급일 테고 결국 수백억 원을 쓰는 자들은 따로 있었겠지 나도 모르게 더러운 세상 힘없는 사람은 감빵에서 썩고 있는데 그들은 어디선가 희희낙락하고 있을 걸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었다.
그날밤도 이불 갖고 싸워대는 방장과 영자를 보면서 진짜 할 일이 없으니 무뇌가 되어가나 싶어 내 신세가 더 처량하게 느껴졌다.
그믐이 지난밤은 달빛도 없고 스산한 바람이 콘크리트 벽을 얼리고 있었다.
14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