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창살에 달이 뜨면

9화

by 서윤

9화


27번의 히스테리가 거의 3주동안 지속된 후에야 드디어 27번의 친구라는 사람이 접견을 왔고, 27번은 다시 조금씩 처음에 차분했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히스테리속에도 다행히 시곗바늘은 같은 방향으로 돌아갔는지 재판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감빵안에는 벽시계가 없어서 갇히자마자 가장 먼저 구매하는 물품이 시계였다.

처음엔 몰랐는데, 살다보니 시계가 가장 큰 힘이되어 주었다.


나는 결국 합의를 못했고, 공탁금도 걸지 않는 걸로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눴고, 그동안 피해자에게 입금한 내용으로 다시 재판부에 호소하는 걸로 결론을 냈는데 마음이 조급해지고 있었다.

억울한 건 맞지만 1심에서 6월을 받았고 다른 증거나 뒤집을 또 다른 이유가 없는 한

2심도 좋은 기대를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 언니 나랑 같은 날 재판이지 ? "


" 응 그러네 아마 나는 변론기일이 길어질 것 같아 너보다는 사건이 복잡하잖아 "


" 그렇지 끝까지 꼭 싸워서 억울함이 풀렸으면 좋겠어 "


" 증인신청을 했는데, 증인으로 나와줄지 잘 모르겠네 "


" 증인이 되어 줄 사람한테 계속 부탁해 봐 언니는 증거나 증인이 꼭 있어야 결백을 증명하잖아 "


" 너는 변호사가 뭐라고 하니 ? "


" 고소인이 끄덕도 안해 그냥 남은 형기 채워야 할 것 같다고 나도 그냥 집행유예 달고 나가서 몇년을 불안하게 사느니 다 채우고 가는게 나을 것 같아 "


" 그래 넌 현명하니까 기결가서도 잘 할거야 "


" 무슨 바보지 현명하긴 "


27번은 대형로펌 판사출신 정관변호사를 선임했다고 했으니까 무죄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정관예우라는 게 존재하고 선배판사 변호사를 현 판사가 존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거액을 들여서 로펌소속 변호사를 고용한다.

감옥이나 사회나 빽과 돈은 권력이었고, 살인죄도 정당방위를 만들어주는 세상인데,

그깟 마약정도 정관변호사가 뒤집어주겠지 싶은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재판일이 다가왔고 27번과 나는 법무부 호송차에 올랐다.

교도소는 수면양말을 목에 두르고 입에서 하얀 입김이 담배연기처럼 뿜어져 나올만큼 차가운 겨울이었는데, 호송버스안에서 보는 밖의 풍경은 벚꽃이 피어있었고, 연초록잎이 앉은 나무는 생동감이 느껴지고 햇살은 동화책에서 보았던 그림처럼 화사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상점에 매달려 있는 간판도 알록달록 새롭게 보이고 내가 살던 세상이 맞나 싶을정도로 아름다웠다.


2심 재판은 간결하게 끝났다. 더이상 진척된 것이 없었고, 다시 교도소로 복귀하자 다른 미결수 재소자들은 대부분 779번은 무죄로 나갈 거라면서 격려도 해주었지만, 내 마음속은 쓴물이 역류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결사동에 또 한 번 시끄러운 일이 벌어졌다. 꼭 교도소는 싸움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 곳인 듯 매일이 싸움소리에 매일이 헐뜯는 요지경 속이었다.


" 야 네가 밖에서 얼마나 잘 나가는 년이었는지 몰라도 여긴 감옥이야 감옥 혼자 고상한 척은 다하고 자바 졌네 "


" 뭐라고 고상한 척한다고 그거 그냥 내 성격이야 너는 그 입이나 좀 다물고 살아 "


" 내가 내 입으로 떠드는데 네가 뭔데 맘대로 떠들지도 못하게 하는데 "


" 어지간해야지 불법을 해놓고 뭐가 자랑이라서 하루 종일 이빨 타령이야 "


" 합의했어 나머지도 합의할 거고 니년이 보탤 거 아니면 참견하지 마 "


" 합의 같은 소리 하네 너 얼마 전에도 추가고소 떴잖아 하는 말마다 거짓말에 난 척은 엄청하네 시끄럽다고 한 게 잘못이야 "


" 너한테 말한 거 아닌데 왜 지랄이야 지랄이 미친년 밖에서 사장했다고 여기서도 사장인 줄 아냐 어디다 대고 이래라저래라야 "


" 아휴 내가 어쩌다가 저런거한테 "


" 뭐 이년아 저런거 야 너 나한테 오늘 죽어볼래 공금이나 빼먹은년이 어디다 저거래 "


" 넌 사람이빨 빼먹었잖아 "


" 누가그래 누가 이빨 빼먹었대 "


" 니가 눈만 뜨면 니 입으로 짓걸이잖아 이빨이 어쩌구 저쩌구 했잖아 "


" 야 그건 내가 치료해준 얘기 한거지 "


" 그게 그거잖아 불법시술하고 돈 받아쳐먹은 얘기 니 입으로 날마다 떠들었잖아 "


" 뭐 이년아 "


싸우는 소리는 복도를 웅웅 울려대고 복도창문에는 방마다 재소자들이 어떻게든 더 들을려고 귀를 대고 있었다. 어느방에선 ' 더 싸워라 심심한데 좋네 ' 라는 소리도 들려왔다.


722번 치과 (야매)가 우리 옆방으로 전방을 왔었는데, 건축업자라는 그 여자와 싸우는 소리가 복도를 울려댔다.

그나마 건축업자가 많이 참은 것 같은데 야매가 원래 말 많은 여자인 걸 아는 나는 건축업자 마음을 이해할 듯도 했다.

야매는 하루 종일 입을 쉬는 여자가 아니었으니까


교도소는 밖에 생활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곳은 학력도 회장님도 교수님도 다 똑같다

미쳐가는 건 다 똑같았다.

지위나 지식은 감옥에서 아무 소용이 없고, 목소리 크고 거친 사람이 승리자가 된다.

죄인들끼리 모여서 도토리 키재기 하는 것처럼

너 잘났다 나 잘났다 하는 꼴불견의 연속이었다.


결국 그날 건축업자는 자기가 원해서 우리 방으로 전방을 왔고, 나는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27번의 히스테리가 나를 떠날거라는 기쁨이었다.

진짜로 27번은 나에게 쏟아부었던 감정쓰레기 버리는 걸 잠시 멈춤을 했다.


둘이 넓게 쓰던 방에 건축업자가 들어오니까 방이 좁게 느껴지고 27번 하고 하루 종일 밖에 나가면 어떻게 하자는 일을 의논한답시고 속닥속닥 거리는 말소리가 자꾸만 귀에 거슬렸지만, 나와 상관없는 일이니까 관심 끊으면 그만이다 싶어서 그러거나 말거나 해버렸다.


건축업자는 배임 횡령 액수가 수십억 이라고도 하고 백억이 넘는다고도 하는데 감방 여자들은 다 뻥튀기 선수들이라 밖에 금송아지 한 마리씩은 키우는 사람들이니

믿을 필요도 없었지만 진짜로 수십억이든 백억이든 건축업자는 최소 3년 이상이고, 추징금도 어마어마할 텐데 현실성 없는 대화를 듣는 것도 참 고단한 일이었다.


27번은 은근히 나도 이야기에 끼어들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나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더구나 감방에서 만난 사람을 밖에 가서 또 만날 마음이 아예 없었다.

그런 날들이 흐르고 있을 때 27번 앞으로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는 두 사람이 각각 보낸 것이었고, 봉투엔 순천교도소라고 적혀 있었다.

말로만 듣던 빵편지였다.

남자교도소 사람들과 여자교도소 사람들이 펜팔을 하고 그렇게 맺은 인연으로 때론 먼저 밖에 나가는 사람이 감방수발도 한다고 재범들이 하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는데 진짜로 순천교도소 재소자가 27번 앞으로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편지에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건 27번이었다.


" 너무 웃긴다 우리 답장하자 재미있겠다."


" 그러면 이 사람이 글씨도 잘 썼고 내용도 그나마 조금 진실해 보이니까 이 사람한테 보낼까 ? "


" 그래 779번 네가 써봐 "


" 뭐라고 써 ? "


" 그냥 웃기게 써봐 갑갑해 죽겠는데 실컷 웃어나 보자 "


편지는 아는 사이라서 보낸다기보다는 공범의 소개 또는 무작위 번호를 써서 보내오는데 하필 우리 방 27번 앞으로 왔고, 우린 심심풀이 삼아 그중 한 사람에게 나름은 웃기게 답장을 했다.

무슨 내용을 썼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우리는 나이를 속여서 30대라고 한 것 같고, 싸우는 이야기라든가 추워서 수면양말을 목도리로 만들어 쓴다는 등 그런 이야기를 쓴 것 같다.


그 이후 우리 방은 바로바로 오는 답장에 까르륵 웃을 때도 많았고, 새로운 놀이에 지겨운 교도소 생활은 조금 색다른 이야기로 흥미를 느꼈고, 이 새끼 어떻게 생겼을까 ?

이 새끼도 다 거짓말이겠지 하면서 웃음이 많아져 갔다.


주고받는 편지는 매일 같은 일상에 활력이 되어주고 있었다.

인간은 아담과 이브 이후 여자 남자라는 음양의 조화가 어디에서든 필요한 것인가 보다.

얼굴도 모르고 진심도 진실도 없는 편지 한 장에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야깃거리가 새로 생겼다는 자체만으로 며칠은 보낼 수 있기에 그 무렵 나에게 펜팔은 구세주 같았다.




( 10화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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