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창살에 달이 뜨면

22화

by 서윤

22화


살인을 하고 왔다는 여자의 이름은 홍자라고 했다.

나이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데 미자말로는 나하고 동갑이라니까 그런가 보다 했는데

말수가 없고 수리반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저녁이면 손에 까만 기름때를 묻혀서 왔다.

찬물에 기름때가 잘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서 게토레이 병에 담아두었던 따듯한 물을 한병 주면서 쓰라고 했더니 고맙다면서 짓는 미소가 어딘가 슬퍼 보였다.


살인을 하고 오는 사람은 말 걸기가 꺼려지니까 다들 먼저 묻거나 말을 나누지 않는 것 같아서 나도 사실 조금 어려웠다.

평범하게 대하면 되는 건지, 그냥 먼저 다가오게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는 상태였었는데, 웃는 얼굴에 왠지 모를 쓸쓸함 슬픔이 배어 있는 걸 보면서 마음 한편이 울컥함을 느꼈다.


내가 만약 출소 후에 재능기부랍시고 봉사한답시고 저들을 앉혀놓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무슨 내용을 갖고 해야 하는 건가 생각하자니 머리가 묵직해졌다.

그렇게 쓸데없는 고민으로 멍하니 앉아 있는데 상념을 깨우는 건 역시 미자였다.


" 순자언니 이제 20일 남았네 좋겠다 아휴 난 아직도 1년이 더 남았는데 "


" 진짜 여기도 시간이 가긴 가나보다 "


" 언니는 나가면 뭐 해 ? "


"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지금 뭘 생각한다고 해서 그게 쉽겠어 전과자 딱지가 붙을 텐데 "


내가 말해놓고도 헛웃음이 나왔다.

전과자 진짜 전과자네

반년만에 뜻하지 않게 전과자가 되어버렸다는 것이 실감 나다가도 또 현실 같지 않았다.


" 순자야 너 나가기 전에 방 식구들 회식이나 하자 "


" 회식 ? 너무 거창한 표현 같은데 "


경자언니의 회식이란 말이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는 마음과 한편으론 그래 영치금 들고나가서 빌딩을 살 것도 아닌데 펑펑 쓰고 가자는 생각도 들었다.


" 그러지요 뭐 거나하게 파티를 즐기지 뭐 인생 뭐 있나요 감방동기도 동기인데 "


미결에 있을 때만 해도 출소하면 두 번 다시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고 여기서 맺은 인연은 여기서 끝내자였는데 어느새 사람들과 정이 들어가고 있었나 보다.


밖에서는 싫으면 안 만나면 되고 피하면 되는데, 감옥은 싫어도 피할 수 없고 안 볼 수 없고 그냥 참거나 싸우거나 애써 무심한 척 어쩔 수 없이 한방에서 비비적 살다 보니 미운 정이든 고운 정이든 또 정이란 게 자라고 있었다 여기니까 사람 사는 거 진짜 별거 아니구나 싶었다.


" 그래요 순자씨 나가기 전에 우리 송별식 해요 실컷 먹고 마시고 "


방장언니까지 합세해서 한마디 하고

다들 웃음이 얼굴 가득 피어났다.


" 마시긴 뭘 마셔 방장도 그런 말 할 줄 아네 교도관한테 파티한다고 샴페인이나 달라고 할까나 "


우리는 모두 한바탕 웃었다.


" 이모 이모 우리 술 만들자 빵에 우유 부어서 창에 두면 발효되지 않겠어 ? "


" 역시 우리 미자 뽕쟁이는 생각도 다르다니까 "


미자랑 경자언니는 무슨 신나는 놀이를 발견한 어린애들처럼 진짜로 게토레이병에 크림빵을 부셔서 넣고 있었다. 두 사람이 없으면 이 방은 싸움 아니면 절간 같았을 거라는 생각에 나도 합세해서 막걸리 제조를 시작했다.


저녁상이 차려지고 각자 밥을 먹는데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쳐다보니 다 선 해 보이고 정말 감옥하고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구치소 계단을 오를 때 지옥의 계단을 오르는 것 같았던 때를 생각하면 나는 어느새 교도소에 흡수된 하나의 벽돌 같은 존재가 되어있구나 하는 마음에 허탈하기도 하고, 어쩌면 정말 숨 가쁘게 달려온 인생에 지금의 6개월이 휴식인가 싶기도 했다.


명예, 권력, 부 그 어느 것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욕심을 부리고 승부욕에 불타고 자만심, 오기심, 오만함, 자긍심, 자부심 목표를 향해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달린 인생에 결국 남는 건 사람에 대한 불신과 배신 실망 그리고 상처를 동반한 전과자인데 도대체 나는 인생을 바르게 산 것이 맞는 건가 내가 하고자 하고 이루고자 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싶었다.


" 언니 밥 먹으면서 뭔 표정이 그렇게 진지해 ? 나갈 생각 하니까 밥 안 먹어도 배부르지 ? "


" 그래 좋다 좋아 다들 잘 대해줘서 고맙다는 생각하고 있었어 "


" 순자씨가 잘 견딘 거지 그리고 순자씨가 우리 방에 오고부터 우리들도 더 잘 지내게 된 것 같아 싸움도 덜 했고 "


" 내가 뭘 했다고 다들 착해서 잘 지내는 거지 "


그날 저녁은 정말 맛이 있었다.

자유가 없는 걸 제외하면 이들과 일 년을 더 살아라 해도 살 수 있을 만큼 그날밤은 너무나 평온한 밤이었다.


창에 비친 달빛이 그날밤엔 더 환하고 둥글다고 느껴졌다.

삶을 살다 보면 늪에도 빠지고 숲에도 갇히고 빛이 없을 것 같은 긴 터널을 지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 시간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또 나아간다면 새로운 빛을 만나게 되는 것인가 그리하여 또 살아가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감옥의 하루를 다시 지우고 있었다.




( 23화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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