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21화
운동시간에 햇살을 받고 화단에 앉아 있는 방장언니 곁으로 갔다.
" 언니 괜찮으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
" 어 순자씨 무슨 이야기 앉아요 "
나는 보안과장님 하고 면담한 내용을 쭈욱 설명했다.
" 좋은 제안이네요 순자 씨가 할 수 있으면 해 봐요 사실 우리가 이렇게 갇혀있지만 이게 인생의 끝은 아니잖아요 "
" 저는 그런 경험도 없고, 사실 잘할 자신도 없어요 "
" 사람은 누구나 다 경험으로만 살지는 않아요 모든 것은 다 처음이 있잖아요 어차피 순자씨는 책을 좋아하고, 읽은 책에 대해서 권유하고 또 각자 그 책 내용에 대해서 느끼는 바는 차이가 있을 것이고 그걸 토론하는 건 순자씨에게도 좋을 것 같은데요 "
" 감옥까지 갔다 온 게 그런 일을 한다고 꼴값 떤다 할 것 같아요 "
" 그런 생각하지 말아요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잖아요 저에게 그런 제안이 오면 저는 기쁘게 할 것 같아요 "
" 언니는 교회 전도사였다면서 어쩌다가.... "
나는 순간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궁금함이 상대에겐 불쾌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당사자가 밝히기 싫어하는데 묻는다는 게 결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 나 나는 글쎄 누명이라고 해야 하나 억울함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 이야기가 복잡해요
나는 회계담당 전도사였는데, 언젠가부터 총무담당 목사님이 부탁을 하기 시작했어요 어쩔 수 없이 지시대로 한 건데 내가 배임에 횡령으로 고발장이 들어오고 교회에선 나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고소를 했어요 "
" 밝히면 되잖아요 언니가 아니라고 사실대로 말하면 되는 거잖아요 "
" 그게 그 총무목사님은 큰 목사님 친척 조카였어요 "
" 하 진짜 어이가 없는 일이네요 그럼 언니는 그냥 희생양인데 억울하지 않아요 나 같으면 끝까지 싸웠을 거예요 "
" 순자씨 나는 하나님을 믿고 성직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에요
목회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굳이 진흙탕 싸움을 해서 이긴다 한들 또 달라질 건 뭐가 있겠어요 "
말을 마치고 희미하게 웃는 방장언니가 꼭 하얀 구름 같다고 여겨졌다.
왜 방에서 말이 없고, 자신의 죄명이나 기간을 말하려고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성직자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다른 성직자를 나쁘게 표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하니 방장언니가 다르게 다가왔다.
[ 운동 끝 운동 끝 두 줄로 서십시오 ]
그때 교도관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운동장에 호루라기 소리가 삑 삑 울려댔다.
" 언니 오늘 감사했어요 좋게 고민해 볼게요 자신은 없어요 사실 "
" 그래요 시간을 두고 잘 생각해 봐요 "
방으로 들어와서 찬물에 세수를 하면서 대화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을 나눈다는데 얼마나 좋은 것인가 다시 깨닫고 있었다.
혼자 사는 세상은 없다.
아무리 잘났어도 그 차이는 한 뼘이리라
답답하고 종이나 모으는 사람이라고 여겼던 방장언니를 생각하니 내가 참 작아졌구나 싶어서 부끄럽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상에서 영자언니는 또 가당치도 않은 일로 방장언니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 내일 출력 ( 공장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것 ) 신청서 받는다니까 출력 나갈 사람 신청서 적어서 창틀에 올려놓으세요 "
" 그걸 이제 알려주면 어떻게 해 "
" 나도 저녁에 들었어요 "
" 그럼 바로 이야기했어야지 "
" 다들 씻는다고 화장실 드나들고 있어서 밥 먹을 때 하려고 한 겁니다 "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걸 왜 이제 알려주는 건데 "
진짜 영자언니의 억지가 짜증스러웠다.
아침까지 신청서 올려놓으면 되는 건데 겨우 1시간 정도 늦게 안내한다고 해서 일자리가 사라지는 밖도 아니고 감방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인데 방장언니를 몰아붙이는 게 어이가 없었다.
그때 선자가 먼저 신청서를 챙기면서 분위기를 깨트렸다.
" 나는 취사반 신청할게요 "
봉자는 공장을 신청했고, 살인으로 20년형을 받은 사람은 수리반을 신청했다.
" 미자 넌 안 해 심심한데 뭐라도 신청해 "
" 경자이모는 뭐 할 거야 ? "
" 나 나는 아무것도 안 해 뭔 감방에서까지 일을 하냐 "
봉자하고 영자언니하고 방장언니는 공장으로 아침마다 출력을 가고, 선자는 식당으로 일하러 가고 나면 낮에는 방안이 조용해서 좋았다.
책을 읽고 필사를 하면서 하루 죽이기를 하다 보니 출소할 날도 20일을 남기고 있었다.
( 22화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